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언론사가 대학 문제를 다룬 기고글에 포함된 조국 전 법무부장관 관련 내용을 기고자의 입장과 반하게 수정해 무단으로 게재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한국일보는 인문학협동조합과 협의해 ‘대학 학문공동체의 위기’라는 주제로 기획 연재글을 받기로 했다. 조합에 속한 권창규 교수(포항공대)는 자신의 글을 지난 10월10일 게재키로 하고, 지난 9일 기고문을 한국일보 측에 보냈다. 한국일보는 9일 오후 담당기자를 통해 기고글을 수정한 ‘데스크 편집본’ 원고를 보내왔다.

데스크 편집본은 권 교수가 최초 전달한 기고글과 많이 달랐다. 권 교수는 원본 기고글에서 “여느 때보다 검찰 개혁의 목소리가 높다. 일제강점기 이후 현대사를 거치면서 검찰은 규제받지 않는 권력으로 군림해왔다. 검찰과 언론, 수구 정치 세력의 연합은 이번 기회에 확실히 흔들려야 한다”고 썼다. 하지만 한국일보는 이 대목을 삭제했다.

권 교수는 “‘조국 대전’에 던져진 적폐 척결 과제 중에는 교육 개혁의 과제도 있다. ‘조국의 딸이라서 특혜를 받고 입시 부정을 할 수 있었다’라는 기레기 발 뉴스는 많은 흙수저 청년들의 박탈감과 분노를 자극한 바 있다”고 썼지만, 한국일보는 “이른바 ‘조국 대전’에 던져진 적폐 척결 과제 중에는 교육 개혁의 과제도 있다. 조국 딸이 연관된 입시 비리 의혹은 많은 흙수저 청년들의 박탈감과 분노를 자극한 바 있다”라고 수정했다.

이에 권 교수는 “교육개혁의 과제가 부각된 것은 사실상 조작되다시피 한 뉴스 때문이지만 데스크 편집본은 조국 장관 딸의 의혹 보도에 대한 필자의 부정적 입장을, 정반대인 긍정하는 입장으로 사실상 바꾸었다”고 주장했다.

권 교수는 “원본은 입시 비리 의혹을 사실이라고 판단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의혹 보도에 잘못된 것이 많다는 정반대의 입장에 서 있다”며 “원본의 경우 ‘기레기’라는 용어를 써서 비리 보도 뉴스의 문제점을 공격하고 있으며, 교육 대물림이 조국 대전에서 중요 이슈가 되었다는 점을 언급하는 정도에서 그치므로, 조국 전 장관 딸의 입시 의혹은 글에서 중요한 실마리로 사용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결국 한국일보가 자신의 기고문을 왜곡 수정해 여론의 향배를 가른 결정적 변곡점이 조국 전 장관 딸의 입시 특혜 의혹이었다는 점을 상기시키고자 했고 “검찰 개혁과 언론개혁을 이야기하는 외부 기고문을 데스크의 편집 방향에 맞게 검열하고 조작하다시피 했다”고 권 교수는 비판했다. 권 교수는 나아가 데스크 편집본 글은 조국 전 장관의 윤리적 결함을 공격해 장관 퇴진에 찬성하는 진보적 지식인의 목소리인양 왜곡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 한국일보 10월 10일자 기고글.
▲ 한국일보 10월 10일자 기고글.

권 교수가 더욱 분노한 것은 도입부를 수정한 글을 보냈는데도 한국일보는 데스크 편집본 그대로 신문에 실은 것이다. 권 교수는 담당기자로부터 수정요구를 받고 두 차례 응해 수정글을 보냈다. 하지만 데스크 편집본을 ‘강요’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추가적으로 글을 수정하거나 요청할 시 기고문 자체를 실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그런데 수정된 글도 아닌 데스크 편집본 그대로 신문에 실렸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원본에 있는 표현인 기레기라는 말이 불편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가짜 보도의 홍수라는 표현을 써서 수정본을 보냈는데도, 특정 단어를 빼달라는 요청이 계속 왔고, 데스크 편집본대로 싣겠다는 정황을 확인하고 글 자체를 싣지 않겠다고 했는데 데스크 편집본이 신문에 실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권 교수는 “애초에 조국 장관 딸의 비리 의혹 보도는 딸이 고등학교에 특별 전형으로 들어간 걸로 시작했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 가장 많이 보도됐던 표창장 문제도 여러 반박과 해명이 있었지만 동양대 총장의 인터뷰가 사실인 것처럼 보도의 편향성이 이뤄졌다고 본다”면서 “다만 교육대물림이라는 현상에 국민들이 불쾌하고 분노했다는 것도 사실인데, 조국 딸을 잡는다고, 그리고 학종에 대한 조사를 한다고, 입시 전형을 바꾼다고 해소되고 개혁되는 게 아니라 문제는 대학이라고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 제 뜻”이었다고 설명했다. 입시 제도의 공정성만 고민한다고 해서 학벌사회의 교육대물림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일보는 기고문 왜곡 주장에 대해 사전에 원본글이 수정될 수 있다고 수차례 공지했다고 반박했다. 한국일보 기고 담당자는 “분량이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편집권은 매체에 있고, 수정이 될 수 있다고 수차례 공지했다”면서 “기고글 세번째 주제는 대학구조조정이었는데 원본글이 논점을 흐린다고 데스크에서 판단한 것 같다. 기고자의 주장을 최대한 실어주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대학의 학술진흥 정책에 관한 취재 기사와 함께 현장을 잘 아는 인문학협동조합 측 글을 동시에 실기로 기획했는데 권창규 교수의 글 중 검찰개혁과 조국 법무부 장관과 관련한 내용은 애초 기획에 벗어난 내용이라고 판단해 수정을 요청했다는 설명이다. 한국일보 측은 ‘기레기’라는 표현을 삭제하면서 원본의 글과는 정반대의 뜻이 돼버렸다는 주장에 대해선 “데스크에서 동의를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한국일보 측은 데스크 편집본을 놓고 권 교수와 수정 의견을 주고 받으면서 접점을 찾으려고 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9일 밤 이미 데스크 편집본이 지면 인쇄에 들어간 상태에서 게재를 원하지 않는다는 권 교수의 입장을 들었다고 해명했다.

한국일보의 수정 요청을 받아들여 수정본을 전달했는데도 데스크 편집본이 신문에 실린 것에는 “소통의 문제로 오해 소지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일보는 데스크 편집본이 지면에 실려 인쇄에 들어간 것을 인지해 당시 권 교수에게 양해를 부탁했다면서 “담당 기자가 그쪽 단체를 취재해 열정적으로 기사를 써왔다. 왜곡할 의도가 전혀 없다. 미스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진 것 같다”고 전했다.

[기사 수정 : 10월 25일 11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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