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 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와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언론매체의 성향과 보도 동향을 분석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방통위는 보수언론을 대상으로 정부입장을 홍보하고 시위대의 폭력성을 부각하는 보도를 요청한다.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합참)는 언론매체·인터넷 통제방안을 수립하고 보도검열 지침을 만들어 하달을 준비한다. 합참·문체부·방통위는 계엄사 보도검열단을 편성하고 계엄선포시 소집 교육을 준비한다.”

시민단체 ‘군 인권센터(소장 임태훈)’가 공익제보로 입수했다며 21일 공개한 기무사 계엄령 문건에 나오는 ‘언론매체 및 인터넷 통제방안’이다. 해당 문건에 따르면 이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탄핵이 되고 계엄을 준비하는 시기까지 통제방안이다. 

▲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21일 국회 정론관에서 옛 국군기무사령부의 촛불집회 계엄령 문건과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21일 국회 정론관에서 옛 국군기무사령부의 촛불집회 계엄령 문건과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이 단체에 따르면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 국면인 2017년 2월 기무사가 작성한 이 문건은 지난해 7월 공개한 ‘전시 계엄 및 합수 업무 수행 방안’의 원본인 ‘현 시국 관련 대비 계획’이다. 

이 문건에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중심으로 정부부처에서 군 개입 필요성에 공감대를 만들고 국무총리실과 NSC가 계엄령을 사전에 협의한다고 나온다. 군 인권센터는 당시 NSC 의장이 대통령 권한대행이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였다며 황 대표 등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황 대표는 해당 내용을 보고받은 적 없다며 고소하겠다는 입장이다. 

해당 문건에는 계엄 계획이 상세하게 나온다. 국회의 계엄령 해제 시도를 막기 위해 반정부 활동을 금지하는 포고령을 내려 정치활동을 통제하고, 고정간첩 등 반국가 행위자 색출을 지시하는 등의 방식으로 야당 의원들을 사법조치 하겠다는 내용이 있다. 청와대, 국방부, 법원, 검찰 등 계엄군 배치 장소와 이동경로까지 계획했다. 독재정권 중에서도 엄혹하던 시절을 연상케 하는 내용 중엔 언론통제 계획도 있다. 

문건을 보면 기무사는 탄핵 전 촛불집회 국면을 ‘사회질서 혼란’ 등으로 규정하고 보수언론을 이용해 계엄 여론을 조성하려 했다. 기무사는 ‘계엄 선포 필요성 평가’에서 “공권력 붕괴로 인한 사회질서 혼란으로 국민 불안감이 고조됐다”며 “보수언론에서 계엄선포 필요성 제언, 보수층 및 경제단체에서 동조”라고 작성했다. 

당시 매체의 성향을 분석했는데 YTN·KBS·SBS·조선·중앙·동아·뉴데일리·독립신문 등을 보수, MBC·연합뉴스·서울신문·한국일보·경제투데이 등을 중도, JTBC·한겨레·경향·프레시안·오마이뉴스 등을 진보 성향으로 구분했다. 

▲ 군인권센터가 공개한 '현 시국 관련 대비 계획-참고자료' 중 일부.
▲ 군인권센터가 공개한 '현 시국 관련 대비 계획-참고자료' 중 일부.

계엄선포 단계에선 국방부 출입기자를 대상으로 계엄시행 방침을 설명하고 국민불안 해소에 주력한다는 계획을 검토했다. 

계엄을 선포한 이후 계엄사·합수본부·문체위·방통위가 보도통제를 위한 조직을 만들고 보도 금지사항(계엄에 유해, 공공질서 위협, 군 사기 저하, 군사 기밀 저촉 내용 등)과 확대 보도사항(정부 군 발표, 반정부 의식 불식, 시위대 사기 저하 내용 등)을 정하도록 했다. 또 정부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보도창구를 단일화해 기자단을 운용하도록 했다. 

기무사는 “시위대 습격 등을 대비”하려고 방통위가 “KBS→MBC→SBS→CBS 순으로 방송기능 유지”해야 한다고 계획했다. 계엄군 입장을 전달할 방송사를 정하고 만약 시민들이 해당 방송사를 습격할 경우 그 다음 계엄군 입장을 전달할 방송사를 대비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 방통위에게 “인터넷 주요 포털사이트 및 SNS 차단, 유언비어 유포 통제”를 지시하며 “2016년 7월 터키 군부 쿠데타 당시 계엄군이 트위터 등 SNS 접속 차단”을 사례로 덧붙였다. 지난해 공개한 계엄령 문건에도 “방통위 ‘유언비어 대응반’이 시위선동 등 포고령 위반자 SNS 계정을 폐쇄하는 등 사이버 유언비어 차단”이란 내용이 있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업무를 잘못 파악한 것이면서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억압하는 조치다. 

▲ 군 인권센터가 공개한 '현 시국 관련 대비 계획' 문건 중 일부
▲ 군 인권센터가 공개한 '현 시국 관련 대비 계획' 문건 중 일부

언론통제를 상징하는 보도지침도 등장했다. 기무사는 보도검열단, 인터넷 등 모든 언론매체를 대상으로 보도지침을 하달하며 검열을 계획했다. 또 계엄사가 방송특별심의회를 운영해 보도창구를 단일화하고 계엄의 당위성을 홍보한다는 방침도 마련했다. 

해외 여론을 신경 쓴 모습도 보였다. 계엄을 시행한 이후에 “주한 외신 언론기자 대상으로 정부 입장의 보도자료 배포”와 “주한 외교관 대상 언론 왜곡 보도 방지 및 계엄 시행의 당위성 등 정부 입장을 홍보” 등 방안을 검토했다. 

군 인권센터는 “‘계엄령 문건 사건’은 국민을 군대로 짓밟으려 했던 중대한 사건”이라며 “한 점의 의혹도 남기지 말고 밝혀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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