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혁명 핑계로 기업 민원 해결하나
4차산업혁명 핑계로 기업 민원 해결하나
‘52시간 반대’ 정밀분석 없이 산업계 대변
개인정보 규제 완화 시민사회 입장 왜곡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위원장 장병규)의 대정부 권고안이 각계각층의 반발을 사고 있다. 사회 변화에 따른 대응을 논의한다는 취지와 달리 엄밀한 분석을 하지 않거나 사안을 왜곡해 산업계를 대변한다는 비판이다.

4차산업위에 고용 전문가 위원으로 참여한 황선자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부원장은 5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소회의실에서 기자 브리핑을 열고 노동분야 권고안인 ‘주 52시간 일률 적용 반대’ 결론에 문제를 제기했다. 

4차산업위는 지난달 25일 최종 권고안에 “주 52시간제의 일률적 적용에 개별 기업, 노동자가 주도·자율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워 인재 성장의 걸림돌이 되거나 기업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우려가 제기된다”고 밝혔다. 황 부원장은 당시 소수의견으로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노동시간 단축이 요구되며, 주 52시간 상한제도 지키지 못하는 기업의 일자리는 국민의 일자리 불안을 없앨 수 없으며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황 부원장은 “권고안은 위원회가 논의한 내용과 무관할 뿐 아니라 전문가로서 제 견해와도 배치돼 위원회에 거듭 삭제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주 52시간제 관련 내용은 지난 8월 전체회의 때 장병규 위원장 뜻에 따라 돌연 최종 권고안에 포함됐다. 황 부원장에 따르면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거나 자료조사를 거치지 않고 내놓은 결론이다.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위원장 장병규)의 고용 전문가 위원인 황선자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부원장은 5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소회의실에서 4차산업위의 ‘주 52시간 일률 적용 반대’ 결론에 문제를 제기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위원장 장병규)의 고용 전문가 위원인 황선자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부원장은 5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소회의실에서 4차산업위의 ‘주 52시간 일률 적용 반대’ 결론에 문제를 제기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4차산업위 일자리작업반은 △기존·신산업에서 만들어지는 일자리 지원 △일자리 변화에 발맞춘 기업과 노동자 적응 지원 △일자리 감소 업종과 플랫폼 노동과 같이 취약한 노동 보호 방안을 주로 논했지만 권고안에는 부각되지 않았다.

황 부원장은 산업계 중심의 위원 구성 문제도 지적했다. 4차산업위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총괄하며, 사회안전망에 관여하는 보건복지부는 참여하지 않는다. 위원 24명 가운데 노동계 대표 인사는 황 부원장 1명 뿐이다.

황 부원장은 “국민이 아닌 기업 관점에서 그들의 요구를 담는 게 4차산업위의 현주소”라며 “위원회가 기업 숙원해결 기구가 돼선 안 된다. 개인 자격이 아니라 국민과 노동의 관점에서 4차산업혁명에 대응할 다양한 계층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도록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플랫폼노동자들도 4차산업위의 권고안을 공개 비판했다. 배달노동자로 구성된 라이더유니온은 지난달 25일 성명을 내고 “대정부 권고안이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혁신이나, 혁신으로 치장된 배달노동 현장은 그야말로 원시 상태다. 4차산업위가 말하는 혁신은 플랫폼 사업자들을 위한 것이며, 어디에도 노동은 없다”며 권고안 재검토를 촉구했다.

플랫폼 라이더들은 형식상 개인사업자로, 노동법 보호를 받지 못해 저임금 위험노동에 내몰린다. 라이더의 순수입은 월평균 165만원, 근무 시간은 하루 13.7시간이다(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정책연구원). 산업재해율도 높다. 고용노동부가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6년부터 청년층(18~24세) 산재 사고 사망자의 44%가 배달 교통사고로 숨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24일 오전 대전광역시 서구 대전시청에서 열린  ‘대전의 꿈, 4차산업혁명 특별시’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24일 오전 대전광역시 서구 대전시청에서 열린 ‘대전의 꿈, 4차산업혁명 특별시’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개인정보 분야에서는 장병규 위원장이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4차산업위는 국회에 계류된 ‘데이터3법’ 등 개인정보 규제완화 추진 입장을 냈다. 장 위원장은 언론인터뷰에서 시민사회가 참여한 4차산업위 규제제도혁신 해커톤에서 ‘사회적 합의문’을 도출해 반영했다는 식으로 밝혔다.

그러나 해커톤 당시 시민사회의 입장과 4차산업위 권고안 내용은 다르다. 시민사회는 상업적 연구 목적의 동의 없는 가명정보 활용에 반대했으나 신용정보법 개정안은 ‘과학적 방법을 사용하는 연구’를 활용 가능하다고 규정해 사실상 상업적 연구를 가능하게 했다. 개인정보의 ‘범위’를 두고도 시민사회는 자동차 번호처럼 추가 정보를 결합해 개인이 드러나면 개인정보로 규정할 수 있다는 현행 개인정보보호법과 같은 입장이지만 데이터3법은 활용 대상을 폭넓게 규정했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는 “개인정보 정의부터 활용 등 내용을 시민사회가 합의한 적 없는데 왜곡하고 있다. 협의체를 형식적으로 만들어 이용한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규제 제도혁신 해커톤’에 참여한 오병일 대표, 이은구 정보인권연구소 이사, 양홍석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 한석현 서울YMCA 팀장은 5일 오후 입장문을 내고 장병규 위원장 등에 해명과 사과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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