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부터 경기도 시흥시에서 동아일보 신문지국을 운영하던 최아무개씨(65)가 2018년 11월 신문 배달 도중 과로로 쓰러지며 골절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했다. 그리고 이듬해 7월3일 사망했다. 그는 동아일보 1040부를 담당했다. 최씨의 배우자 강아무개씨는 장례식장에서 처음 동아일보 판매국 담당자를 만났다. 병원에 있는 사이 남편은 5개월간 신문지국 운영을 못 했다. 그리고 남편이 떠나고 나서야 ‘미수금’의 존재를 알게 됐다고 했다. 2818만4913원이었다. 

최씨가 병원에 입원하면서 매달 177만7000원의 미수금이 쌓였다. 최씨는 이듬해 3월 말에서야 지국계약해지가 가능했는데, 그때까지 쌓인 미수금이 2818만4913원이었다. 사고 당시 이미 2000만 원가량의 미수금이 쌓여있었다. 동료들 증언에 따르면 그만두고 싶었지만 쉽게 지국을 내놓을 수도 없었다. 신문사와 맺은 연대보증인계약이 걸렸다. 최씨의 동료였던 신문지국장 한상진씨는 “연대보증인들이 일종의 인질로 잡혀있어서 쉽게 지국을 그만둘 수 없다”고 말했다. 최씨의 연대보증인은 최씨 딸의 시어머니였다. 지국을 그만두면 당장 시어머니가 미수금을 물어내야 했다. 

올해 3월 동아일보 마케팅본부장 명의의 신문대금청구서를 보면 밀린 지대는 2290만7223원이었다. 상조회비 114만원, 재해기금 78만3990원도 내야 했다. 한상진씨는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본사 요구대로 어쩔 수 없이 상조회비를 내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이 당시 동아일보 유료부수는 319부였다. 1040부 중 700부 이상이 파지였다. 우여곡절 끝에 후임자가 정해졌고 3월을 끝으로 지국을 넘겼다. 강씨는 보증금과 권리금을 빼서 미수금을 냈지만 그래도 ‘빚’이 남았다. 

최씨는 사망하기 34일 전 동아일보에 ‘미수금 확인 및 입금 약속서’를 제출했다. 당시 미수금은 1517만3413원이었다. 그는 자필로 해당 각서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약속 미이행 시 법적 조치를 감수하겠습니다.” 그는 끝내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강씨는 지난 15일 김재호 동아일보 대표이사에게 편지를 보내 “치료에 전념했어야 할 중환자가 6월11일 1차 상환일이라는 문자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육체적 고통보다 더한 고통에 시달리다 ‘채무에 의한 타살’로 생명줄을 스스로 내려놓은 것 같다”며 “하루하루 피 말리는 절망적 삶을 살고 있다”고 토로했다. 

▲어느 남성이 폭설 속에 신문배달에 나선 모습. 사진속 인물과 기사내용은 관계가 없습니다. ⓒ연합뉴스
▲어느 남성이 폭설 속에 신문배달에 나선 모습. 사진속 인물과 기사내용은 관계가 없습니다. ⓒ연합뉴스

강씨는 이어 “가족들까지 무너지는 연대보증인의 사회 병폐를 언론사가 스스로 자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신문지국장들은 오늘날 신문산업 붕괴에 따라 지국을 운영할수록 미수금이 쌓일 수밖에 없지만 지국을 그만두면 연대보증인에게 미수금을 독촉하는 구조여서 그만두고 싶을 때 그만둘 수 없는 상황이라며 입을 모으고 있다. 김동조 신문판매연대위원장은 “신문지국장들이 보증보험에 가입할 수만 있다면 지국을 그만둔 이후 문제는 보험으로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신문사들이 연대보증인 제도로 가족까지 볼모로 잡으며 갑질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동조 위원장은 “최씨 사고 당시 동아일보가 바로 지국을 사서 직영관리해야 했지만 5개월간 지국을 방치해 놓고 지대를 청구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최씨 측은 최소한 최씨가 병원에 있었던 5개월만이라도 지대를 감액해달라는 입장이다. 강씨는 지난 7월24일 동아일보 담당자를 만난 이후 이 같은 입장을 전달했으나 현재까지 아무런 답변도 받지 못했다. 이와 관련 동아일보 담당자는 21일 통화에서 “어떤 식으로든 도와드리려고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김남주 변호사(법무법인 도담)는 “사업에 관여하지도 않은 가족을 연대보증인으로 세우는 것은 사회적으로 부당할 뿐만 아니라 전근대적”이라고 우려하며 “현재는 점점 연대보증책임을 줄여가는 추세”라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이어 연대보증인제도를 가리켜 “하도급법에 따를 경우 부당특약에 해당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신문판매연대는 “보증보험으로 대체해 가족들의 2차 피해를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부친 보증 섰다가 집 날리고 가족 생이별…15년째 피눈물’. 2013년 4월25일자 동아일보 ‘연대보증 덫에 걸린 사람들’ 기획기사 제목이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연대보증제도는 문제가 많아 거의 사라지는 추세다. 사회적 모범을 보여야 할 신문사에 연대보증제도가 남아있는 건 놀라운 일이다. 이런 게 전형적 갑질”이라고 비판한 뒤 “신문사는 신문지국과 상생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보증보험으로의 대체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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