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하세요”라는 말은 당위적이지만 ‘왜’ 투표해야 하는지 떼어놓고 얘기하면 공허한 구호가 되기 쉽다. 선거 의미를 제시하지 못하고 투표하라는 말만 되뇌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지난 2016년 4월13일 치러진 20대 총선은 세월호 참사 후 첫 국회의원 선거였다. 2014년 세월호 참사는 국민적 트라우마를 남겼고, 2주기를 앞두고 열린 선거에서 주요 의제 중 하나가 됐다.

선거를 앞두고 416연대는 세월호 특조위를 ‘세금 낭비’라고 비난하거나, 유가족에 ‘시체 장사’라는 표현을 쓴 이를 정리해 ‘세월호 모욕 총선 후보 명단’을 발표했다. 또한 당시 ‘페미당’은 ‘성평등을 가로막는 정치인’ 명단을 발표했고, ‘레인보우 보트’는 ‘성소수자 혐오발언’을 한 12명의 후보 리스트를 공개하는 등 다른 소수자 의제도 제시됐다.

이런 명단을 담은 칼럼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중 한 사람이 총선 당일 투고했다. 살아 있었다면 생애 첫 투표권을 행사했을 단원고 학생들을 언급하며 “이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지금 투표하러 가십시오”라고 말하는 글이었다. “소수자와 약자들을 위한 당신의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라는 게 전체적인 내용이었다.

[ 관련기사 : 오마이뉴스 ‘이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지금 투표하러 가십시오’ ]

▲2016년
▲2016년 4월13일 오마이뉴스 기사. 

당일 근무 중이던 여러 편집기자 중 한 사람이던 나는 기사 내용의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오타·비문을 다듬었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해당 칼럼을 편집했다는 이유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고 이후 법정에 섰다.

기소 당시, 검찰은 공소장에 “시민기자 및 오마이뉴스 편집국 최종 책임자와 공모하여” 내가 기사 게재에 적극 참여했다고 썼다. 그러면서 칼럼을 편집한 행위가 공직선거법 58조의 2 단서 제3항, ‘특정 정당 또는 후보자를 지지·추천·반대하는 내용을 포함하여 하는 투표참여 권유 행위’에 해당한다고 했다. 편집기자만 콕 집어 기소한 것도 황당했지만, 투표의 중요성과 소수자 보호의 가치를 담은 글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판단한 것에 의아했다.

2019년 1월 1심(최병철 판사) 판결에서 재판부는 글 내용이 “가치에 따른 투표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며 “칼럼을 접하는 독자들 대부분은 칼럼에서 언급한 후보자들의 지역구 유권자가 아니므로, 한두 차례 언급된 특정 후보자보다는 글의 전체적인 맥락상 필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이슈나 가치에 더 주목할 것으로 보인다”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의 항소로 이어진 2심(차문호 판사)에서 재판부는 추가로 제시된 증거 없이 법리해석만 달리해 원심을 파기하며 벌금형 선고유예를 선고했다. 어쨌든 내가 편집기자로서 해당 칼럼 게재에 참여한 게 맞으며, 그 내용이 ‘특정 후보를 반대하며 투표를 권유한 행위’에 해당한다는 거였다. 10월 대법 판결도 고등법원의 손을 들어줬고, 유죄는 확정됐다.

▲오마이뉴스 김준수 기자.
▲김준수 오마이뉴스 기자.

칼럼 편집을 이유로 기소돼 대법 ‘유죄 확정’ 판결이 나오기까지 내내 의문이 들었다. 출마 후보의 과거 행적을 다루며 투표를 독려한 시민의 칼럼마저 법적 처벌 대상이 되어야 할까? 또 언론사의 편집기자만 따로 기소·처벌될 수 있다면, 매체의 자기검열을 부추기지는 않을까?(한국에서 언론사 편집기자가 형사 처벌된 것은 박정희 정권 사례가 마지막이었다.)

사건의 칼럼 내용을 곱씹을 때마다, 앞서 언급한 생각으로 돌아가게 된다. 투표 참여를 권유하면서도 ‘왜’ 유권자가 나서야 하는지 언론조차 말할 수 없다면, 그보다 공허한 투표 독려가 또 있을지 말이다.

지난 2016년 내가 기소됐을 당시, 전국언론노조는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시민의 기고에도 위 조항을 적용한다는 것은 사실상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조용히 기표만 하라’는 침묵의 강요에 다름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대법 판결이 나온 지금, 당시 언론노조의 성명을 인용해 다시 묻고 싶다. 선거 국면에서 후보 검증의 책무가 있음에도, 언론이 투표를 독려하려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투표장에 가라는 말만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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