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전 법무부 장관 아내 정경심(57) 교수가 지난 23일 영장심사를 받으려 법원에 나오면서 처음 포토라인에 섰다.

24일 아침 한국일보와 서울신문은 정 교수 얼굴을 블러(Blur, 흐림) 처리했다. 경향신문(1면)과 한겨레(8면)는 아예 뒷 모습을 실었다. 반면 조선, 동아, 중앙, 국민, 세계일보는 정 교수 얼굴을 공개했다. 뉴스통신사 뉴시스도 마찬가지였다. 정 교수 얼굴을 블러 처리했다가 24일 새벽 구속되자 얼굴을 공개한 언론사도 있었다. 

▲ 지난 24일자 서울신문 3면
▲ 지난 24일자 서울신문 3면

고심 끝에 다른 판단 내린 언론사들

언론은 왜 다른 판단을 내렸을까. 정경심 교수가 언론에 초상권 보호를 요청하자 언론사들은 내부 논의를 거친 끝에 ‘공개’ 또는 ‘비공개’ 판단을 내렸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일관되게 공인으로 보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한겨레 관계자는 “한겨레 취재준칙을 살폈고, 정 교수를 공인으로 보기 힘들어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고 밝혔다. 경향신문 관계자는 “공인 여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으나 피의자 인권 보호 차원에서 블러 처리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 중앙일보는 지난 23일자 3면 보도에서 정경심 교수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다.
▲ 중앙일보는 지난 23일자 3면 보도에서 정경심 교수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다.

중앙일보는 처음에는 얼굴을 공개하지 않다가 영장 발부 이후부터 공개했다. 중앙일보 관계자는 “내부 회의와 법무팀 자문을 거쳐 내린 결론”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사내 의견이 엇갈린 데다 본인이 초상권 보호를 계속 요구했다는 점 등을 고려해 블러처리했다”면서 “하지만 법원이 영장을 발부하면서 정씨의 범죄혐의가 상당 부분 소명된다고 했기에 초상권보다 국민의 알 권리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조선일보와 TV조선도 엇갈렸다. TV조선은 23일 뉴스9에서 “국민의 관심이 매우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정교수를 공인으로는 볼 수가 없고 아직 혐의도 확정되기 전이어서 얼굴을 공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설명했다. 반면 24일 조선일보는 “과거 국정 농단 사건에서 일반인이었던 최순실씨와 딸 정유라씨 모습도 모두 공개됐다. 그런 점을 고려해 본지는 정씨 모습을 공개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서울신문은 24일 아침신문 1면에 정 교수 사진을 쓰면서 “공직자였던 조 전 장관과 달리 정 교수는 공인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했다”고 밝혔다. 조선일보와 서울신문은 같은 사안을 놓고 정반대의 결론을 내린 셈이다.

▲ 24일자 조선일보 1면. 조선일보는 이날 1면에 정경심 교수 얼굴을 공개했다.  조선일보는 “그간 법원에서 영장 심사를 받으러 나온 주요 인물은 대부분 포토라인에 섰고 언론은 그 모습을 보도했다. 정씨는 조 정 장관의 아내로 이 사건 핵심 인물이다. 과거 국장 농단 사건에서 일반인이었던 최순실씨와 딸 정유라씨 모습도 모두 공개됐다”며 공개 이유를 밝혔다. 위 기사 흐림처리는 미디어오늘이 편집했다.
▲ 24일자 조선일보 1면. 조선일보는 이날 1면에 정경심 교수 얼굴을 공개했다. 조선일보는 “그간 법원에서 영장 심사를 받으러 나온 주요 인물은 대부분 포토라인에 섰고 언론은 그 모습을 보도했다. 정씨는 조 정 장관의 아내로 이 사건 핵심 인물이다. 과거 국장 농단 사건에서 일반인이었던 최순실씨와 딸 정유라씨 모습도 모두 공개됐다”며 공개 이유를 밝혔다. 위 기사 흐림처리는 미디어오늘이 편집했다.

매체 성격이 이번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한 미디어 업계 관계자는 “신문은 심의도 안 하고 (법적 대응 외에) 제재할 방법이 없다. 반면 방송은 심의에 문제가 될 수 있어 모자이크 처리한 것 같다”고 했다. 방송사들은 4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특히 인권침해 등 사안에 적극 심의하고 본인이 초상권 보호를 요청한 점에서 신중하게 대응한 것으로 보인다.

뉴시스는 처음부터 블러 처리를 하지 않았다. 뉴시스 관계자는 “초상권 침해를 주장하기 힘들다. 정 교수는 공적으로 논란이 된 사안의 핵심 인물로 떠올랐다. 국민의 알 권리고 공공성이 있다”고 했다.

▲ 모든 방송사들은 정경심 교수 얼굴에 흐림 처리하고 있다. 사진=각 방송사 메인뉴스 화면 갈무리
▲ 모든 방송사들은 정경심 교수 얼굴에 흐림 처리하고 있다. 사진=각 방송사 메인뉴스 화면 갈무리

회식지대에 선 정경심

얼굴 공개 여부를 가른 중요한 잣대는 ‘공인’이었다. 공인의 사전적 의미는 ‘공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고위 공무원, 국회의원 등 공직자가 대표적인 공인이다. 이들은 세금으로 월급을 받고 국가 업무를 하기에 사생활 침해를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한다. 

문제는 공인의 기준을 세우는 게 생각보다 명쾌하지 않다. 박근혜 정부 때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명예훼손 통신심의 제도를 바꾸며 ‘공인’ 기준을 명문화하려 했는데 이 과정은 공인 규정의 맹점을 드러낸다. 방통심의위는 ‘차관급 이상 공무원’, ‘교육감’, ‘치안감급 이상 경찰공무원’ 등으로 정했지만 ‘비선 실세’나 ‘전직 고위 공무원’은 공인이 아닌가라는 등의 반박이 끊이지 않았다.

윤성옥 경기대 영상미디어학과 교수는 “이런 경우가 제일 어렵다. 공인인지 일반인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그레이존(gray zone)’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경심 교수는 판단하기 모호한 회색지대에 있다고 했다. 언론사들이 각기 다른 판단을 내린 것도 이 때문이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책 ‘미디어 법과 윤리’에서 미국 명예훼손법상 공인은 △공직자 △전면적 공인(전적인 공인) △상황적 공인 등으로 나눌 수 있다고 전했다. 전면적 공인은 ‘유명인’을 말한다. ‘상황적 공인’은 논쟁에 해당 사람이 얼마나 참여했느냐를 따져서 판단한다. 정 교수의 경우 원론적으로 보면 공인의 가족일 뿐 본인은 공인이 아니지만 공적 사건의 중심에 선 ‘상황적 공인’에 가깝다.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대학교수로 이미 얼굴을 검색하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람이다. 대중에게 어느 정도 알려지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지위에 있고 공적 관심사안의 중심인물이 됐다면 공인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손지원 변호사는 교수 자체는 공인이 아닐 수 있지만 류석춘 교수처럼 물의를 빚는 발언을 한 교수가 있다면 ‘관심사안의 중심인물’이 돼 공인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공적 사안’에 본인이 의도적으로 관여한 게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원은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변호사는 “언론이 공인으로 만들어 놓고 사진을 노출한 건 아닌가. 정 교수는 직접 언론에 인터뷰하고 나선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 지난 24일자 경향신문 1면.
▲ 지난 24일자 경향신문 1면.

신중한 게 더 낫다

이번 논란에서 ‘얼굴 공개’를 주장하는 쪽에선 어김없이 ‘정유라’와 비교했다. 그는 비선 실세의 자녀로 직접 국정농단을 하지 않았지만 ‘공적 사안의 당사자’로서 얼굴이 공개됐다. 조선일보가 얼굴을 공개하며 최순실, 정유라 사례를 근거로 들었다. 김주하 MBN 앵커는 “최순실 정유라 등과 달리 모든 TV언론은 정경심 교수의 얼굴을 가려줬다”고 지적했다.

윤성옥 교수는 “최순실은 국정농단의 당사자라 공개하는 게 맞지만, 정유라까지 공개했어야 했는지는 고민해봐야 한다. 김무성 의원 사위 마약 사건도 마찬가지다. 그는 공직자의 가족일 뿐 공인이 아니다”라고 했다. 원은자 변호사는 “최순실은 국정농단 당사자라 워낙 큰 사안이긴 했지만 본인이 촬영 거부를 했다면 이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강혁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언론위원은 “얼굴을 공개한 언론이 틀렸다는 건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흐림처리를 한쪽이 옳다고 본다. 단정 짓기 어려운 상황에서 피의자의 인권 보호 측면에서 신중하게 고려한 쪽이 더 낫다. 게다가 조 전 장관은 이미 사임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로 다른 결론을 내렸지만 언론이 내부 논의와 ‘고민’하는 과정을 거쳐 의미가 있다는 평가도 있다. 윤성옥 교수는 “지금은 적어도 언론이 정경심 사건을 두고 고민하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몰려가는 것보다 생각하고, 고민하고, 나름의 원칙을 지켜가는 언론이 다양하게 있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이강혁 위원은 “이번 논란이 일관성 있는 기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 참고문헌= ‘미디어 법과 윤리’(강준만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