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들이 내수를 침체시키는 공범으로 지목됐다. 

나라살림연구소가 전국 243개 지자체 결산서를 전수조사한 결과 지자체들이 균형재정이란 원칙을 어기고 잉여금을 남겼고 매년 그 규모가 늘어난 것으로 드러났다. 민간시장을 위축시키는 한 요인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행정안전부는 이에 대처하지 못하고 오히려 통합재정수지가 높은 지자체에 재정건전성이 좋다고 평가해 잉여금을 독려하는 모양새다. 

▲ 행정안전부 로고
▲ 행정안전부 로고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이 작성한 보고서를 보면 2018년 결산기준 지방정부 세입은 362조원인데 세출은 293조원에 불과해 약 69조원의 잉여금이 발생했다. 세입에서 세출을 뺀 금액이 (세계)잉여금이다. 여기서 이월금·보조금 집행잔액 등을 제거하면 순세계잉여금이다. 주민들은 순세계잉여금만큼 받을 수 있었던 행정서비스를 받지 못한 꼴이다. 

2018년도 잉여금은 68.7조원(2017년 63조원), 순세계잉여금은 35조원(2017년 32.4조원)이었다. 2017년과 비교해 잉여금 9%, 순세계잉여금 8% 증가한 수치다. 기초단체가 광역단체보다 더 많은 잉여금이 발생했다. 잉여금의 경우 기초단체 52.5조원, 광역단체 16.2조원, 순세계잉여금의 경우 기초단체 25.9조원, 광역단체 9.1조원으로 나타났다. 

2018년 결산 기준 전국 243개 지자체 중 세출 대비 순세계잉여금 비율이 3분의1이 넘는 지자체는 20개였다. 세출금액의 3분의1 넘는 금액을 지출할 수 있었지만 지출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지방재정법 122조를 보면 지자체는 그 재정을 수지균형(균형재정) 원칙에 따라 건전하게 운영해야 한다.

기초단체의 경우 잉여금 비율이 가장 높은 지자체는 과천시였다. 순세계잉여금이 높은 지자체는 경기 과천시, 경기 안산시, 경기 시흥시, 서울 강남구, 전남 무안군 순이었다. 각각 세출액 절반이 넘는 82.1%, 56.7%, 52.4%, 51.9%, 51.6%를 순세계잉여금으로 남겼다. 다만 과천시와 시흥시는 대규모 택지개발 등 일시적으로 발생한 수입이 있는 걸 감안해야 한다. 

광역단체 중 순세계잉여금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인천광역시로 잉여금이 1.8조원(21.1%), 순세계잉여금 1.1조원(12.7%)이 발생했다. 가장 낮은 곳은 경상남도였다. 경상남도는 잉여금 5.5%, 순세계잉여금 0.7%에 그쳐 가장 효율적으로 재정을 집행한 지자체였다. 

잉여금이 증가하는 이유는 세입을 과소추계하거나 세출의 불용 등 미집행률이 늘어서다. 이 위원은 전자를 더 주요 요인으로 봤다. 특히 전년도에 발생한 순세계잉여금을 다음해 본예산 세입에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았다. 지출규모를 잡을 때 변화한 환경을 반영하지 못해 세출규모를 적게 추계하는 것도 비효율적인 예산집행의 원인이다. 

이는 내수경기를 악화시킬 수 있다. 

이 위원은 보고서에서 “정부는 올해 0.1%p 경제성장률 상승을 기대하며 6.7조원의 추경을 편성했는데 (지자체는) 민간의 자금을 위축시켜 내수경제에 악영향을 끼쳤다”며 “조세재정연구원 보고서에 근거하면 잉여금 68.7조원, 순세계잉여금 35조원이면 당해연도 GDP성장에 1.7%(순세계잉여금 0.9%) 기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자체재원 비중이 10% 이하인 지자체 중 순세계잉여금 비중이 높은 지자체. 자료=나라살림연구소
▲ 자체재원 비중이 10% 이하인 지자체 중 순세계잉여금 비중이 높은 지자체. 자료=나라살림연구소

 

경기 과천시나 서울 강남구와 달리 자체재원이 열악한 지자체도 잉여금을 많이 축적했다.  

보고서를 보면 자체재원 비율이 10% 이하인 지자체가 전체 일반회계 세출 대비 20% 이상 순세계잉여금을 적립한 곳이 있다. 그런데도 잉여금 비율이 50% 넘는 지자체도 있었다. 한 예로 전북 장수군은 지방세 수입 2.3%, 세외수입 3.7% 등 자체재원이 6%에 불과해 중앙정부에서 받는 교부세가 44.3%(1345억원)나 된다. 잉여금 규모는 교부세의 93%(1225억원)에 달했다. 

이런 상황인데도 행안부가 관련 통계조차 제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 보고서는 나라살림연구소가 가공한 데이터다. 행안부는 오히려 통합재정수지가 높은 지자체에 재정건전성 평가를 높게 해왔다. 잉여금 발생을 권장해 온 셈이다. 

▲ 2013~2018년 잉여금, 순세계잉여금 현황. 자료=나라살림연구소
▲ 2013~2018년 잉여금, 순세계잉여금 현황. 자료=나라살림연구소

 

보고서를 보면 2013년부터 2018년까지 결산 기준 잉여금과 순세계잉여금은 36조원, 16.2조원에서 5년간 각각 91%, 116% 증가해 68.7조원, 35조원으로 증가했다. 이는 재정규모 증가보다 빠른 속도다. 행안부가 관리하는 지방재정데이터를 모은 ‘지방재정365’나 행안부 각종 자료에도 모든 지자체 결산기준 순세계잉여금 규모를 파악한 자료는 없었다고 이 위원은 지적했다. 

이 위원은 세입세출 규모를 적절하게 계획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특정 요건을 충족할 경우 재정안정화기금을 의무화하자고 제안했다. 순세계잉여금 일부를 해당 기금에 적립해 재정수지를 관리하고 이 기금으로 간혹 발생하는 수지상 적자를 완화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다. 행안부 입법발의로 재정안정화기금을 설치하도록 지방재정법을 개정했지만 요건 제한이 지나쳐 이를 개선해 지자체가 잉여금을 지출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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