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난 10월23일 개봉한 김도영 감독의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연일 화제에 오르고 있다. 조남주 작가의 동명 원작 소설이 그랬던 것처럼, 영화 역시 제작 소식이 들려올 때부터 무수한 논란에 시달렸다. 개봉 전 네이버 별점 테러는 기본,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에서도 영화가 개봉하기도 전에 미리 영화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반응이 연속해서 드러났다. 이러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개봉 첫 날부터 흥행은 물론 반응 역시 순항하고 있다. 개봉 첫 날부터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영화는 10월30일 잠시 2위로 내려간 것을 제외하면 11월1일 현재 계속 1위를 지키고 있다. 10월 30일에는 영화사에서 공식적으로 160만 관객을 돌파하며 손익분기점을 돌파했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조남주 작가의 소설이 일찌감치 100만부 이상을 판매하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것처럼, 영화 역시 준수한 흥행 성적을 낼 것으로 예측된다.

왜 많은 이들이 ‘82년생 김지영’에 반응하고 있는 것일까. ‘82년생 김지영’은 원작 소설부터 심상치 않은 면모를 드러냈다.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를 통하여 2016년 10월 처음 출간된 소설은 독자들은 물론 문학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여러 차례 오르내린 작품이었다. 소설을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눈치챘겠지만,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전개 방법은 일반적 소설과는 조금 궤를 달리한다. 마치 조남주 작가가 소설가가 되기 전 작가로 활동했던 MBC ‘PD수첩’이나 ‘불만제로’ 같은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책으로 읽는 것처럼, 작품은 1982년에 태어난 주인공 ‘김지영’이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겪었던 일을 거슬러 올라는 메인 플롯에 김지영의 행로를 설명하는 다양한 정보가 덧붙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전형적 1인칭 소설은 물론 3인칭 시점의 소설과도 다른 방법론으로 전개되는 작품은 흡사 ‘내레이터’나 ‘자막’이 덧붙은 것 같은 작품을 주었다.

이러한 전개 방식은 일각에서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작중에서 주인공을 비롯한 여성들이 겪는 사건들이 작중에서만 발생하는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한국의 평범한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문제라는 것을 강조하는 문체에 몇몇 남성 독자들은 더욱 주관적이고 부실한 근거로 작중에서 제시되는 근거가 ‘틀린 것’을 강조하기 위해 노력했다. ‘82년생 김지영’이 한국 사회 전반에 화제가 되자, 이후로는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는 사실을 언급만 하거나 심지어는 공유만 해도 곧 ‘꼴페미’나 ‘메갈리아’ 같은 비하적인 수식어로 적극적 공격에 나서기도 했다.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 ‘레드벨벳’의 멤버 아이린에게 벌어진 사이버 공격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책 '82년생 김지영'의 표지.
▲책 '82년생 김지영'의 표지.

‘82년생 김지영’ 특유의 생경한 문체에 많은 문학 평론가 역시 비판적 평가를 내렸다. 2019년 5월에 출간된 비평집 ‘#문학은_위험하다’에 수록된 문학평론가 김미정의 글 ‘흔들리는 재현·대의의 시간’에서는 문학계에서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지적과 이와 상반되어 나온 대중들의 열광적 반응을 비교하며, 어떻게 이 두 반응이 갈라지게 되었는지를 고민했다. 해당 글에서 정리된 문학 비평가들은 작품이 대중과 시대와 조응하며 의의를 지니게 된 것과 별개로, 소설 자체가 지닌 미학적 지점에 있어서는 “소설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평을 내린 이들이 많았다.

문학평론가 이명원 또한 2017년 12월 한겨레에 게재한 비평문을 통하여 ‘82년생 김지영’에 대해 반응이 갈라지게 된 모습에서 독자들이 ‘정체성의 정치’와 ‘당사자성 확인’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으며, 그러한 상황에서는 문학이 오랜 시간 구축한 ‘고백의 기술’로서의 존재 근거가 약화될 것을 염려하는 반응을 드러내기도 했다. 동시에 “정보전달을 위해서 소설을 쓰거나 읽는 일을 사실상 비효율적인 것이 아닐까”는 언급을 통하여, 새롭게 대두된 한국 문학의 모습을 고민하는 자세를 표출하기도 하였다.

분명 소설 ‘82년생 김지영’에 대해 일반적 문학의 상을 기대하고 읽는 이들에게는 무척이나 낯설고, 더 나아가면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을 가능성이 많다. 이미 소설은 정신과 상담의가 병원에 방문한 주인공 ‘김지영’의 이야기를 들은 것을 기록한 ‘액자식 구성’으로 서술되어 있어 독자와 주인공 사이에는 이미 ‘벽’이 존재한다. 그리고 김지영이 놓인 상황과 행동을 서술하는 ‘3인칭 내레이터’의 존재는 그 벽 사이에 또 다른 막이 있다는 감각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문학은_위험하다’에서 김미정과 허윤이 지적하는 것처럼, 소설이 취하는 서술 방식은 작중의 주인공은 물론 독자에게 정체성을 부여하는 길이기도 하다. ‘82년생 김지영’에서 김지영이 겪는 일들은 단순하 김지영 ‘개인’이 겪는 사적인 사건이 아니라, 내레이터적인 존재를 통해 부여하는 각종 정보와 설명을 통하여 이 작중의 사건을 그저 ‘극적인 장치’로 인식하는 것을 넘어 보편적이거나 때로는 독자 자신의 문제가 될 수 있음을 느끼도록 만든다. 소설의 서술 방식은 그저 ‘르포적’이 아니라, 도리어 소설의 안과 소설이 기초하는 현실, 그리고 그 현실에 다시 기초하는 독자를 모두 아우르는 ‘메타픽션’을 노린 측면이 강하다.

그러기에 ‘82년생 김지영’은 그 전까지 페미니즘이나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놓인 심리나 의식을 다룬 작품보다 더욱 호응을 모을 수 있었다. 마치 웹소설이나 장르소설 상당수가 조금은 거칠어도 친절한 서술법을 통하여 작중에서 전개되는 사건을 ‘효율적’으로 독자가 이입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처럼, ‘82년생 김지영’의 독특한 메타적 서술은 손쉽게 김지영이 성장과 취업,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를 겪으면서 경험한 일들 상당수를 독자 자신이 겪는 문제와 견주어서 볼 수 있는 통로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높은 판매량과 더불어 문학계를 넘어 사회 전반에 작품이 오르내리는, 어떤 의미로는 2010년대 중후반의 한국 사회를 상징하는 문학으로 이야기될 수 있었다.

100만부 이상의 판매실적을 기록한 작품에 자본이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2016년 10월 책이 출간된 후 약 6개월이 지난 2017년 6월, ‘82년생 김지영’이 영화로도 제작되는 소식이 발표되었다. 2018년 9월과 10월에는 영화의 주연으로 영화배우 정유미와 공유가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이 연이어 뜨더니, 2018년 겨울에는 작품의 투자·배급에 롯데엔터테인먼트(롯데컬처웍스)가 참여한다는 뉴스가 최종적으로 공표되었다. 영화계가 다른 문화 영역과 마찬가지로 사회의 트렌드에 무척이나 민감하고 기민하게 반응하는 것을 고려하면, ‘82년생 김지영’으로 창립 후 첫 번째 영화를 만든 ‘봄바람영화사’와 롯데엔터테인먼트는 각자의 이해관계는 서로 달라도 지금의 사회 환경과 정세에서 ‘82년생 김지영’에 제작비를 투자하고 영화로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일치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 이미지.
▲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 이미지.

그러나 진정한 관건은 영화의 내용이다. 소설은 마치 ‘르포’를 보는 듯한 감각이 든다는 평을 무수히 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상으로 옮기는 것이 쉬운 작품은 아니다. 과거에서 현재로 거슬러 올라가는 김지영 자신의 이야기를 상담의가 듣고, 다시 그 이야기 사이에 내레이터적인 존재가 다양한 뉴스와 통계 자료로 그 이야기에 근거를 더한다. 이를 그대로 영상으로 옮기려면 정보적인 내용과 극적인 서사가 모두 만나는, 흡사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중간지대를 찾아야만 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연출자는 과감하게 정보적인 이야기를 모두 들어내는 길을 골랐다. 액자식 구성도 깨부수는 대신, 영화에서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었던 ‘지금 현재 시점’의 이야기를 전면으로 부각하는 방법론을 택했다. 현재의 시점이 강해진 결과 소설에서는 김지영 이외의 캐릭터는 무척이나 비중이 적었던 것과 달리, 남편 정대현(공유)와 지영의 어머니 미숙(김미경) 등의 비중이 상승하게 되었다. 동시에 개봉 이전부터 궁금함과 함께 불안감을 낳았던 ‘빙의’라는 추가적인 요소를 김지영의 캐릭터에 삽입했다.

그 결과 영화는 소설 ‘82년생 김지영’과 캐릭터와 사건을 공유하지만 세부적인 전개의 측면에서는 소설과 전혀 다른 길을 가게 되었다. 비교적 일직선으로 과거에서 현재로 점차 거슬러 올라갔던 소설과 달리 영화는 주인공 ‘김지영’(정유미)가 겪는 순간순간마다 과거를 회상하는 플래쉬백 연출이 강해졌다. 더 이상 김지영이 참고 버틸 수 없을 때, ‘김지영’은 특정한 국면에서 김지영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존재로 ‘변신’ 또는 ‘역할 연기’를 하게 되었다. 영화의 홍보물이나 작중에서는 ‘빙의’라고 언급하지만, 작중에서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 외에도 아직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으로도 김지영은 변한다.

이 변신의 순간은 완벽하게 매끄럽지는 않다. 조금이라도 연기 실력이 부족한 연기자가 김지영의 배역을 맡았다면, 작중에서 형성된 분위기가 바로 깨질 가능성이 높을 정도로 난이도가 높은 장면들의 연속이다. 김지영을 맡은 배우는 자신이 ‘김지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동시에 자연스럽게 다른 인물로 변신하면서 그 인물에 적합한 발성과 연기를 수행해야 한다. 다행히도 정유미는 그 ‘변신’의 순간을 완벽하게 제어한다. 동시에 그 ‘변신’을 통해 소설이 전하고 싶었던 의미를 영화적인 변용을 통해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소설에서는 ‘김지영’이 상담의에게 심리 치료의 목적으로 자신의 과거와 심리를 이야기하고, 아니면 독자에게 김지영의 행동을 설명하는 내레이터격 존재를 통해 김지영이 진정으로 느꼈을 문제를 드러낼 수 있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그런 간편한 존재를 등장시킬 수 없다. 여전히 쉽게 자신이 겪는 문제를 드러낼 수 없는 환경에서, 김지영은 결말 이전까지는 다른 존재로 변신을 할 때 비로소 불합리한 것을 불합리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변신’을 통해 말을 하는 것이 곧바로 다른 이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그 모습을 ‘미쳤다’고 말하고, 다른 누군가는 그 모습을 걱정하고 고민한다.

그러나 변신을 해서라도 드러내는 발화가 자꾸 중첩되고 쌓일 때, 그 말들을 오랫동안 들어왔던 사람들은 조금씩 ‘말을 할 수 있는 존재’로 변해간다. 마치 연출자 김도영의 전작 단편 ‘자유연기’에서 결혼과 출산 이후 다시 연기자로 돌아가기를 원했던 주인공이 오디션을 앞두고 둘쨰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복잡한 감정을 오디션 장소에서 주인공이 펼치는 ‘몸짓’과 ‘연기’로 드러냈던 것처럼, 김도영은 이번 작품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82년생 김지영’을 재해석한 셈이다.

그렇게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도, 김도영의 영화 ‘82년생 김지영’도 각자 전하는 방식은 달라도 쉽게 여성이 자신이 겪은 피해와 부당함을 말하기 어려운 사회에서 ‘말을 하는 것’의 중요함을 드러낸다. 물론 작중에서도 그렇듯 말을 하는 것이 곧바로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소설의 ‘김지영’은 물론 영화의 ‘김지영’ 역시 자신의 고통을 비로소 남들에게 드러낸 것과 별개로 ‘타협’을 해야만 한다. (동시에 영화에서 드러나는 ‘타협’의 모습은 소설과 결이 다른 ‘해피엔딩’이나, 영화 외적으로는 수익 창출 문제 등과 이어지며 좀 더 곱씹을 지점을 늘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영화 둘 어떤 식으로든 입을 열지 않는 한, 바뀌는 것도 결국 없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책으로, 영화로 작품을 본 관객은 작중의 모습에 힘입어 조금씩 입을 열고, 이전과는 다른 움직임을 드러낸다. 그 ‘말’들이, 그 ‘행동’들이 마냥 순탄치 않을지라도, 한 번 말을 하고 움직인 이들은 쉽게 그 행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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