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피의사실공표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낸 수사 공보 개선 방안에 기자들 반응은 비판적이다. 오보를 내면 기관 출입을 금지하는 조항에 격앙된 반응을 보이는 한편, 검찰의 ‘피의사실 흘리기’를 실효성있게 막지 못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법무부는 30일 수사 중인 형사사건 내용 공표를 원칙 금지하는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이하 수사공보 규정)을 오는 12월1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수사공보 규정은 수사 중인 형사사건 내용의 공표를 원칙 금지하고 예외로 허용하는 내용으로, 이번에 새로 제정됐다.

규정은 검찰 공무원이 “공소제기 전 혐의사실 및 수사상황을 비롯해 형사사건 내용 일체를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다. 공개금지 정보는 피의자, 참고인의 △인격 및 사생활 △범죄전력 △진술·증언 내용 △검증․감정, 심리생리검사 내용 △증거 내용 및 증거가치 △모방 범죄우려가 있는 범행수단·방법 등이다.

▲향후 형사사건 공보에 활용될 보도자료 양식.
▲향후 형사사건 공보에 활용될 보도자료 양식.

사건관계인 인권 보호를 위해 공개소환과 포토라인 관행도 없어진다. 규정은 이들이 검찰에 출석하거나 압수수색·체포·구속 등을 당할 때 언론의 촬영을 일절 불허한다. 교도소장과 구치소장에게도 검찰·법원에 소환되는 피고인이 언론에 노출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할 의무를 부여했다.

공표가 허용되는 경우는 오보가 날 가능성이 명백한 경우와 국민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는 중요사건으로 제한된다. 불기소 사건도 사건 내용이 수사 종결 전에 언론에 공개돼 널리 알려진 경우 예외적으로 공개할 수 있도록 했다.

공표는 전문공보관이 검찰청장 승인을 받은 공보자료를 지정된 장소에서 배포하는 방식이다. 대검찰청 전문공보관은 대검 대변인, 고검 및 지검 경우 각급 검찰청의 장이 지정하는 검사나 4급 이상 검찰수사관이 맡는다.

사건관계인을 공개하더라도 익명 공개가 원칙이다. 차관급 이상 공무원 등의 공적 인물은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이하 위원회) 의결을 거쳐 공개하도록 정했다.

위원회는 위원장을 포함해 5명 이상 10명 이하로 구성하고, 이 중 민간위원을 과반으로 정한다. 위원회는 고위공직자 실명 공개 여부에 더해 △중요 사건의 수사 상황 공개 여부 △불기소된 사건의 내용 공개 여부 △기소 사건의 재판이 시작하기 전 내용 공개 여부 등을 심의한다. 과반수 출석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한다.

검사와 검찰 수사관의 ‘언론 접촉 금지’도 명시됐다. 규정은 “언론 관계자와 개별 접촉할 수 없으며, 이들이 검사실이나 조사실을 출입하게 해서는 안 된다”며 취재가 들어온 경우엔 “공보업무 담당자에게 문의하시기 바랍니다”라 답해야 한다고 정했다.

이 경우도 전문공보관이 “형사사건 내용을 공개하는 사안에서 설명의 편의 등을 위해 필요한 경우 사건 담당 검사나 수사관이 언론에 설명하게 할 수 있다”는 예외 사유를 뒀다.

‘오보내면 검찰 출입 금지’에 일부 기자들 격앙

기자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진 조항은 ‘오보 대응’이다. 오보 대응과 필요한 조치를 정한 제33조 2항은 “검찰청의 장은 사건관계인, 검사, 검찰수사관의 명예와 사생활 등 인권을 침해한 오보를 낸 기자에게 검찰청 출입을 제한할 수 있다”고 정했다.

검찰을 출입하는 A기자는 “대부분의 정부기관은 취재 내용이 사실이더라도 일단 부정한다. 피의자도 마찬가지다. 이 순간엔 오보이지만 결국 나중엔 오보가 아닌 것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상당하다. 오보기준을 자의적으로 두면 민감한 사안의 취재를 통제하는 효과를 낸다”고 말했다.

▲10월30일 제정된 법무부 훈령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 중 제33조.
▲10월30일 제정된 법무부 훈령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 중 제33조.

반발의 배경엔 이번 규정이 검찰의 자의적 피의사실 공표를 막지 못할 거란 우려가 깔려있다.대형 언론사의 경우 여론 영향력을 이용하고 싶은 검찰과 비공식 취재 경로를 만들 수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검찰에 소환된 사건 참고인에게 피의사실을 흘리는 등 특정 관계자들을 이용해 취재진들이 피의사실을 인지하게 만들 수도 있다. 기자와 검찰 공무원 간에 통화가 이뤄져도 이를 어떻게 수사기관이 파악할 수 있느냐는 회의도 나온다.

검찰 출입 B기자는 “진짜 문제는 검찰이 특정 언론에 비공식적으로 수사정보를 흘려서 수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관행”이라며 “수사정보 비공식 유출을 제어할 수 있는 감찰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법적으로 처벌이 가능하게 돼야 효과적일 수 있다. 부패범죄나 권력형 범죄 같은 사안은 알 권리 차원에서 충분한 공보 활동이 보장돼야 할 필요는 있다”고 밝혔다.

검찰 출입 C기자도 “검찰 공무원의 언론 접촉 금지 조항은 원래 예전부터 수사공보준칙에 있었는데 지켜지지 않았을 뿐”이라며 “군소 언론사의 검찰 취재만 더 힘들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 권력을 줄여야 피의사실 흘리기 관행을 본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립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한 검찰 출입 기자도 있다.

법무부는 이와 관련 “규정은 수사 중 인권 침해 오보가 발생한 경우, 검찰의 대응 조치로 ① 진상 확인을 위한 공개 허용 ② 정정보도 청구 ③ 출입제한 등 조치를 두고 있다”며 “언론이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 명예를 훼손하는 오보를 실제로 낸 경우에는 인권보호를 위해 출입제한 등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규정을 둔 것”이라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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