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성실하게 진술하려 애쓰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기억을 맹신하지 않고, 여러 가능성들을 타진하면서도 조심스럽게 그는 한달여의 일들을 가만가만 짚어나갔다. 그는 기억의 공백에 대해서 자의적으로 메우지 않고, 공백 그대로를 진술하는 사람이었다. 상급자에게 모욕을 당한 횟수에 대해서도 그는 “욕설을 들은 것은 단 한 번이었어요”하고 말했다. 그 상급자가 매일같이 그에게 물량압박을 하고, 그를 비하하거나 비아냥거리는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이도훈씨(가명)에게 욕설과 압박을 여러차례 했다는 말씀이죠?“하고 내가 되물었을 때, 그는 굳이 욕설은 ‘단 한 차례’라고 나의 말을 정정했다. 조금의 과장도 스스로 허용치 않던 그와 내가 나눈 이야기들은 아마도 사실관계에 거의 근접해 있을 것이다. 

그에게 일어난 사건은 말하자면 비극이다. 비극은 그것들을 그들 스스로가 선택할 수 없었기에 발생했다. 유복하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나 가계의 경제적 어려움을 덜기 위해 일찌감치 취업준비를 한 그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들어가 실업률이 높은 한국 땅에서 실업자가 되지 않으려고, 그리고 감당하기 어려운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려 현장실습을 신청한 그는 그렇게 비극의 장면에 다다랐다. 위험 업무를 외주화시킨 회사의 하청업체에 들어간 것도, 어떤 작업을 하게 될지 몰랐던 것도,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유해공정들이 있는지 안내받지 못한 것도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그가 겪은 ‘불의의 사고’는 어쩌면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예정된 종착지일지도 모른다. 

23세 도훈씨에게 일어난 일

이도훈(가명)씨의 이야기는 2019년, 예년에 비해 아주 무덥지도 그렇다고 딱히 시원하다고도 할 수 없었던 지난 여름 7월15일, 자신이 다니고 있던 신안산대학교에서 교수추천으로 서울반도체 자회사인 ‘에스아이세미콘’에 장기현장실습을 나가면서 시작되었다. 그가 현장실습은 신청한 이유는 등록금을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에스아이세미콘’이 유일한 선택지였으므로, 그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그의 상급자는 심모차장이었다. 방사선 안전교육은 없었다. 심차장은 그에게 불량을 선별하는 방법, 기계를 작동하는 방법만을 알려주었다. 심차장이 유일하게 강조한 것은 ‘작업속도’였다. 심차장은 장치(인터락, 안전장치)를 해제해야 화면을 꺼뜨리지 않고 딜레이 없이 작업할 수 있다고 했다. 심차장의 말에 따르면 종이를 끼워 테이프로 막아 장치를 해제하는 것은 장비를 효과적으로 다루는 방법 중 하나였다. 손도 잘 닿지 않는 릴 끝부분에 불량이 나면 기계 속으로 머리를 집어넣어야 0.3cm 크기의 스티커를 무사히 붙일 수 있었다. 그렇게 도훈씨의 손은 하루에 천 번 이상, 머리는 하루에 20, 30번 이상 기계 속으로 들어갔다. 방사선을 다루는 작업자에게 반드시 지급되어야 할 안전장비나 피폭선량계 및 경보기, 차폐막 등은 구경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방사선은 아무런 보호막도 없이 도훈씨의 몸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피폭사고가 난 후 그가 알게 된 것은 모니터를 꺼뜨리지 않기 위해 테이프를 발랐던 장치가 방사선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였다는 것과, 방사선이 나오지 않으면 모니터가 꺼지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그가 작업할 때, 모니터는 늘 켜져있었다. 

미래를 저당잡힌 스물셋의 청년

그에게 일을 가르치고, 수시로 작업지시를 했던 심차장은 그를 자주 모욕했다. 도훈씨는 일을 배우는 속도가 빠른 편이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그는 4000개의 LED제품이 촘촘히 달려있는 릴을, 많게는 하루 4릴까지 검사했다. 그러나 작업속도가 빨라질수록 심차장은 더 많은 작업량을 요구했다. 하루에 ‘2만개’씩은 무조건 빼라고 하더니, 어느 날은 ‘누구는 5만개도 뺐다’면서 도훈씨를 모욕하고 괴롭혔다. 분명 하루 8시간 근무로 알고 이 공장에 들어왔는데, 출근 후 며칠 안 되어 12시간 주야교대를 지시하더니, 토요일 노동을 강요하기도 했다. 도훈씨가 모르는 일을 시켜놓고 그것도 모른다며 무작정 욕설을 한 적도 있었다. 도훈씨는 심차장의 요구에 도저히 다다를 수 없었다. 하루 중 절반을 보내는 공장에서 그는 심차장에게 덜 모욕당하기 위해 물량을 빼는데 집중하느라 몸의 이상도 금방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상증세 호소도 묵살당한 도훈씨는 일주일간 통증을 견디며 일했다. 50시간 추가피폭은 그렇게 발생했다. 도훈씨가 살기위해 퇴사 통보를 하자 그제야 에스아이세미콘 사장은 피폭 가능성이 있는 노동자 5명과 함께 몇 군데의 병원을 거쳐 원자력 병원을 찾았다. 이미 날카로운 통증은 도훈씨의 손바닥까지 퍼졌고, 손가락 껍질이 벗겨지더니 급기야 손톱마저 빠지기 시작한 상태였다. 해당 분야 전문가는, 허용 선량의 약 5000배까지 노출되어야 이와 같은 외상이 나타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병원에서도 앞으로 20년간 암 등의 질병을 추적 관찰해야 한다 했다. 

그는 단 스물셋의 나이에, 미래를 저당잡혀버렸다. 

학교의 돈벌이에 동원되는 학생들

이도훈씨의 아버지는 사고가 발생한 뒤 20일 뒤에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서울반도체 자회사 에스아이세미콘 사장이 피폭사고를 당해 미래가 불투명해진 사회초년생 아들에게 ’알려지면 너도 회사도 좋을 것 없으니 친한 사람들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협박했기 때문이다. 만약 현장실습이라는 애초의 교육 목적에 따른 점검들이 이루어졌다면, 도훈씨는 자신의 피해를 더 빨리 외부에 알릴 수 있었을 것이다. 추가 피폭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사고가 난 후에도 학교측은 사고사실 조차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 이도훈씨가 다닌 신안산대학의 교직원이나 교수 등 어느 누구도 그가 현장실습을 하고 있는 동안 단 한 차례도 현장실습 산업체 방문이나 학생면담 등을 진행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도훈씨가 다닌 신안산대학은 2016년, 교육부에서 실시하는 대표적인 현장실습사업인 LINC+ 사업(산학협력선도전문대학 지원사업)의 연차평가 결과 ‘매우 우수’ 등급을 받아 6억 5000만원의 사업비를 지원받았다. 근거는 ‘현장학습 참여학생 이수율 상승, 장기현장실습 참여학생 증가, 현장실습 업체로의 취업률 상승 등의 성과’였다. 이 중 어떤 항목에도 교육효과에 대한 부분이나, 학생안전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이뿐만 아니라 신안산대학은 2014년부터 2017년까지 특성화전문대학으로 선정돼 4년 연속 국가사업비를 지원받았다. 2017년 기준으로 교육부가 진행하는 ‘특성화전문대학 육성사업’은 특성화전문대학 총 80여교를 대상으로 한 지원사업으로 지원금 규모가 무려 2600억원이었다. 대학은 엄청난 규모의 지원금을 따내기 위해 더 많은 학생들을 현장실습, 취업 등으로 산업현장에 보내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학생의 안전이나 교육목표 달성은 뒷전인 이유가 여기 있었다.

도훈씨의 아버지가 학교에 사고 사실을 전했을 때, 도훈씨를 취업시킨 담당 교수는 책임을 통감하거나 위로의 말을 하는 대신 ‘몰랐다’, ‘나는 절차대로 했을 뿐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아버지는 그야말로 참담한 심정이 되었다. 

대학은 파견사업주인가

2018년 kbc 광주방송에서 보도한 ‘대학생 현장학습 실태’에서도 대학생 현장실습생들이 어떤 위험에 노출되어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전남 소재 J대학교의 대학생이 현장실습을 하던 중에 기계에 손이 끼어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으나, 산업재해 보험 적용도 일반 보험 적용도 받지 못했으며 담당 교수가 위로금을 빌미로 “어떠한 소송도 걸지 못”하도록 한 사실이 취재를 통해 드러난 것이다. kbc 광주방송의 취재에 따르면 해당 피해자의 담당 교수는 일종의 “영업사원 같은 역할”을 하였으며, 해당 대학은 “대학원에서 연구원으로 채용을 해서 임금도 주지 않고, 이런 재정지원사업을 유치해오면 거기서 일부를 자기 인건비로 가져가고 대학은 수수료를 먹고”하는 형태로 운영되어왔다고 보도했다. 대학이 기업과 용역계약을 맺고 인력을 제공하는 파견업체 사업주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온라인 포털사이트에 왕복 3시간이 걸리는 장거리 출퇴근, 고강도 업무에도 받는 것은‘학교에서 실습지원비로 받는 20만원’이 전부라는 한 대학생 현장실습생의 글이 올라왔다. 그는 이후 ‘자기소개서에 대외활동 한 줄이라도 더 쓰려고’ 이와 같은 부당한 상황들을 견디고 있다 했다. 또 다른 현장실습 경험자는 자신은 오히려 ‘현장실습비를 제출하고 실습’했고, 식비도 본인이 지급하며 현장실습을 했다고 적었다. 그들은 서로를 위로하며 ‘어쩔 수 없다’, ‘견디자’는 말을 나누었다. 

반드시 누군가에게는 벌어지고 말았을 비극

교육부와 대학, 그리고 기업은 학생들로부터 선택권을 빼앗은 뒤 이와 같은 빠져나갈 수 없는 터널 속에 그들을 밀어넣고 있었다. 대학은 기업에 ‘값싸고 단기로 사용하고 해고할 수 있는 젊은 인력’을 제공하고 해당 행위로 교육부에서 거액의 지원을 받아왔다. 2016년, 교육부가 마련한 ‘대학생 현장실습생 운영규정’에서도 ‘장시간(하루 9시간 이상) 노동’, ‘현장실습의 목적과 범위를 벗어난 업무 지시’ 등이 금지되어있지만, 과태료나 벌칙 조항이 없어 사실상 강제성은 없는 상황이다. 법 역시도 당사자에 대한 보호조치나 지원조치 없이, 학교와 기업 대상으로 한 지원방안사업 및 진흥 법률 중심으로 구성되어있을 뿐이다. 이와 같은 구조와 커넥션, 그리고 법적 안전장치의 공백 속에서 학생들은 그들이 주고받는 돈과 인력의 매개가 되는 ‘무엇’이 되어갔다. 

학교는 기업에 얼마나 많은 현장실습생들을 보내느냐, 얼마나 취업률을 높이느냐에 따라 지원금을 받고, 학생들로부터는 고액의 등록금도 받았다. 그들에게 도훈씨는 단순히 돈벌이의 수단일 뿐이었겠지만, 도훈씨는 그 학교에 등록금을 성실히 납부하기 위해 현장실습을 나가 그 고되고 위험한 순간들을 버텼다. 

영화 ‘엘리시움’에서 주인공 맥스를 돌본 고아원 교사는 ‘불공평’을 말하는 그에게 ‘삶이란 때론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렇게 배운 아이는 “잘리기 싫으면 들어가”란 관리자의 말 한 마디에 방사능 기계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NO"라고 말하지 못한 것은 가난과 사회가 그에게 가르쳐 온 것이었다. 영화 ‘엘리시움’은 자본에 의해 인간의 존엄이 어떻게 삭제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주인공 맥스의 ‘불의의 사고’는 이렇듯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 도훈씨의 사고가 그랬듯이. 그들에게 선택권은 주어지지 않았다. 

사회구조는 이런 불의의 사고를 당하는 청년 노동자들의 수를 일정하게 유지시킨다. 누군가 운 좋게 피해갔다 해도,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벌어지고야 말았을 사고라는 것이다. 이러한 필연적인 ‘불의의 사고’를 없애기 위해, 빼앗긴 학생들의 학습권과 인격권을 되찾기 위해  한시 빨리 우리는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 땅에서 위험 속에 아무런 선택권도 없이 방치된 청년들이 서로에게 ‘견디자’는 위로를 나누며 죽어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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