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6개월 영아에서 10대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국의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유통해 돈을 번 ‘다크웹’(dark web·폐쇄형 비밀 웹) 사이트 운영자가 32개국 공조 수사를 통해 검거됐지만, 한국 법원이 내린 형은 1년6개월에 그쳤다. 미국 법무부가 별도 혐의로 적시한 행위들이 한국에선 운영자의 형벌을 가볍게 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아동청소년성착취 피해의 지속성·심각성을 고려해 양형기준 등이 재정비돼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 경찰은 지난 2017년 미국 국토안보수사국(HSI)과 영국 국가범죄수사청(NCA) 등 외국 법집행기관의 공조수사를 요청 받아, 지난해 3월 다크웹 상 아동성착취물 사이트 ‘웰컴투비디오’(W2V) 운영자 손아무개를 검거했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법무부가 밝힌 조사결과 32개국 128만명 회원을 보유한 이 사이트에 8테라바이트 분량 25만건의 영상물이 등록돼 있었다. 45%는 이 사이트에 처음 게시된 걸로 파악됐고, 영유아·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영상에는 그들을 지칭하는 이름과 연령대 등이 담긴 제목이 달렸다. 사이트 회원들에게 성착취·학대를 받다 구조된 미성년자는 현재까지 23명. 세계각국에서 검거된 338명 가운데 71.9%(223명)는 한국인이었다. 미국 법무부는 손씨의 강제 송환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사성) 피해지원국의 박찬미 활동가는 “손씨는 약 3년 새 4억원이라는 상당한 수익을 얻었고 그에 대한 추징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위법성·고의성이 다분했음에도 ‘가장’이란 이유 등으로 1년6개월 형을 선고 받았다. 이 사건이 무엇을 시사하는지 살펴보는 게 상당히 중요하다”며 “한국 사회에서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이 돈이 된다는 점, 성인과 아동 사이 가치가 다르게 매겨진다는 점, 이런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해는 ‘감수할만한’ 점이 된다는 건 손씨 혼자 만든 상황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박 활동가는 30일 국회에서 열린 ‘아동성착취 사이트 다크웹 문제와 대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이 같이 밝혔다.

▲ 30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아동성착취 사이트 다크웹 문제와 대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권미혁·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정미 정의당 의원과 국회아동여성인권정책포럼 및 시민사회단체 등의 공동주최로 진행됐다. 사진=노지민 기자
▲ 30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아동성착취 사이트 다크웹 문제와 대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권미혁·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정미 정의당 의원과 국회아동여성인권정책포럼 및 시민사회단체 등의 공동주최로 진행됐다. 사진=노지민 기자

과거 한사성이 고발한 성착취 및 음란물 사이트 126곳 중 지난 8월까지 운영자가 처벌받은 경우는 단 두 곳, 실형 선고는 그 중에서도 단 한 명이 1년6개월형을 받은 게 전부다. 사건 중 45.7%는 불기소처분됐고, 기소된 사건의 약 절반은 벌금형으로 이어졌다. 박 활동가는 “불기소이유서와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초범인 점, 게시횟수가 적은 점, 피해자의 얼굴·신상을 특정할 수 없다는 점, 가해자의 직업·나이, 가해자가 유포로 얻은 이익이 없다는 점이 유리한 정상으로 반복적으로 등장했으며 이것이 기소여부 및 형량의 결정에 중요하게 반영됐다”고 밝혔다.

박 활동가는 “(검찰과 법원이) 피해를 입혔다고 생각될 정도의 음란물인지 따질 때 ‘음모가 나와야 한다’, ‘성기가 노출돼야 한다’고 신체부위를 요구하면서도, 신체부위만 노출되면 얼굴이 안 나왔으니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가해자 직업과 나이를 고려해 사회 내에서 품행을 개선할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하는 게 타당하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그는 “유포죄를 판단함에 있어 ‘영리목적’을 따지는 것은 영리목적 유포를 더 강하게 처벌하는 성폭력처벌법 제14조3항까지도 사문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모든 피해자구제를 법적으로 해결하도록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법적 구제절차 외에도 피해구제를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는 점도 당부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박예안 변호사는 “(한국 법원이) 아동성착취물 처벌을 피해자 시각에서 접근하는 게 아니라 이를 소비한 자가 어떤 의도로 영상을 접하는지에 양형 초점이 맞춰져있지 않은가 생각된다”며 “이런 시각차이로 인해 아동성착취 영상을 내려받은 남성 또는 이용자도 ‘성착취 공범’ 개념이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남성이라면 접하는 ‘야동’을 그저 소비한 것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분석했다. 예컨대 해당 사이트에 손씨 본인이 아닌 회원들이 업로드한 아동성착취물이 상당하다는 점이 한국에선 손씨에게 유리하게 작용됐지만, 미 공소장에는 ‘공모 혐의’의 별도 기소조항으로 적시됐다는 것이다. 또한 손씨는 웹사이트 이용료를 받을 때마다 비트코인 구좌를 새로 만들어 100만개 이상 구좌가 만들어졌는데 미국에선 이를 ‘자금세탁’으로 별도 기소했다. 박 변호사는 “한국에선 양형에 영향이 없었을 뿐 아니라, 추징 가능성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며 “피고인은 ‘포인트 시스템’을 적극 활용했다. 포인트를 지불받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새로운 영상을 업로드하는 것이었다. 다른 회원들이 업로드된 영상을 다운로드 받을 때 최초 업로드자도 포인트를 지급받는 수익창출 구조다. 적극적으로 영상 업로드를 독려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문제 사이트를 통해 아동성착취물을 소지한 이들에 대한 처벌도 엇갈렸다. 박 변호사는 “2017~2018년 문제가 되고 있는 사이트에서 약 9개월 동안 968회, 한 달에 100회 넘는 아동성착취영상물을 다운로드한 A씨는 지난 1월 서울남부지법에서 벌금 300만원에 처해졌다. 반면 미국 메사추세츠주에서 해당 웹사이트 영상을 다운받아 소지한 B씨는 5년 징역형과 5년 보호관찰 처분을 받았다”고 전했다.

박 변호사는 “‘아동청소년음란물’ 시장은 인터넷 확산에 힘입어 전세계적으로 수십억달러 규모에 이르는 산업이 됐다”며 “한 번이건 열 번이건 영상으로 인한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고, 피해자에게 지속적 피해를 입힌다는 점을 인지하고 법안 개정 등으로 연결되도록 해야 한다. 처벌 강화가 능사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방지·주의 효과가 있기 때문에 양형 기준이 어느정도 부합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현숙 탁틴내일(ECPAT KOREA) 대표는 온라인에서 성범죄자의 자유를 상당 부분 제한하는 해외 사례들을 참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의 19세 청년이 온라인 게임에서 만난 10세 남자 어린이를 성추행한 사건이 벌어진 뒤 뉴욕주 법무부가 성범죄자의 온라인 게임 계정을 중지하는 방침을 밝히고 마이크로소프트, 블리자드, EA 등 게임 회사들도 동의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미국 루이지애나주에서는 성범죄자가 SNS를 사용하려면 자신의 범죄 내용, 관할 법원, 주소, 신체 특징 등을 표기해야 하며 이를 어기면 2~10년 징역형 또는 1000달러 이하 벌금형에 처하는 법안을 발효했다. 매치닷컴, 이하모니닷컴, 스파크네트워크 등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들은 성범죄 척결에 나서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 대표는 또 “이번 다크웹 수사에서 나타났듯이 국제범죄조직 등은 비트코인을 범죄에 활용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 비트코인과 다른 암호화된 화폐들은 사용자의 위치와 신원을 파악해야 하는 경우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 익명성이 있기에 FBI, 유로폴을 포함한 다양한 기관이 가상화폐 특히 암호화된 화폐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며 “2014년 온라인상 공유된 아동 성학대물 중 9%는 상업적 성격을 지니고 있고, 비트코인을 대가로 익명 플랫폼에서 아동 성학대물이 교환되는 사례들도 당시 보고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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