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는 숨 가쁘게 바뀌었다. 더불어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방식도 빠르게 달라졌다. 그러나 이를 기록하는 공간은 찾기 어렵다. 한국의 신문박물관은 과거에 멈춰있고, 방송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은 찾을 수 없다. 군사 독재 시절 보도지침과 언론계 촌지 문화·오보의 역사 등 ‘언론의 그늘’을 기록해놓은 곳도 없다. 스마트폰 등장 이후 디지털 미디어로의 변화가 언론계에 끼친 영향을 타임라인과 함께 맥락적으로 설명해주는 공간도 없다. 초 단위의 미디어 소비 속에, 정작 미디어가 궁금한 시민은 갈 곳이 없다. 

해외에는 다양한 형태의 미디어박물관이 존재한다. 이들 박물관의 공통점은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와의 대화를 통해 미래를 전망케 한다는 것이다. 미디어박물관이 있는 국가들은 언론 신뢰도 및 언론 자유도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 사회도 시민과 소통하는 미디어박물관 건립에 대해 논의해야 하는 시점이다. 미디어오늘은 미디어박물관의 공공성·효용성, 그리고 박물관이 등장할 경우 기대되는 사회문화적 가치를 취재하고자 해외에 있는 다양한 미디어박물관을 찾아 나섰다. 이번 기획기사는 지면에 10회 연재될 계획이다. (편집자 주)

▲‘더치 디지털 아트 박물관(Dutch Digital Arts Museum Almere·DDAMA)’에서 총감독이자 큐레이터 크리스틴 반 스트랄렌(맨 왼쪽)과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 DDAMA 이사회 이사, 자원봉사자 등을 지난달 16일 만났다. 사진=김예리 기자
▲‘더치 디지털 아트 박물관(Dutch Digital Art Museum Almere·DDAMA)’에서 총감독이자 큐레이터 크리스틴 반 스트랄렌(맨 왼쪽)과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 DDAMA 이사회 이사, 자원봉사자 등을 지난달 16일 만났다. 사진=김예리 기자

알미레는 네덜란드에서 가장 젊은 도시다. 도시 자체가 들어선 지 50여년이다. 정부가 1967년 암스테르담 동쪽 앞바다를 메우며 계획도시를 세웠다. 1980년 중반 도시로 승격되자 젊은 세대가 대거 이주해왔다. 알미레는 현재 인구 27만명이 산다. 네덜란드에서 8번째로 크다. 첫 세대가 낳은 자녀는 지금 20대 초중반이 됐다. 그만큼 알미레 인구 상당수가 모바일과 디지털문화에 익숙하다.

네덜란드 유일 디지털아트 박물관이 알미레에 자리한 배경도 여기 있다. ‘더치 디지털 아트 박물관(Dutch Digital Art Museum Almere·DDAMA)’의 총감독이자 큐레이터 크리스틴 반 스트랄렌은 “본-디지털(born-digitals,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문화를 경험하고 자라난 세대)이 주로 사는 이 도시에 디지털아트 박물관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컴퓨터가 존재하기 이전 시절을 모른다. 어쩌면 컴퓨터 개념도 생소하다”고 했다.

풍자에서 사이버불링 시각화까지

왜 미디어아트가 아닌 디지털아트일까? 이날 인터뷰에 응한 작가들에 따르면 DDAMA에 전시된 작품은 ‘디지털아트’라고 규정해야 정확하다. 미디어, 즉 매체를 거치지 않는 예술은 없다. 흔히 미디어아트라 불리는 예술은 따지고 보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아트’라는 거다.

DDAMA는 스위스에 이어 유럽에 세워진 두 번째 디지털아트 박물관이다. 반 스트랄렌 감독은 작가가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하려는 ‘말’에 집중하는데 DDAMA의 차별성이 있다고 했다. “작가는 디지털 아트를 통해 환경, 젠더, 자본, 기술 등 세계가 겪고 있는 문제에 생각을 표현한다. 우리가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무엇을 하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전시 공간은 크지 않다. 1층 건물 문을 열고 들어서면 전시 공간이 한쪽 반을 차지하고 있다. 여러 칸막이로 각각의 좁다란 전시 공간을 분리해 놨다.

벨벳 식탁보가 깔린 테이블이 눈에 띈다. ‘후원회’다. 테이블 자리마다 접시가 놓여 있고, 가상의 스테이크가 빔 프로젝터로 접시 위에 깔린다. 초대 받은 유지들은 이곳에서 가상의 스테이크를 썬다. 이곳 박물관에서 그 주인공은 이용객이다. 반 스트랄렌 감독은 “직접 만나 음식을 먹는 행위가 얼마나 임의적인지 풍자한 작품”이라며 “이 작품이 후원회 주최 기업의 의뢰로 만들어졌고, 해당 기업은 매우 만족했다는 점이 아이러니”라고 말했다.

▲‘더치 디지털 아트 박물관(Dutch Digital Art Museum Almere·DDAMA)’의 크리스틴 반 스트랄렌 총감독 겸 큐레이터. 사진=김예리 기자
▲‘더치 디지털 아트 박물관(Dutch Digital Art Museum Almere·DDAMA)’의 크리스틴 반 스트랄렌 총감독 겸 큐레이터. 사진=김예리 기자
▲DDAMA에서 전시 중인 ‘참푸 멧 다리오 바르딕(Champoo met Dario Bardic)’의 비디오작품 ‘러브 송(Love Song)’. 사진=김예리 기자
▲DDAMA에서 전시 중인 ‘참푸 멧 다리오 바르딕(Champoo met Dario Bardic)’의 비디오작품 ‘러브 송(Love Song)’. 사진=김예리 기자

옆 칸막이엔 ‘참푸 멧 다리오 바르딕(Champoo met Dario Bardic)’의 비디오작품 ‘러브 송(Love Song)’이 전시 중이다. 영상은 남성과 여성 지정성별로 보이는 두 사람을 비춘다. 머리가 짧거나 삭발을 했다. 이들은 가성으로 외마디 비명을 반복한다. 입을 다물고 열 때 예상치 못한 순간 휙휙, ‘여성’으로 보이는 얼굴과 ‘남성’으로 보이는 얼굴이 서로 맞바뀐다. 바라볼수록 두 얼굴은 닮아간다.

설치미술작품 ‘킬 유어 달링(Kill Your Darling)’은 한 달 전 화제를 모았다. 손바닥 만한 빨간 하트들이 크게 하트를 이루도록 배치돼 있고, 그 사이를 얽힌 전선이 오간다. 실제로 인터넷에서 추출된 사이버불링 문구들이 작은 하트 안 모니터에 흐른다. 박물관 전시에 참여한 작가 피터 랑겔라는 “실제로 청소년들이 겪는 사이버불링의 가해자가 대부분 주변인이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 기술 자체를 기리는 전시물도 있다. 컴퓨터 기술로 그린 그림 위에 손으로 덧대 그린 회화 작품이다. 사람이 만든 바이올린의 입체 정보를 기계에 입력해, 이를 복제한 바이올린도 전시 중이다. 

▲설치미술작품 ‘킬 유어 달링(Kill Your Darling)’은 한 달 전 DDAMA에 전시돼 화제를 모았다. 손바닥 만한 빨간 하트들이 크게 하트를 이루도록 배치돼 있고, 그 사이를 얽힌 전선이 오간다. 실제로 인터넷에서 추출된 사이버불링 문구들이 작은 하트 안 모니터에 흐른다. 사진=DDAMA 제공
▲설치미술작품 ‘킬 유어 달링(Kill Your Darling)’은 한 달 전 DDAMA에 전시돼 화제를 모았다. 손바닥 만한 빨간 하트들이 크게 하트를 이루도록 배치돼 있고, 그 사이를 얽힌 전선이 오간다. 실제로 인터넷에서 추출된 사이버불링 문구들이 작은 하트 안 모니터에 흐른다. 사진=DDAMA 제공
▲DDAMA에 전시 중인 작품 가운데 하나인 바이올린은 사람 손으로 만든 바이올린의 외형을 본따 디지털 기술로 만들어졌다. 사진=김예리 기자
▲DDAMA에 전시 중인 작품 가운데 하나인 바이올린은 사람 손으로 만든 바이올린의 외형을 본따 디지털 기술로 만들어졌다. 사진=김예리 기자

알미레 지방정부 지원으로 대표성 꾀해

모든 것이 디지털인 세상이다. 왜 예술 측면에서 디지털 기술을 바라봐야 할까? 이날 인터뷰에 임한 작가들은 “첫째로, 새로운 기술이 생기면 사용해 보고 싶어하는 게 예술가의 자연스러운 욕구다. 더 중요하게는 디지털 기술이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고민하는 이들이 디지털 아트를 택한다”고 입을 모았다.

DDAMA는 최근 알미레 지방정부의 지원을 받았다. 애초 박물관은 알미레 세계무역센터 건물 한 층에 있었다. 아직 세 들지 않은 곳에 주인의 양해를 구해서. 3년 전 전시 공간이 팔리며 나와야 했지만, 이 시점부터 정부 지원을 받았다. 반 스트랄렌 감독은 “사기업 후원도 중요하지만, 지역사회의 인정을 받았다는 점에서 지방정부의 후원이 중요하다. DDAMA가 알미레에 생긴 첫 박물관이자 미술관일 뿐 아니라, 박물관이 알미레의 상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 스트랄렌 감독은 DDAMA가 예술인 사회에 가지는 의미도 강조했다. 기존 예술은 소수 정예 아티스트의 전유물이었다. 작은 써클 안에서 작가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작품이 오가고, 신생 아티스트는 좀처럼 끼기 어려웠다. 그는 디지털아트 박물관이 새 작가들이 작품을 선보이고 성장할 통로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알미레 대표 박물관을 넘어, 네덜란드 국경을 넘나드는 전시를 하는 것이 목표다. 사람들이 디지털 아트에 흥분하는 것도 그 지점”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언론진흥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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