만기 때 금리가 0.01% 하락할 때마다 손실액이 3.3% 증가(손실배수 333배)하는 금리연계 금융상품(파생결합펀드, DLF)이 있었다. ‘금리 변동성’에 투자하는 상품이다. 만기 때 금리가 0.601% 낮아지면 금리에 연동한 DLF에 투자한 이들은 원금의 100%를 잃는다. 반면 최대로 수익을 보면 투자원금의 1.4%를 얻는다. 이마저도 선취판매수수료 1%, 펀드운용보수 0.11%를 떼어가 실제론 투자원금의 0.29%를 회수할 수 있다. 사실상 수익이 거의 없는 초고위험 상품을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이 고객들에게 팔았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원장은 5일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주최한 국회 토론회에서 “우리은행에 지난해 12월부터 30번 이상 경고했고 은행장한테 전화한 것도 20~30번이며 공문만 10번 정도 보냈다”며 “이제 와서 고발한다니 은행에서 고발하지 말라고 찾아와 부탁했다”고 말한 뒤 “감독 모니터링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금융소비자원은 지난달 1일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의 은행장과 임원 프라이빗뱅커(PB)를 자본시장법 위반 뿐 아니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사기죄, 사문서위조죄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금융감독원은 시민단체가 고발해서 수사의뢰를 따로 하지 않았다는 입장이지만 금융소비자원은 금감원에서 수사의뢰를 했어야 하고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금감원도 비판했다. 

▲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금융소비자원이 5일 오후 국회에서 DLF 사태로 본 설계 판매과정의 소비자보호 문제 토론회를 열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금융소비자원이 5일 오후 국회에서 DLF 사태로 본 설계 판매과정의 소비자보호 문제 토론회를 열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자본시장법을 보면 은행은 고객 투자성향(안정형·안정추구형·위험중립형·적극투자형·공격투자형)을 구분한 다음 이에 맞는 투자 상품만 권유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서 은행들은 안정형 투자자들에게 상품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문서를 조작해가며 DLF를 팔았다. 

조 원장에 따르면 DLF 판매금액은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8200억원에 고용노동부가 600억원 투자했다가 480억원 손해봤던 금액까지 8800억원이었다. 가입인원이 중복인원과 재단·국가기관을 포함해 3600여명, 피해손실규모가 6500억원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환매연기로 자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라임자산운용 건 1조500억원, 신한금융투자가 독일에 투자한 4000억원 중 일부, KB증권 관련 2000억원 등 유사한 상품을 합하면 3조원이 넘었다. 그는 “DLF 뿐 아니라 다른 초고위험 상품 문제가 심각하다”고 했다.

조 원장이 공개한 사례를 보면 63세 가정주부 A씨는 지난 4월 정기예금을 가입하기 위해 방문했다. 은행에서 독일채권이 안전하다며 상품을 권유해서 가입을 했다. 며칠 뒤 해피콜 전화를 받았는데 ‘원금 손실 가능성’을 들은 적이 없어 가입하지 않겠다고 했다. 다음달 두 번째로 해피콜 전화가 와서 “지점에서 전화가 없었냐”고 물어서 “없다”고 대답했다. 다음날 A씨가 지점에 항의하며 해약을 요구했으나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3개월 뒤 은행에선 원금의 60%를 손실했다며 지점 방문을 요구했고 원금손실에 대한 설명서를 보여주며 변명했다.  

▲ A은행에서 발송한 실제 투자광고 메시지(2019년 3월14일자). 자료=전문수 변호사
▲ A은행에서 발송한 실제 투자광고 메시지(2019년 3월14일자). 자료=전문수 변호사

 

피해자들이 쏟아지면서 은행들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금감원에선 DLF자료를 받아봤다. 정우현 금감원 부국장은 “금감원 직원도 상품을 이해하는데 반나절이 걸렸는데 고객들이 제대로 설명을 들었을지 모르겠고 은행직원들도 제대로 알고 팔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저금리 시대가 장기화하면서 은행들이 예대마진보다는 상품판매 수수료로 수익을 올리는 구조로 변하면서 일선 행원들에게 과한 성과압박을 넣은 것을 한 원인으로 봤다. 조영은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저금리 기조가 지속될 것이라 금리 파생상품이 계속 나올 수 있기 때문에 KPI(직원에 대한 핵심성과지표)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은행들은 본점 차원에서 사기적 판매를 독려했고 비이자수익 배점을 높게 설정하면서도 소비자 보호엔 무관심했다. 

조 조사관은 호주의 성과보수 권고안(Sedgwick Review)을 참고하자고 제안했다. 호주 성과보수 권고안을 보면 직접 판매실적·실적목표와 연동하는 성과급 지급체계를 폐지하고, 고객 성과지표는 실질적인 고객 서비스 제공 여부를 토대로 운영하고 평가한다. 은행이 윤리 행위나 고객 서비스 제고 보다 실적을 앞세우는 현장 문화·업무 과정이 존재하는지 점검해고 이를 개선해야 한다. 은행은 우수직원을 발표할 때 실적이 아닌 윤리 행위와 고객서비스 제고를 우선하도록 한다. 

▲ A은행 본점이 선정한 우수판매전략 사례. 자료=전문수 변호사
▲ A은행 본점이 선정한 우수판매전략 사례. 자료=전문수 변호사

 

금감원은 KPI를 감독할 수 없다고 했다. 정우현 금감원 부국장은 “KPI는 은행의 경영자율 사항이라 감독 대상으로 보기 어렵다”며 “일부 은행들이 소비자보호를 플러스가 아닌 마이너스 항목으로 운영했다는 건 안타깝다”고 말했다. 지난달 1일 금감원이 DLF 사태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은행들은 소비자보호 항목 배점을 마이너스로 뒀는데 이는 소비자보호를 잘하면 가점을 주는 건 없고, 민원이 들어올 경우 감점하도록 항목을 운영한 것이다. 

정 부국장은 “수익증권을 팔 때 발행사, 운용사, 판매사가 서로 견제해야 하는데 이번 사태는 은행이 상품 개발에서 판매까지 주도해 견제가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이 지난주에 검사를 마무리했다”며 “분쟁조정위원회에 검사 중 수집한 자료를 제출해 신속하게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은행이 이번 사태에 민형사상 책임을 져야한다고 주장했다. 법무법인 로고스의 전문수 변호사는 “은행의 기망으로 인한 계약취소에 따른 부당이득 반환의무, 불완전판매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이 발생한다”고 주장했고, 백병성 소비자문제연구소 소장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손배 차원이 아니라 손해액을 뛰어넘는 불이익을 가해자에게 배상하게 하는 제도로 재발을 막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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