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도 못하는데 직장내괴롭힘 방지법이 ‘갈라파고스 규제’?
처벌도 못하는데 직장내괴롭힘 방지법이 ‘갈라파고스 규제’?
시행 100일 맞아 경제지 일제히 비판 보도 ‘가해자 처벌 국가 많은데, 한국은 처벌 못해 한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서울경제, 한국경제 등 경제지들이 22일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을 도마 위에 올렸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 주최 특별좌담회에서 제임스 김 주한미국상공회의소 의장의 관련 발언을 받아썼다.

신문들에 따르면 김 의장은 21일 이 자리에서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찬성이다. 그런데 한국만의 독특한 점은 대표이사(CEO)까지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는 거다. 모든 리스크를 CEO가 짊어지게 하는 법안에 대해 외국인 투자 기업들이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문들은 해당 발언을 들어 한국이 기업 운영을 어렵게 하는 갈라파고스 규제를 유지한다고 비판했다.

갈라파고스 규제는 대륙과 단절돼 독특한 생태계를 이룬 갈라파고스 섬에 빗댄 표현으로, 국제흐름과 동떨어진 규제책을 말한다. 동아일보는 이날 관련 사설도 냈다.

▲22일 동아일보 1면(왼쪽) 및 사설 갈무리
▲22일 동아일보 1면(왼쪽) 및 사설 갈무리

실제로 한국의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갈라파고스 규제이자 과도한 조치일까? 실상은 국제 흐름에 겨우 올라탄 격이다. 해외 법제는 사업주에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책임을 더 강하게 묻는다.

프랑스는 직장 내 괴롭힘을 놓고 경영진에 책임을 지운다. 노동법전에 금지 규정뿐 아니라 사용자의 예방 및 가해노동자 징계 의무, 형사처벌도 명시했다. 정신적 괴롭힘에는 금고와 벌금 규정도 뒀다. 노르웨이는 개인 간 괴롭힘뿐 아니라 노동자가 업무상 괴로움을 겪는 상황을 방치하는 것을 사용자의 위법행위로 본다. 괴롭힘 사실이 인정되면 사용자도 최대 2년 징역 또는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호주는 직장 내 괴롭힘을 형법상 범죄로 분류했다. 불쾌한 언행, 자해 등 신체 피해, 자살 충동 등을 야기한 가해자에게 최대 징역 10년형까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이 법은 사업주가 직접고용한 노동자뿐 아니라 외부 하청업체와 계약직, 자원봉사자 등에도 적용된다. 스웨덴은 1990년대 초 세계 최초로 직장 내 괴롭힘 방지 조례를 제정하고 형법으로 금지했다.

▲22일 조선일보 6면, 서울경제 5면 갈무리
▲22일 조선일보 6면, 서울경제 5면 갈무리

그밖에 폴란드, 노르웨이, 벨기에, 캐나다 등이 직장 내 괴롭힘을 방지 법령을 마련했다. 미국의 경우 캘리포니아 둥 3개 주에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법에 명시했다.
 
지난 7월 한국에서 시행에 들어간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근로기준법 76조 2·3항)은 어떨까. 법 취지가 사내 자율 개선을 목표 한 탓에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직접 제재를 명시하지 않았다. 회사 대표가 가해자일 경우에도 구제 방법이 없다.

해당 법은 사업자가 직장 내 괴롭힘을 인지하면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징계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할 의무를 규정했다. 10인 이상 사업장은 취업규칙에 직장 내 괴롭힘 예방과 징계 등의 내용을 포함하도록 변경해야 한다. 다만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 피해자에게 불이익을 준 사업주는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했다.

노동법 전문가들은 오히려 사업주의 책임을 명확히 하는 방향으로 사회 인식과 법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최혜인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한국의 경우 직장 내 괴롭힘 관련 규율로는 이번이 처음이다. 가해자 처벌 규정도 없고, 피해자를 불리하게 처우할 때에만 제한적으로 사용자를 처벌하도록 했다”며 “사용자와 가해자에 대한 책임을 명확하게 묻는 방향으로 사회 인식을 바꾸고 법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현행 노동관계법이 노동자 권리를 배제해 세계 흐름과 어긋난다는 지적이 제기된 지도 오래다. 근로기준법의 경우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 제외하는데, 사업장 규모를 기준으로 법 적용을 일괄 배제하는 나라는 찾기 힘들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과 형법도 노동자의 책임을 과도하게 물는 법조항이 국제 기준에 어긋난다. 탁선호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파업 자체에 형법상 업무방해죄를 적용하고 손해배상 가압류를 인정하는 법제도를 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소수노조에 교섭권을 인정하지 않는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등도 마찬가지”라며 “여타 선진국에 비춰 기준에 어긋나 ILO(국제노동기구) 등이 개선을 권고해왔다”고 말했다.

지난 7월16일 시행에 들어간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은 오는 23일 100일째를 맞는다.

이 기사를 후원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