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人之諾諾, 不如一士之諤諤.
천인지낙락, 불여일사지악악.

천 사람이 예예 하고 대답하는 것은, 한 선비가 직언하는 것만 못하다.

이 말은 시진핑이 ‘허베이성(河北省) 성위원회 간부 세미나 민주생활회의 연설’ 때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상군商君열전 제8>의 글에서 따왔다. 상군은 전국시대 법가인 상앙商鞅을 말한다.

시진핑은 지도간부의 업무 담당능력을 매우 중시한다. 사람을 뽑고 부릴 때 담당능력을 중요하게 평가한다. 담당능력은 구체적으로 어디에서 드러나는가? 시진핑은 대담하게 참말을 말하고 바른말을 듣는 데서 구현된다고 보고 있다. 때문에 확실하게 참말을 말하고 바른말을 듣는 것은 모두 용기와 당성黨性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해와 인간관계는 대단히 복잡다단하다. 참말을 말하지 않고 직언을 듣지 않는 환경이 되면 뒷전에서 불평을 늘어놓고 터무니없는 소리를 많이 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누구도 뒤에서 말하는 사람이 없고, 어떤 사람도 앞에서 말하지 않게 된다. 

일단의 지도간부들이 기율과 법을 위반해 처벌을 받을 때 거의 모든 사람들이 조직내부의 감독이 충분하지 않았고, 아무도 자신을 일깨워주지 않았다고 말한다. 만약 그때 귀에 대고 말해주거나 소매를 이끌어 일깨워줬더라면 그런 큰 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민주생활회의 때 진심으로 공명정대하게 처리하거나 속마음을 털어놓고 진실하게 비평할 수 있겠는가? 일부 간부들에서 문제의 조짐이 나타났을 때 일어나서 공정하게 처리하거나 정의로운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개인의 당성 수양 뿐 아니라 정당에서 자신의 완벽과 자아의 혁신능력에 더욱 관계된다. 작은 문제를 일깨우는 사람이 없고, 큰 문제를 비판하는 사람이 없으면 큰 잘못을 초래하게 한다. 시진핑은 이것이 바로 “천 사람이 예예하고 대답하는 것은, 한 선비가 직언하는 것만 못하다”는 것을 강조한 이유이다.

▲ 사마천(司馬遷). 사진=위키백과
▲ 사마천(司馬遷). 사진=위키백과

 

사마천은 한무제漢武帝 시기의 사가史家로 중국 역사의 전범典範인 <사기>를 저술했다. 역사를 편년체가 아닌 입체적 시각에서 다룬 기전체紀傳體의 효시인 <사기> 130편은 중국 전설의 황제黃帝 시대로부터 한 무제 때까지 2000년의 방대한 역사를 다루고 있다. 원전은 다음과 같다.    

趙良曰: “千羊之皮, 不如一狐之掖; 千人之諾諾, 不如一士之諤諤. 武王諤諤以昌, 殷紂墨墨以亡. 君若不非王乎, 則僕淸終日正言而無誅, 可乎?”
商君曰: “語有之矣, ‘貌言華也, 至言實也, 苦言藥也, 甘言疾也.’ 夫子果肯終日正言, 鞅之藥也. 鞅將事子, 子又何辭焉!”
조량이 말했다.
“천 마리의 양가죽은 여우 한 마리의 겨드랑이 가죽만 못합니다. 천 사람이 예예 하고 대답하는 것은 한 선비가 직언하는 것만 못합니다. 주나라 무왕은 신하들의 올바른 직언으로 나라가 부흥했고, 은나라 주왕은 신하들이 입을 다물어 망했습니다. 당신이 만일 왕이 잘못했다고 나무라지 않는다면 제가 온종일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죽이지 않으시겠지요? 그렇게 하겠습니까?”
상군이 말했다.
“옛 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겉치레 말은 허황되고, 마음속에서 나오는 말은 진실되며, 듣기 괴로운 말은 약이 되고, 달콤한 말은 독이 된다.’ 선생께서 진정으로 하루 종일 바른말을 해 줄 수만 있다면 나에게 약이 될 것입니다. 나는 선생을 스승으로 섬기려 하는 데 선생께서는 어찌하여 사양하려 하십니까?”

10년 동안 진나라 재상을 맡고 있던 상군이 어느 날 전국시대 책사인 조량을 만나 스승으로 섬기고 싶다는 뜻을 밝히며 대화를 나눴다. 조량은 “저는 구태여 사귀고 싶지 않습니다. 공자는 ‘어진 이를 추천하며 받드는 자는 번영하고, 어질지 못한 자를 불러 모아 왕 노릇을 하는 자는 몰락한다’라고 말했다”면서 자신이 어질지 못하기 때문에 상군의 뜻을 따를 수 없다고 단칼에 잘랐다. 상군이 “내가 진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오고대부 백리해白里奚와 비교해 볼 때 누가 더 현명하다고 생각하느냐”며 물었다. 

조량은 “천 마리의 양가죽은 여우 한 마리의 겨드랑이 가죽만 못합니다, 천 사람이 예예 하고 대답하는 것은 한 선비가 직언하는 것만 못합니다(千羊之皮, 不如一狐之掖 ; 千人之諾諾, 不如一士之諤諤).”고 말한 뒤 백리해의 덕정德政을 높이 평가하고 상군의 법가 통치방식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조량은 이어 “<시경詩經>에서는 ‘덕을 믿는 자는 일어나고 힘을 믿는 자는 멸망한다’라고 했다”면서 “당신의 처지는 아침 이슬처럼 위태로운데도 아직 목숨을 연장하여 더 오래 살기를 바라느냐”고 직언을 날렸다. 상군의 혹독한 법가통치를 비판한 것이다. 이로부터 다섯 달 뒤 진나라 효공孝公이 죽고 태자가 자리를 이어 혜문왕惠文王이 되었다. 혜문왕은 모반죄로 상군을 말 다섯 필로 끌어당겨 찢어 죽이는 거열형車裂刑으로 처형했다. 사마천은 상군을 “효공에게 벼슬을 얻고자 제왕의 도로 유세한 것을 보면 내용이 없고 화려한 말을 늘어놓은 것이지 마음속으로 하려던 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면서 덕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혹평했다. 

조량과 상군의 이 대화를 보면 옛 사람들이 직언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가를 알 수 있다. 직언이 무엇 때문에 귀중한 것인가? 많은 직언은 시대의 병폐를 정통으로 찔러 사람들로 하여금 문제의 본질을 분명하게 알고, 일할 때의 부족한 점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이른바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 이롭고, 충언은 귀에 거슬리지만 행동에는 이롭다’는 이런 ‘직언’을 항상 귀에 담고 있으면 불시에 자신을 일깨우며 경종을 울려 환난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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