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해서 어떡해…” 목놓아 울었다는 증언이 잇달았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변사 사건이지만, 가려진 이면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타인의 죽음을 함부로 단정 짓지 않겠다는 마음을 무게추 삼아, 현장을 직접 찾아갔다. 그렇게 화곡동 재건축 현장을 갔다.

매매가 10억. 그나마 있는 매물도 없음. 부감을 찍기 위해 촬영 기자와 올라간 재건축 단지 5m 옆 이른바 ‘메이커’ 아파트 단지 부동산 현황이었다. 손에 잡히지 않는 금액을 머릿속으로 되뇌며, 사건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버린 이삿짐이 즐비한 골목에는 재건축 단지 지역임을 알리며, 세입자에게 이사를 촉구하는 플래카드가 곳곳에 나부꼈다.

허리를 숙여야 간신히 보이는 오래된 철제문은 잠금장치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이 문은 50대 세입자가 숨진 채 발견되기까지 일주일간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고 했다. 휑한 골목에 ENG 카메라가 들어서자, 같은 건물 주민 한 분이 한 손 가득 서류 뭉치를 들고 내려왔다. “이게 다 조합 측에서 보낸 명도소송장예요. 결국 이 분도, 독촉을 못 이긴 거지 뭐.” 3층에 살고 있다는 주민은 자신이 이 골목에 몇 명 남지 않은 세입자라고 소개했다.

▲ 지난 10월12일 YTN ‘또 극단적 선택… 벼랑 끝에서도 내몰린 철거민 기사’ 갈무리
▲ 지난 10월12일 YTN ‘또 극단적 선택… 벼랑 끝에서도 내몰린 철거민 기사’ 갈무리

 

눈가에 연신 손을 올리며, 재건축 단지에 올 수밖에 없는 사연을 덤덤하게 풀어 놓았다. 극단적인 선택을한 지하 1층 남성은 자신보다 생활고가 더 심하다고 털어놨다. 1만원 남짓한 수도비도 밀려 몇 번 찾아갔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이들이 현실성 없는 서울 집 값에 떠밀려 찾게 된 곳은 재건축을 앞둔 허름한 동네였다. 살을 깎아내는 현실적 고통에 찾은 전·월세지만, 경제 논리로 무장된 재건축은 개인의 사연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재건축 단지에 살고 있는 세입자는 조합 측의 나가라는 통지에 무기력했고, 피고가 된 소장 앞에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3일간 추운 겨울을 길에서 보냈고, 내일이 오는 게 두렵습니다.” 지난해 겨울, 아현동 재건축 세입자 청년이 한강에 뛰어들기 전 남긴 유서였다. 아무런 대책 없이 벼랑 끝으로 몰리는 철거민의 처절한 절규가 문장 곳곳에 배어 있었다. 그해 겨울 시민단체가 연일 집회를 이어갔고, 4개월 뒤 서울시는 대책을 마련했다. 대대적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재건축 세입자에게도 지원을 마련해주겠다고 했다. 재건축 단지 세입자도 재개발 세입자와 마찬가지로 거주비 지원과 임대주택 입주 기회 등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겠다는 게 대책의 골자였다.

▲ 김우준 YTN 기자
▲ 김우준 YTN 기자

문제는 관련 법이었다. 관계 법령 없이 세워진 서울시의 대책은 재건축 사업자가 안 지키면 그만인 ‘빛 좋은 개살구’와 다름없었다. 실제로 이번 사건이 발생한 화곡동 재건축 사업장도 서울시 대책을 따르지 않았고, 세입자들을 위한 지원은 단 한 푼도 없었다. 정작 화곡동을 지역구로 둔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은 올해 초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재건축 사업에도 세입자 손실보상을 대책을 마련하라는 개정안이다. 하지만, 여·야 대립 속에 6개월 넘게 잠자고 있다. 

재건축과 재개발은 부정할 수 없는 거시적 흐름이다. 다만, 거대한 경제 논리 속에는 개개인의 삶이 다닥다닥 붙어있음을 잊지 않고 싶다. 또다시 추운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서울 전역 철거를 앞둔 재건축 지역 세입자는 약 4천여 가구라고 한다. 벼랑 끝에 몰린 이들 등 뒤에서는 다시 한번 서늘한 칼바람이 불어올 예정이다.

[ 관련 기사 : YTN) 또 극단적 선택… 벼랑 끝에서도 내몰린 철거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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