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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가 ‘노동’을 말하기 시작하다
드라마가 ‘노동’을 말하기 시작하다
[성상민의 문화 뒤집기]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부터 ‘닥터탐정’, ‘청일전자 미쓰리’까지 노동 다루는 드라마... 다양성 확대

갈수록 한국 TV의 영향력은 감소하고 있다. 단기간에 급성장한 OTT 서비스의 위력은 해외에 이어 한국에서도 파급을 미치며 방송과 연관된 모든 분야를 바쁘게 움직이도록 만들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에서 드라마 역시 예외는 아니다. 주말 드라마나 일일 드라마처럼 TV를 보기 쉬운 중년, 노년층이 결집하는 작품이 아닌 이상 더 이상 압도적인 시청률을 기록한 작품도, ‘국민 드라마’도 찾기 어렵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방송국과 드라마 제작사는 어떻게든 시대의 조류를 따라가기 위해 고심한다. 주 5일제에 맞춰 달라진 생활 환경을 반영하기 위한 ‘금토 드라마’나 전통적 한국 시트콤의 변형인 ‘예능 드라마’, 한국에선 쉽게 찾아보기 어려웠던 ‘장르 드라마’도 이러한 고심의 산물이다. 그리고 2019년, 한국에서는 본격적으로 ‘노동’을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가 점차 등장하고 있다.

한국 드라마가 지금까지 ‘노동’의 문제를 전혀 다루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일본 드라마 ‘파견의 품격’을 원작으로 한 2013년 KBS 드라마 ‘직장의 신’, 2015년 최규석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제작된 JTBC 드라마 ‘송곳’을 비롯해 드문드문 노동의 문제를 다뤘던 작품은 꾸준히 나왔었다. 그러나 주류는 아니었다. 직장 생활의 애환을 다루거나 서민의 가난한 삶을 다루는 작품은 나와도, 이들이 삶을 영위하기 위해 매일 경험하는 ‘노동’을 중점적으로 바라본 작품은 손에 꼽았다. 마치 윤태호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tvN 드라마 ‘미생’에서 정규직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턴들과 상사 기업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직장인은 나와도 노동조합은 물론 이들의 노동 자체를 고민하는 부분은 드러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2019년에는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가 관찰되고 있다. 2-3년에 잘해봐야 한 작품 정도 나오면 족했던 ‘노동’에 대한 드라마가 지난 일 년 사이에 세네 작품 이상 등장했다. 그 첫 시작을 연 작품은 올해 4월부터 5월까지 방영한 MBC 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이다.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으로 발령받은 전직 유도 교사 ‘조장풍’의 좌충우돌 부당노동행위 수사극을 그린 작품은 지금까지 한국 드라마가 다루지 않았던 ‘근로감독’을 소재로 삼으며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기업들이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하여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현실의 모습과 이들의 부정을 심판하기 위해 조장풍을 비롯한 동료와 시민들이 함께 힘을 합쳐 전략을 짜고 작전을 펼치는 통쾌함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비록 전반적 TV 시청률이 침체된 상황에서 단 한 번도 최고 시청률 10%를 넘기지 못했지만, 최고 시청률 8.7%(이하 닐슨코리아 기준)을 기록하며 한동안 시청자들에게 주목받지 못했던 MBC 드라마에 조금이나마 활기를 주었다.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의 배턴을 이어받은 작품은 7월부터 9월까지 방송한 SBS 드라마 ‘닥터탐정’이었다. ‘닥터탐정’은 드라마 제작진부터 파격적이었다. ‘닥터탐정’의 PD를 담당한 박준우 PD는 ‘닥터 탐정’을 연출하기 전까지 드라마를 연출한 적이 없었다. 주로 ‘그것이 알고 싶다’, ‘궁금한 이야기 Y’, ‘SBS 스페셜’을 비롯해 시사교양 프로그램이나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PD였다. ‘닥터탐정’의 극본을 담당한 송윤희 작가 역시 마찬가지이다. 송윤희 작가는 산업의학을 전공한 의사인 동시에 영화 감독이자 극작가라는 독특한 이력이 있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전공의로 활동한 감독은 직장을 퇴사한 이후 평소 의료 체계에 지니던 고민과 비판적인 의식을 바탕으로 2011년 의료 민영화를 비판하는 독립 다큐멘터리 ‘하얀 정글’을 연출했다. 이후로도 송윤희 작가는 지속적으로 단편 영화를 만드는 동시에, 2014년에는 임권택 감독의 영화 ‘화장’의 각본으로도 참여하는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발하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창작자였다.

▲SBS '닥터탐정'.
▲SBS '닥터탐정'.

시사교양 프로그램 전문 PD와 산업전공의 이력이 있는 다재다능한 창작자가 만난 결과는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산재 사건, 서울교통공사 구의역 정비 노동자 사망 사건 등 실제로 발생한 산재 사건을 연속 드라마에 적절히 녹이는 동시에 산재 문제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치열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추리물’과 ‘수사물’의 장르로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산재로 인해 고통 받는 이들의 심정과 기업과 정부 기관의 유착으로 방지할 수 있었던 산재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 역시 놓치지 않았다. 비록 첫 화에서 최고 시청률 5.7%를 기록한 이후 시청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했지만, 지속적으로 드라마에 관심을 가지는 마니아 팬을 확보할 수 있었다.

‘닥터탐정’이 종영되자 바로 그 뒤를 이어 tvN에서는 드라마 ‘청일전자 미쓰리’를 방송하며 노동 소재 드라마의 흐름을 다시 이어 나가는 상황이다. ‘청일전자 미쓰리’는 많은 이들에게는 생소한 ‘노동자 자주관리’를 소재로 삼는다. 노동자 자주관리는 사장이 기업을 경영하는 대신 노동자 조직이 스스로 기업을 운영하는 형태를 의미한다. 한국에선 흔하게 찾아보기는 어려운 경영 방식이지만, 키친아트나 우진교통처럼 일부 기업이 오랜 투쟁을 바탕으로 강고하면서도 실력을 갖춘 노동조합의 힘으로 오랜 기간 탄탄히 회사를 유지하는 사례가 존재한다.

‘청일전자 미쓰리’는 이러한 노동자 자주관리의 모습을 코믹과 감동을 적절히 섞은 방식으로 드러낸다. 갑작스럽게 사장이 사라지며 위기에 놓인 가상의 중소기업 ‘청일전자’를 바탕으로 회사에 덩그러니 남겨진 노동자들이 스스로 기업을 경영하게 되는 이야기를 다루는 ‘청일전자 미쓰리’는 다양한 에피소드와 등장인물 사이의 관계를 통하여 회사의 의미를 묻는다. 동시에 회사에 단순 고용된 노동자들이 갑작스럽게 회사를 경영하게 되며 경험하는 해프닝, 기업을 위해 일하지만 제대로 된 권리를 받기 어려운 노동자들의 고통, 그리고 수직적 하청 구조에서 대기업에 종속된 중소기업의 실태 등을 녹여내며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현실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작품이 전반적으로 잔잔하고 통쾌하지는 않기에 평균 시청률은 2-3%선을 유지하는 중이지만, 이전까지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소재에 도전하는 모습은 분명 인상적이다.

▲tvN '청일전자 미쓰리'.
▲tvN '청일전자 미쓰리'.

이 밖에도 전면으로 노동을 다루지는 않았지만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드라마가 지속적으로 2019년에 발표되었다. OCN은 인기 수사극 시리즈 ‘보이스’ 시즌3를 5월에 방송하며 시즌2에 이은 여성 혐오 문제, 그리고 최근 한국인들이 대거 연루된 것으로 밝혀지며 충격을 낳은 ‘다크웹’을 소재로 삼으며 많은 주목을 받았다. 9월에는 ‘청일전자 미쓰리’와 비슷한 시기에 국가인권위원회(단, 작중에서는 ‘인권증진위원회’라는 가공의 기관으로 등장한다.) 조사관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신작 ‘달리는 조사관’을 방송하며 OCN 특유의 수사극과 인권 문제를 결합한 드라마를 시도했다. 성폭행, 군대 의문사 등 한국 사회를 들썩이게 만든 문제를 비롯하여 이주노동자 학대, 용역깡패의 노동자 대상 폭력 등 노동과 관련된 문제도 같이 작품의 소재로 삼는 작품은 비록 1% 이하의 낮은 시청률로 고전하고 있지만, 수사극이 다루는 소재의 폭을 넓히는 시도는 주목할 수 있다. tvN 역시 김규삼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삼은 드라마 ‘쌉니다 천리마마트’에서 원작에도 부분적으로 등장했던 노동조합, 정리해고 등의 소재를 드라마에도 그대로 반영하는 방식으로 노동의 이야기를 드러내었다.

왜 이렇게 2019년에 우후죽순처럼 노동을 소재로 삼은 드라마가 급증한 것일까. 방송업이 전반적으로 침체하는 상황에서 최대한 트렌드를 따라 잡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고려하면, 2019년 현재 한국에서 가장 화두가 되는 문제가 ‘노동’이라는 인식을 가지며 이를 반영하는 시도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노동’의 문제를 드라마로 다루면서도 차별성과 장르적 몰입감을 주기 위하여 ‘산재 수사’, ‘부당노동행위 수사’ 같은 수사 장르의 변형, ‘노동자 자주관리’ 등 드라마적 요소의 결합으로 표현의 폭을 넓히려 한다. 비록 이렇게 방송된 작품들 중에서는 ‘특별관리감독관 조장풍’ 정도만이 시청률 차원에서 성과를 거뒀지만, 한정된 소재에 천착했던 한국 드라마의 다양성이 점차 확장되는 모습에는 게속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동시에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노동 권리’를 말하는 드라마가 속속 등장하면서도 정작 드라마를 만들고 제작하는 방송국과 드라마 제작사들은 여전히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노동을 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전히 수많은 방송 노동자들이 고된 야간-장시간 촬영에 시달리며, 열악한 촬영 환경에서 안전을 위협받는다. 제대로 된 근로계약을 체결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 문제가 발생해도 제대로 피해를 보상받는 것도 쉽지 않다. 자신들의 노동 환경을 바꾸지 못한 이들이 노동 문제를 말하는 드라마를 만드는 모습에서는 가끔씩 위화감과 씁쓸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올해 ‘청일전자 미쓰리’, ‘달리는 조사관’ 등의 드라마를 방송한 CJ ENM은 같은 해 방송한 ‘아스달 연대기’의 야간-장시간 촬영 등 노동 문제를 지적받았다.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을 방송한 MBC는 ‘2시 뉴스외전’의 부당한 작가 해고로 인해 방송작가유니온(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의 항의 행동이 이어지고 있으며, ‘닥터 탐정’을 방송한 SBS는 열악한 제작 환경으로 인해 발생한 드라마 ‘빅이슈’의 방송사고를 비롯하여 작년 11월부터 올해 올해 2월까지 방송한 드라마 ‘황후의 품격’의 노동 문제를 지적받는 등 노동 문제를 소재로 삼은 드라마를 제작한 모든 방송국은 결코 노동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방송국 자신들의 노동 환경을 바꾸지 못한 채 ‘노동 환경의 열악함’을 말하는 드라마만 만든다면, 모순은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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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2019-10-26 21:20:09
알아야 바뀐다. 문제라고 지적하기 전까지 문제는 문제가 아니다. 지식의 습득은 보는 것뿐만 아니라, 참여하고 경험하는 것에서 얻어진다. 보고 느끼면서 노동환경과 복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기회가 많이 생기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