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정시 확대’ 방침을 밝히자, ‘학생부 종합전형 공정성 강화’에 중점을 맞췄던 교육부와 엇박자를 보인다는 지적과 더불어 교육계 혼란에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23일 전국단위 주요 종합일간지들은 발언에 대한 분석과 현장 반응을 전했다. 문 대통령 발언 배경에 국민 여론과 청와대·여당 내 일부 기류가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 지배적인 가운데, 보수 성향 일간지들은 원인을 조국 전 법무부장관에게 돌렸다.

문 대통령은 전날 시정연설에서 “국민들께서 가장 가슴 아파하는 것이 교육에서의 불공정이다. 최근 시작한 학생부종합전형 전면 실태조사를 엄정하게 추진하고, 고교서열화 해소를 위한 방안도 강구 할 것”이라고 밝힌 데 이어 “정시비중 상향을 포함한 ‘입시제도 개편안’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특정해서 ‘정시 비중 상향’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일보([3면]‘정시 확대 없다’더니… 입장 뒤집은 교육부)는 “이를 두고 ‘대통령의 작심 발언’이란 분석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대통령의 입시제도 개편 주문이 나올 때마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정시와 수시 비율 조정으로 불평등의 시스템을 바꿀 수 없다”며 ‘정시 확대론’에 선을 그어 왔고, 시정연설 바로 전날(21일) 국회 교육위원회 종합감사에서도 유 장관은 “학종 공정성 제고를 우선하겠다”고 밝혔다.

▲ 10월23일자 한국일보 3면.
▲ 10월23일자 한국일보 3면.

한국일보는 ‘교육부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교육계 인사’ 발언을 빌려 “국민 여론이 정시 확대로 돌아섰다고 판단한 문 대통령이 두 차례나 ‘교육의 공정성’을 언급했는데도 교육부가 계속 ‘정시 확대는 아니다’라고 하니 작심하고 말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대통령이 직접 드라이브를 걸겠다니 교육부도 관련 대책을 세울 수밖에 없지 않겠냐”는 해석을 전했다.

같은 면 하단 기사(“사필귀정” “공교육 훼손” 두 쪽 난 교육계)에선 “진보교육감들도 반대입장에 가세했다”며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이날 서울 동대문구 휘경공고에서 특성화고 현장체험을 마친 뒤 ‘학종 개선은 필요하지만 수능 확대는 반대한다’고 말했다. 앞서 17개 시도교육청 교육감이 소속된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도 지난달 ‘한 줄 세우기 식의 정시는 문제풀이로 교실 수업을 왜곡하는 등 교육 본질에 반한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고 전했다.

서울신문은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대입제도 개편이 힘을 얻으면서 교육이 정치에 종속되는 고질적인 병폐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는 평가도 나온다”고 꼬집었다. “‘정시 30% 룰’ 또 뒤집나… 대통령 말 한마디에 대입 근간 흔들”이란 제목의 5면 기사에서 서울신문은 “대통령이 ‘입시 개편’을 직접 언급하면서 지난해 결정된 ‘정시 30% 이상 확대’를 넘어서는 대입제도 개편 작업이 추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정시 확대’ 언급이 교육게에 미칠 파급력을 전망했다. “고등학교 교육이 소위 ‘스카이’(SKY)라 불리는 최상위 대학 진학에 매진하고 있는 데다, 최상위 대학의 입시 개편은 다른 대학들로 확산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날 코스닥 시장에서 메가스터디의 주가가 장중 한때 16.45%까지 치솟는 등 사교육업계 주가가 일제히 뛰었다는 점도 짚었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서울신문에 “국가교육위원회를 설치해 정권과 정파에 휘둘리지 않고 장기적·안정적인 교육정책을 수립하겠다던 정부가 대통령 말 한마디로 교육 정책을 바꾸겠다는 모순을 보여 줬다”고 비판했다. 정의당 정책위원회는 “대통령의 정시 확대 언급은 교육적인 해법의 모색이 아닌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접근”이라며 “당정청은 밀실에서의 ‘깜깜이 개편’이 아니라 논의 내용을 공개하고 국민 의견수렴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논평했다.

▲ 10월23일자 경향신문 사설.
▲ 10월23일자 경향신문 사설.

경향신문은 문 대통령이 충분한 고민보다 ‘여론’을 의식해 정시 확대를 강조했을 가능성에 주목했다. 4면(교육단체들 “다시 부작용·혼란 부르나”…교육부도 ‘당혹’)에서 “교육계에서는 문 대통령이 여론을 의식해 수능 정시 상향을 들고나온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지난달 5일 리얼미터가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501명 중 63.2%가 ‘수능 정시가 대입제도로 바람직하다’고 응답했다. 지난해 정부가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을 위해 꾸린 국가교육회의 공론화위에서도 수능 정시 비중을 45% 이상으로 확대하는 ‘1안’이 시민참여단의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바 있다”며 “이 때문에 수능 정시 확대를 당론으로 정한 자유한국당은 물론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정시 확대에 대한 요구가 꾸준히 있었다”고 했다. 교육부가 “그간 서울 주요 대학의 수능 정시 비중 상향 등을 논의해왔다”며 “정시 상향을 포함해 11월 중 대입개편안을 발표하겠다”고 밝혔으나, “문 대통령의 발언에 교육부가 억지춘향격으로 해명을 갖다 붙인 것”이라는 교육계 관계자 비판도 전했다.

경향신문은 사설(대통령의 정시 확대 발언, 교육적 숙고 끝에 나온 건가)에서도 “지난달 1일 대통령이 교육개혁을 주문한 이래 우리는 여러 차례 입시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면 안된다는 것과 교육적 효과를 먼저 고려할 것을 당부했다.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여러 면에서 우려스럽다”며 “대통령 시정연설 직후 교육부는 의견수렴을 거쳐 정시 비중 상향을 포함한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을 다음달 중 발표하겠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그때까지 성찰하기 바란다.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정시 확대 방침이 교육적 숙고에서 나온 것인지, 파장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있었는지, 입시를 정국돌파용 제물로 삼아선 안된다”고 당부했다.

한겨레도 문 대통령 발언을 두고 “청와대 내부에 정시 확대를 요구하는 기류가 있고, 일부 의원이 “50% 이상 정시 확대” 제안을 하는 등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정시 확대의 하한선을 높이는 방안을 논의하며 여기에 호응하는 모양새”([3면] 정시-수시 비율 해묵은 논쟁 불붙어 교육계 “정시 확대, 공정성 확보 아냐”)라며 “2025학년도에 일반고까지 전면 확대되는 고교학점제 정책과 발표·토론 위주의 ‘2015 교육과정’과도 정시 확대는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거세다”고 지적했다. “당정이 출범시킨 ‘교육 공정성 강화를 위한 특별위원회’에서도 그동안 ‘정시 확대론’은 주요하게 논의된 바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한겨레는 보도했다.

▲ 10월23일자 조선일보 5면 기사.
▲ 10월23일자 조선일보 5면 기사.

조선·중앙일보 역시 대입정책을 비롯한 교육계에 미칠 혼란을 우려하면서도, 원인을 조국 전 법무부장관에 돌렸다. 조선일보 5면(당정 협의없이 불쑥 지시… ‘1년전 결정한 대입정책’ 뒤흔들다) 기사는 “대입 개편 논의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 입시 비리 의혹이 불거지자 문재인 대통령이 ‘대입 전반에 대해 재검토를 해달라’고 지시하면서 나왔다. 교육부 안팎에서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 입시 비리 의혹의 불똥이 튀면서 엉뚱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며 “조국 전 장관 파문 이후 정시 확대 여론이 커지자 1년 만에 입시를 다시 바꾸려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중앙일보도 5면(“정시 확대” 대통령 한마디에 여당 내 “정시 50%”)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입시 부정 의혹으로 불거진 정시 확대 주장에 대통령이 손을 들어주자 정시·수시 비율을 둘러싼 해묵은 논쟁이 다시 촉발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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