多言數窮, 不如守中. 
다언삭궁, 불여수중.

말이 많으면 자주 궁해지는 것이니 가만히 있는 것만 못하다.

이 말은 시진핑이 ‘중앙 경제공작회의에서 연설’할 때 <노자老子·제5장>에서 따왔다. 시진핑은 또 <노자·제60장>에 나오는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조리하는 것과 같다(치대국여팽소선治大國如烹小鮮)’는 말을 즐겨 인용하기도 한다. 여기서 나타나는 시진핑의 국가운영 방략은 정령政令이 많지 않고 더욱 번거롭게 하지 않음으로써 안정을 유지하고, 힘을 조절해 ‘질주를 막고 점진적 전진’을 할 수 있는 것을 요체로 하고 있다. 시진핑은 지도간부들이 변증법적 사유능력을 제고시킬 것을 요구한다. 즉, 모순을 인정하면서 모순을 분석하고 해결해 중요 관건을 잘 틀어쥐어 중점을 정확하게 찾고 사물 발전의 규율을 통찰하는 것이다. 어떤 문제를 편견을 갖고 한 단면만 보는 게 아니라 다각도로 생각할 때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의 잘못을 피하게 되고 개혁의 대세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정령이 지나치게 번거롭고, 구체적이면 천변만화하게 변하는 실제적 상황국면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 대응방식은 ‘가만히 있음(수중守中)’이다.  즉 기초와 원칙, 근본을 지키면 온갖 변화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불변不變(수중)으로 만변萬變에 대응할 수 있다. 원전은 다음과 같다.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 天地之間, 其猶橐籥乎? 虛而不屈, 動而癒出. 多言數窮, 不如守中.
하늘과 땅은 어질지 아니하여 만물을 풀 강아지처럼 여긴다. 성인도 어질지 아니하여 백성을 풀 강아지처럼 본다. 하늘과 땅 사이는 풀무와 같지 않은가? 비어있으나 굽힘이 없고 움직이면 힘이 더욱 생겨난다. 말이 많으면 자주 궁해지는 것이니 가만히 있는 것만 못하다.

▲ 노자(老子). 사진=위키백과
▲ 노자(老子). 사진=위키백과

노자는 사마천에 따르면 춘추시대 말기 초나라 사람으로 성은 이씨이고 이름은 이이며 자는 담이다. 주나라 왕실에서 도서를 관장하는 일을 하다가 주의 덕이 쇠약해지자 함곡관函谷關을 떠나 행방을 감추었다고 한다. <노자>는 노자 학설을 집대성한 책 이름으로 전문 약 5400자, 81장으로 이루어졌다. <노자 도덕경>이라고도 부른다. <노자>의 ‘말이 많으면 자주 궁해지는 것이니 가만히 있는 것만 못하다’는 글귀는 ‘다언多言’과 ‘불언不言’을 대비해 정령의 번다함을 가리킨다. 삭궁(數窮)은 여러 차례 실패, 수중(守中)은 고요함(虛靜)을 지키는 것을 일컬음이다. 노자는 ‘풀 강아지(추구芻狗)’와 ‘풀무(탁약橐籥)’, 두 개의 비유를 통해 이런 이치를 명쾌하게 풀어냈다. 

‘추구’는 고대 중국에서 제사지낼 때 제물로 사용한 풀로 만든 강아지다. 제사가 끝나면 버리거나 소각해 버린다. 사람들은 그것이 대해 어떤 애증이 없다. 노자는 하늘과 땅은 편애를 하지 않아 만물을 대할 때 풀 강아지 마냥 대하고 만물은 스스로 생장한다고 본다. 따라서 성인도 편애가 없어 백성을 대할 때 풀 강아지처럼 대하고, 백성들은 스스로 일하고 스스로 쉰다. 하늘과 땅 사이를 하나의 큰 풀무로 비유한다. 그것은 비어있으되 고갈되지 않아 바람을 일으키면 일으킬수록 커지고 끊임없이 이어진다. 때문에 정령이 번다하면 잇따라 실패해 조용히 아무것도 아니한 만 못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노자와 공자는 매우 비슷한 견해를 보인다. 공자는 군자는 마땅히 “일은 민첩하게 하고 말은 신중하게 한다(민어사이신어언敏于事而愼于言)”면서, 더 나아가 “말 한 마디에 나라가 흥하고 망한다(일언이흥방一言而興邦, 일언이상방一言而喪邦)”고 주장했다. 공자는 언론을 국가경제와 국민생활에 관계되는 것으로 끌어올려 고도로 중시했다. 공자는 ‘유위有爲’ 각도에서 출발하고, 노자는 ‘무위無爲’를 말하지만 정치는 말이 많으면 안 된다는 주장은 서로 일치한다. 말 하고자 하는 ‘수중守中’의 ‘중’은 겸허하다는 ‘충’을 통해 속마음의 비어있는 고요함(허정虛靜)을 가리킨다. 유가의 이른바 중정中正이나 중용中庸,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것(불편불의不偏不倚)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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