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문재인 대통령의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시작으로 국회가 ‘예산 심사 정국’에 돌입했다. 여당은 문 대통령이 밝힌 확대재정정책과 사법개혁 필요성을 주창하며 야당 협력을 촉구했으나 야당은 현실에 대한 대통령과 국민 인식에 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시정연설 내내 야유를 보내는 등 반발했던 자유한국당은 혹평을 쏟아냈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문재인 대통령은 대외충격의 큰 파고가 밀려오는 상황에서 2020년도 예산은 민생경제에 대한 ‘방파제’ 예산이자, 경제 활력을 살리는 마중물 역할을 하는 재정임을 거듭 강조했다”며 “혁신적이고, 공정하고, 평화적인 경제로 ‘함께 잘 사는 나라’는 지금 우리가 만들어가고 있다. 남은 2년 반을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달려있기도 하다. 그야말로 국회의 시간이다. 당리당략과 정쟁으로 대한민국 국민을 배신하는 국회가 되려는가. 우리 경제의 새로운 성장과 국민경제의 안정을 위해 야당의 초당적 협력을 엄중히 촉구하는 바”라는 주장이다.

이재정 대변인은 “일각에서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를 하고 있지만, 이미 우리경제는 재정확대를 감당할 충분한 체력을 비축해왔다. 세계경제포럼(WEF) 국가경쟁력 평가, 국제신용평가기관의 평가 등 객관적 지표로 우리경제의 재정건전성은 검증된 바 있다”며 “촘촘해진 사회안전망은 국민들의 삶에 직접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안보능력을 키우고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이끌어 평화의 한반도, 평화경제가 또 한 번 대한민국의 재도약을 실현시켜줄 것”이라 강조했다.

대부분 야당은 확대재정정책 기조에 공감을 표하면서도 저마다 아쉬움을 전했다. 여영국 정의당 원내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노동시간 단축 정책과 관련한 탄력근로제 보완 입법을 주문한 것에 대해 “기업들이 장시간 노동을 통한 경쟁력 확보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로 노동존중 정책을 후퇴시킨다면 과거 정권과 무엇이 다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들의 갑질근절, 단가후려치기 등을 막아 중소기업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게 해주는 것”이라 지적했다. 

▲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회의장에서 2020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회의장에서 2020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의당은 또 “자유한국당이 결사반대하고 있지만 공수처 설치를 중심으로 하는 사법개혁은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대통령이 사법개혁과 더불어 개혁의 양대 산맥인 정치개혁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정의당은 올 연말 사법개혁과 정치개혁이 함께 실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주현 민주평화당 수석대변인은 “불평등과 격차의 심화, 서민들의 고통, 사회적 분열이 극심한 상황에서 성찰과 다짐보다 자화자찬과 희망에 강조점을 둔 시정 연설에 많이 아쉽다”고 평가했다. “개혁정부의 예산이라면 ‘양극화해소’를 위한 구체적인 정량목표를 제시했어야 마땅하다”며 “지역격차 해소 의지를 찾아볼 수 없는 것도 유감”이라 지적했다. △확대재정정책 △기초적 복지급여확대, 고교무상교육 실시 △소상공인 관련 법 제정과 금융지원 확대 등 방향은 적절하다고 봤다.

장정숙 대안신당(가칭) 수석대변인은 “국민은 대통령의 연설을 들으며 체감하기 어려운 거시적 변화를 과시하는 듯한 거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장정숙 수석대변인은 “대규모 거리집회에 대한 평면적 인식이 그랬듯 이미 우리 사회의 뿌리를 이루고 있는 구조적 불공정성에 대한 문제의식은 보이지 않는다. 반복되는 국론 분열은 국가 리더십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했다. 남북관계, 국제관계와 관련해선 “냉엄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라며 “주변 강대국과 관계에서 국가의 자존 원칙을 분명히 하기 위한 발상의 전환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문 대통령 시정연설 도중 양 팔로 ‘엑스(X) 자’를 만들어보이고, 연설을 마친 문 대통령이 악수하러 오기 전 퇴장했던 자유한국당은 “한마디로 현실부정이고, 경제의 기초마저도 무시한 국정 진단과 처방이며, 왜곡된 통계를 이용한 낯부끄러운 국정홍보였다”고 혹평했다. 전희경 한국당 대변인은 “일자리 못구한 청년, 잘려나간 가장, 손님이 오지 않는 가게, 문닫는 상점, 여기저기 나붙은 구직전단과 임대 전단, 치솟는 물가, 오르는 세금. 국민들 눈에만 보이고 대통령 눈에는 안보이나. 조국일가 비리에 터져나온 국민의 분노, 이 정권에서 무너지는 나라를 보며 눈물흘리는 국민의 함성. 우리는 다 느끼고 들리는데 진짜로 대통령에게만 안들리나”라며 “혁신·포용·공정·평화를 말하는 대통령은 이미 그 단어를 입에 올릴 자격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전 대변인은 “조국을 통해 개혁이란 말의 의미마저 오염시킨 대통령은 시정연설이라는 엄중한 순간에도 '합법적 불공정'이라는 괴상한 조어로 조국을 비호했다. 연설에서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공수처를 또다시 밀어붙였다. 과연 조국의 대통령, 내 편만의 대통령답다”고 평했다. 이어 “사법장악, 좌파독재를 꿈꾸는 저들의 공수처법, 선거법을 막아낼 것”이라며 “실패한 국가운영을 인정하고 국정대전환에 나서라. 그것만이 상처받고 힘든 삶을 버텨내는 국민에게 사죄하고 용서받는 길”이라 밝혔다.

바른미래당 최도자 수석대변인은 “그동안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불통과 아집으로 국정을 얽히게 한 반성과 사과는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선거제 개혁을 먼저 처리하고 공수처 도입을 나중에 처리하자는 여야의 약속은 또다시 무시되었다. 공수처 도입 필요성만 언급하며, 정치개혁은 또 다시 뒷전으로 밀어놨다”며 “시정연설이 협치의 새출발이 아닌 정쟁의 불씨가 되지 않을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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