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아스키 국경없는기자회 회장이 한국을 방문해 “‘기레기’ 같은 언론불신은 전 세계적 현상”이라고 말했다. 피에르 아스키 회장은 24일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주최한 KPF저널리즘컨퍼런스 기조 강연에서 “프랑스에도 ‘기레기’와 유사한 ‘똥-미디어’라는 불어 표현이 있다”고 전한 뒤 “어디나 좋은 기자 나쁜 기자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갖고 정직하게 일하는 기자들에게는 ‘기레기’ 같은 단어가 불공정하게 느껴질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오늘날 모든 의견은 양극화되고 있다. 미국도 영국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사회여론을 양극화시킬 때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언론과 언론인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그래야 전문적인 미디어 영역 밖에서 자신들만의 정보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언론 신뢰 하락에는 “혼란을 조장하는 쪽의 책임도 있겠지만 언론의 책임도 있다. 저널리즘이 불평등 피해자들에게 오랫동안 기득권의 일부로 비추어진 것이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피에르 아스키 회장은 언론인들을 향해 “사실이라는 개념을 다시 정립해야 한다. ‘포스트트루스’(탈진실) 시대다. 언론이 조직적으로 사실 기반의 사회를 재정립해야 한다. 소위 ‘대안적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탈진실 시대라는) 현 상황은 정치의 양극화와 관련되었기 때문에 단순히 언론의 영역에서만 이뤄낼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피에르 아스키 국경없는기자회 회장.
▲피에르 아스키 국경없는기자회 회장.

피에르 아스키는 CFJ 파리 기자양성센터를 졸업하고 프랑스 뉴스통신사 AFP 기자를 거쳐 프랑스 유력 일간지 리베라시옹에서 베이징 지국장으로 일했다. 이후 리베라시옹을 떠나 현재 국제 시사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2017년부터 국경없는기자회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베이징 특파원 시절 언론 자유가 없는 나라에서 일하는 게 뭔지 경험했다. 리베라시옹 블로그를 오픈했더니 6개월 뒤 차단됐다. 공산당이 말하는 사실은 있었지만 진실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기자들을 향한 전 세계적인 위협과 함께 저널리즘의 위기를 언급했다. 그는 “르몽드는 은행자본이 인수했고 리베라시옹은 통신사가 인수했다. 기자 수천 명이 정리해고됐다. 독재정권은 공개적으로 기자들을 혐오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디지털플랫폼의 성장으로 기자들은 정보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리베라시옹을 나와 독립언론을 세웠지만 인터넷은 전쟁터가 되었고 우리는 패배했다. 극우파에 패했다. 공격을 받았지만 방어할 줄 몰랐다”고 밝혔다. 

그는 “많은 집단이 여론을 조작하고 이용하는 방법을 잘 알게 됐다. 전통적 미디어의 역할이 약해지면 기자들의 역할도 약해지고 정당성을 잃게 되며 불신받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반응이 느렸다. 브랙시트와 트럼프 당선을 보고 나서야 상황파악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건강한 디지털 플랫폼 구축은 전 세계적으로 완전히 실패했다”며 “점점 전문적 저널리스트가 없는 세상으로 가고 있다. 늦었지만 우리의 근간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경없는 기자회 로고.
▲국경없는 기자회 로고.

그는 허위조작정보에 대응하며 언론의 자유라는 원칙을 수호하기 위해 국경없는기자회가 준비 중인 저널리즘 트러스트 이니셔티브(JTI) 프로젝트를 전 세계적으로 확대 시킬 예정이라고 밝혔다. JTI는 좋은 언론에게 일종의 ‘인증서’를 주고 나쁜 언론의 경우 징벌적 조치까지 고려하는 프로젝트다. 2017년 4월 국경없는기자회·AFP통신·유럽방송연맹·글로벌에디터네트워크 등이 모여 JTI를 출범시켰다. 그는 “JTI 프로젝트는 블랙리스트가 아닌 화이트리스트를 만들어 더 좋은 정보를 검색엔진 앞에 내놓자는 의미”라며 2020년에 구체적 모델을 공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무엇보다 현 국면에서 “언론의 근본을 다시 상기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온라인에서는 가짜뉴스를 내보낼수록 돈을 번다. 디지털혁명 모델의 도전에 맞서 적절한 대응이 부족했다. 정보 흐름구조가 완전히 변화하며 언론의 영역은 극히 일부가 되었다”고 지적한 뒤 언론인들을 향해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선 최선을 다해 우리의 전문성을 세워야 한다. 끝없는 자기반성 속에서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며 뉴스 생산과정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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