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권도, 안내지도도 없는 박물관 보셨나요
입장권도, 안내지도도 없는 박물관 보셨나요
[이제, 미디어박물관이다⑥] 네덜란드 ‘사운드 앤 비전’ 박물관
이용객 체험이 더 중요… ‘SNS 시대에 미디어박물관’ 고민

네덜란드 방송스태프 종사자들은 노르트홀란드주 힐베르숨을 ‘힐리우드’라고 부른다. ‘힐베르숨 미디어파크(Hilversum Media Park)’는 네덜란드 내 공영과 민영 방송사 스튜디오가 모여 있는 곳이다. 암스테르담에서 차로 30분 거리다. 네덜란드 정부의 문화유산 담당 기관이 세운 사운드 앤 비전(Sound and Vision) 박물관도 이곳에 자리 잡았다.

지난달 16일 찾은 사운드 앤 비전 박물관은 멀리서부터 눈에 띄었다. 건물 표면이 원색으로 알록달록해, 텔레비전 화면을 보는 듯했다. 유로2000 이탈리아와 경기, 미국 록가수 이기팝의 TV쇼 출연 등 창문마다 네덜란드 미디어 역사에서 중요한 장면들을 입체로 새겼다.

이 박물관의 열쇳말은 ‘체험’이다. 17유로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서면 입장권 대신 반지를 준다. 박물관을 이용하는 내내 사용할 물건이다. 입구에서 이 반지를 기기에 대고 성별, 나이 등 정보를 입력한 뒤 관람 내내 반지를 이용해 박물관 내 전시와 체험물들을 이용할 수 있다. 박물관 안내 지도는 따로 없다. 이용자가 박물관의 모든 전시내용을 알 필요 없고, 자신이 원하는 전시와 체험을 즐기면 된다는 의미다.

이는 방문객이 단순한 관람자가 아니라는 의미다. 각 방문객이 어떤 콘텐츠에 주목하느냐에 따라 박물관 의미를 다르게 규정한다. 반지는 각 방문객의 ‘미디어 성격’을 기록해 알려준다. 박물관 도슨트인 필릭 릭터씨는 “과거엔 라디오 주파수로, 현재는 관람객이 초반에 입력한 이메일로 그 결과물을 보내준다”고 안내했다.

▲ 네덜란드 노르트홀란드주 힐베르숨에 위치한 ‘사운드 앤 비전’ 박물관 전경. 사진=김예리 기자
▲ 네덜란드 노르트홀란드주 힐베르숨에 위치한 ‘사운드 앤 비전’ 박물관 전경. 사진=김예리 기자
▲ ‘사운드 앤 비전’ 전시는 3층으로 이뤄졌다. 줄글로 정보를 알려주기보다 이용자 체험을 유도한다. 사진=김예리 기자
▲ ‘사운드 앤 비전’ 전시는 3층으로 이뤄졌다. 줄글로 정보를 알려주기보다 이용자 체험을 유도한다. 사진=김예리 기자

 

박물관에 ‘종이’가 없는 까닭

전시는 3층으로 이뤄졌다. 줄글로 정보를 알려주기보다 이용자의 체험을 유도한다. 3층엔 저널리즘과 뉴스 관련 전시물이 놓여있다. 뉴스제작 코너가 대표격이다. 한 부스엔 어린이가 마이크와 촬영장비가 놓인 데스크 앵커 자리에 앉아 리포팅을 하고 있었다. 반지를 대고 리포트 녹화를 마치면, 이메일을 통해 결과물을 받아볼 수 있다.

‘힛뉴스 만들기(maak het niews)’는 뉴스배열 체험이다. 가자지구의 전쟁 상황, 문화, 정치, 날씨 뉴스등 그 날의 뉴스 꼭지가 눈앞에 펼쳐진다. 참여자는 이들을 중요도 순으로 배열해 한편의 뉴스를 짠다. 기기는 해당 뉴스 배열이 얼마나 ‘힛 뉴스’인지 점수를 알려준다. 한쪽 벽엔 TV프로그램 편성 시뮬레이션 게임이 있다. 각각 예산이 주어진 프로그램을 24시간 타임라인에 배치해 시청률을 극대화하는 것이 목표다. 종합뉴스를 선택해 한낮 시간대에 배치했더니 모니터 속 거실에 있는 아이들과 베이비시터가 외면했다.

‘전쟁 리포트’는 그물로 된 천막으로 가려져 있었다. 어른만 볼 수 있도록 설정됐다. 어린이가 자신의 정보가 입력된 박물관 반지를 기기에 가져다 대면 기기는 영상을 재생하지 않는다. 세계 각국의 저널리스트가 영상물에 나와 자신이 취재한 전쟁 상황에 대해 설명한다. 

사운드 앤 비전 박물관의 두 번째 열쇳말은 ‘향수’다. 과거 미디어 기기들을 전시하는 코너도 광범하다. 박물관 체험 부스들이 늘어선 복도를 따라 1920년부터 최근까지 네덜란드에서 쓰인 미디어 장비들을 전시했다. TV와 라디오, 방송 녹화와 송출 기기, 릴, 타자기, 축음기 등이다. 시간 순으로 이들을 전시한 복도를 따라 걷자, 라디오와 릴, 타자기 등 기기들은 점점 덩치가 작아지는 반면 TV 화면은 점점 커지는 변화가 눈에 띈다.

1960~90년대 TV스타들이 입은 유명 의상과 이들이 출연한 과거 텔레비전 쇼를 볼 수 있는 코너도 있다. ‘매치 앤드 미디어’에는 네덜란드 사회에서 일어난 미디어 관련 사건을 퀴즈로 풀도록 했다. “왕가를 대상으로 한 농담이 방송에 처음 나온 해는?” “한 네티즌이 자기 페이스북을 통해 불특정 대다수를 파티에 초대해, 경찰이 모이지 못하도록 시도한 사건은?”

▲ 1920년부터 최근까지 네덜란드에서 쓰인 미디어 장비들을 시간 순으로 전시했다. 라디오와 릴, 타자기 등 기기들은 작아지는 반면 TV 화면은 커진다(위). 한 청소년이 뉴스 제작 코너에서 리포팅 체험을 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1920년부터 최근까지 네덜란드에서 쓰인 미디어 장비들을 시간 순으로 전시했다. 라디오와 릴, 타자기 등 기기들은 작아지는 반면 TV 화면은 커진다(위). 한 청소년이 뉴스 제작 코너에서 리포팅 체험을 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아카이브, 더 이상 박물관 전유물 아냐

해마다 30만명이 찾는 네덜란드 최대 미디어박물관이지만, 사운드 앤 비전 박물관도 고민이 있다. 그 고민은 ‘향수’와 ‘체험’ 두 열쇳말과 관련 있다. 박물관이 제공하는 ‘향수’의 감각과 체험도 낡아 바래고 있다는 점이다.

도슨트 릭터씨는 “관람객 가운데 65% 정도가 55세 이상”고 했다. 그러고 보니 관람하며 마주친 방문객 나이대는 어린이와 장·노년층으로 눈에 띄게 갈렸다. 그는 “여기 있는 전시물과 콘텐츠들이 60대 초반인 내가 젊었을 때 방송 내용 관련이기에 20~30대들은 흥미를 찾지 못한다. 박물관은 현재에 맞게 바꾸려고 준비 중”이라고 했다.

새 박물관 사업 기획총괄 담당자인 존 릭(John Leek) 매니저는 “아카이빙이 더 이상 박물관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이 우리의 근본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16일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세계 방송박람회에서 박물관 리모델링에 협업할 파트너를 찾고 있었다.

▲‘사운드 앤 비전’ 박물관 기획총괄인 존 릭(John Leek) 매니저는 “아카이빙이 더 이상 박물관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이 우리의 근본 의문”이라고 말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사운드 앤 비전’ 박물관 기획총괄인 존 릭(John Leek) 매니저는 “아카이빙이 더 이상 박물관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이 우리의 근본 의문”이라고 말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릭 매니저는 “이대로라면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박물관의 목적을 바꾸기로 했다. 단순한 아카이빙이 아니라, 사람들이 박물관을 개인적으로 경험하고, 박물관이 그의 ‘미디어 성격’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려 한다”고 말했다. 특히 뉴스와 미디어콘텐츠 생산과정이 바뀌며 개인도 미디어 콘텐츠에 책임을 나눠 지는 시대가 됐다는 데 주목했다.

새 박물관의 주제는 ‘우리 모두는 어떻게 미디어 퍼스널리티(인격)가 됐는가?’이다. 릭 매니저는 “박물관은 정보를 단순히 전달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을 놀래키기도 해야 한다. 이용자가 이미 아는 것을 알려주고 좋아하는 것만을 보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아카이빙 가운데 ‘네게 이런 것도 잘 맞을 거야’ 하고 제안해 ‘미디어 버블’을 깨는 것”이라고 했다. 

관람 주제는 △연락과 소통 △스토리텔링 △정보 공유 △광고와 프로파간다 △놀이이다. 그는 “향수, 즉 추억을 되새기는 과정을 옛날 사람들만 좋아할 것이라고 여기지만, 지금은 14세와 25세도 현재를 다르게 느끼고 있다. 미디어 환경이 너무나 빠르게 변하는 탓”이라며 “이를 놓치지 않고 기록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사운드 앤 비전 박물관은 진행 중인 전시를 2021년 초에 닫고, 같은 해 말 새로 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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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2019-10-20 21:25:41
“향수, 즉 추억을 되새기는 과정을 옛날 사람들만 좋아할 것이라고 여기지만, 지금은 14세와 25세도 현재를 다르게 느끼고 있다. 미디어 환경이 너무나 빠르게 변하는 탓” <<< 세상에는 빠르게 변하는 것도 있지만, 아주 느리게 변하는 것도 많다. 이 두 개의 공통점을 찾아 전시한다면,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