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매체의 기자는 ‘특별한 날’이 다가오면 박카스를 들고 돌아다닌다. 약속을 잡은 식당의 메뉴도 꼼꼼히 챙긴다. 만날 사람의 고향이 어디인지, 그리고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파악하는 것은 기본이다.

법조출입기자단 가입 투표를 앞두고 벌어지는 풍경이다. 법조출입기자단 신규 매체 가입은 기존 기자단에 속한 매체 기자들의 투표로 결정된다. 법조출입기자단에 밉보이면 절대 기자단의 일원이 될 수 없는 구조다.

정부 부처 출입기자단 가입 절차는 대개 비슷하지만 유독 법조출입기자단의 벽이 높다. 검찰발 정보를 캐는 게 법조출입기자의 ‘실력’으로 인정받는 상황에서 검찰과 관계에서 조금이라도 가까이 갈 출입기자단은 유혹이 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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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법조출입기자단 가입 요건이 더욱 까다로워진 것으로 확인됐다. 조국 전 장관 언론 보도와 관련해 신상털기식 검증 그리고 피의사실공표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발 정보에 신중할 필요가 있고, 공개된 정보를 다루는 공판 취재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기자단 시스템을 손보는 것이 ‘검언유착’을 막는 방안으로도 거론되는데 오히려 기자단의 기득권 강화로 볼 수 있어 우려된다.

법조 기자실 출입 및 기자단 가입 규칙을 보면 ‘기자실에 출입하기 위한 조건’은 “6개월 동안 법원, 지검, 대검 담당 등 최소 3명의 인력으로 법조팀을 운영하면서 법조 관련 기사를 보도해야 한다” “이 기간 동안에는 기자실에 들어오지 못하고 기자단을 통한 자료 제공은 일체 없다”고 돼 있다.

6개월 동안 법조 관련 기사를 썼다고 인정받으면 기자단에 가입 투표 회부를 요청할 수 있다. 기자단 규칙엔 “법원, 지검, 대검 기자단에서 각각 투표를 실시하고, 재적 3분의 2 출석과 과반수 찬성이 이뤄지면 기자실 출입을 허용한다. 이에 대법원 1진 기자실에서 한차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규칙상 3개의 기자실에서 시행하는 투표 절차를 밟아야 하지만 관행적으로 법조팀 검찰반장이 상주해있는 지검(고검) 기자단 투표를 통과하면 기자실 출입을 허락해왔다. 지검 기자단 소속 일원의 3분의 2 출석에 과반을 얻어 투표를 통과하고 대법원 기자단(1진)이 승인하는 식이었다. 2014년 이전 이런 방식을 통해 기자실을 출입하고 있는 매체는 이데일리와 이투데이 등이다. 그런데 2014년 이후엔 투표 통과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해 단 한 매체도 기자실 출입을 못하고 있다.

A매체는 2017년 12월 그리고 올해 6월 두 차례 기자실 출입 투표 결과 부결됐다. B매체도 올해 6월 투표에서 떨어졌다.

2017년 A매체는 지검(고검) 기자단과 지법(법원) 기자단 2곳 가입 투표를 신청했는데 지검 기자단 투표에선 부결되고, 지법 기자단 투표는 통과했다. 최종 승인 권한을 갖는 대법원 기자단(1진)은 하지만 기자실 출입을 허락하지 않았다.

대법원 기자단은 A매체 법조팀 소속 기자가 법조 관련 기사 뿐 아니라 일반 사회 기사를 쓴 것을 ‘치팅’(부정행위)이라고 봤다. 3개월 동안 법조 관련 기사를 써야 한다는 투표 요건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기자단 출입 결격 사유에 해당한다고 통보했다. 대법 기자단은 또한 기자단 가입 승인을 부결시킨 이상 ‘3년 동안 가입 투표에 임할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놨다.

▲ 검찰. ⓒ 연합뉴스
▲ 검찰. ⓒ 연합뉴스

A매체는 그동안 쏟아 부은 노력들이 물거품이 된 것은 물론 앞으로도 투표 자격이 없다는 말에 분을 삭혔다. 대법원 기자단은 법원 출입을 포기하고 6개월 후 지검 기자단 투표에만 임하면 3년 투표 불가 입장을 철회하겠다는 타협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올해 6월 다시 기자단 가입 투표 회부를 요청하자 황당한 가입 요건을 통보받았다. 대검, 지검, 지법 3개 기자단에서 모두 투표 절차를 밟아야 하고 투표 통과 조건은 3분의 2 출석에 3분의 2 찬성이며 특히 3개 기자단에서 한 곳이라도 부결이 되면 나머지 기자단 투표를 통과해도 어느 곳의 기자실도 출입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3개 기자단 투표를 동시에 통과해야지만 법조출입기자단 일원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 A매체는 올해 6월 3개 기자단 가입 투표를 했지만 모두 부결됐다. 타 정부 부처 역시 기자단 투표를 실시하고 있지만 법조출입기자단과 같이 요건이 엄격하고 자의적으로 운영되는 곳은 많지 않다. 법조출입기자단이 일종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폐쇄된 상태에서 검찰발 정보를 독점하려하기 때문에 ‘검언유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으로 보면 정반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17년 박근혜-최순실 농단 사건이 터지고 특검이 꾸려지자 15개 매체 40여명 기자들은 별도의 기자단을 만들었다. 이들은 법조출입기자단과 차별 없이 특검팀에서 나온 정보나 재판 정보를 받는 데 목적을 뒀다. 하지만 차별은 여실히 드러났다.

법원은 대법정에서 진행되는 국정농단 사건을 취재할 자리 40여개 모두를 법조출입기자단에 줬다. 기자단에 속하지 않은 매체는 재판을 볼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비출입 기자단’은 법원에 ‘읍소’해 겨우 한자리를 얻어 재판에 들어갔다. 소법정(참관 30명 제한)에서 진행되는 국정농단 사건 재판에선 법조출입기자단 몫으로만 3개 자리를 줬다. 법원은 재판정에서 금지돼 있는 노트북 사용을 허락했다. 기자단에 속하지 못한 매체 기자들은 법정에 서서 재판 과정을 수기로 기록해야 했다.

공판중심주의 취재는 재판을 기록하고 판결문을 분석하는 일이다. 그런데 법원은 판결문 공개에 제한적이다. 판결문 공개에 따른 명예훼손 소송 문제가 불거진 탓도 있지만 법조출입기자단이 기득권을 고수해서다. 법조출입기자단에 속한 매체의 경우 판결문이 나오면 법원에 신청해 즉시 전자문서나 출력된 종이 형태로 받아볼 수 있다. 하지만 기자단에 속하지 않으면 판결문 구하기가 쉽지 않다. 판결문을 신청하면 수일이 걸린다. C기자는 “판결문을 신청했더니 법원 공보관이 출입기자단에서 비출입사 기자에게 판결문을 주지 말라고 했다고 그러더라”라며 “피의사실공표 문제가 있는 검찰 중심 취재가 아니라 재판 과정을 따라가는 취재를 하려고 해도 이슈가 큰 사건의 경우 차별을 받는다. 기자단 시스템이 개선되지 않으면 공판중심주의 취재라는 말도 헛구호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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