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성’에 대한 참가자와 시청자의 기대를 저버린 CJENM의 ‘기만적’ 방송이 MBC ‘PD수첩’을 통해 폭로됐다. 방송사가 시청자를 상대로 벌인 사실상의 사기행각이 낱낱이 드러났다. PD수첩 제작진은 “아무도 (이 사건에 대해)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취재원들이) 모두 CJENM을 두려워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해당 방송에 대한 CJENM의 공식 입장 또는 해명이 필요해 보인다. 

15일자 ‘PD수첩’ 방송분에 따르면 CJENM계열 엠넷의 오디션프로그램 ‘프로듀스X101’은 100% 시청자투표로 데뷔조가 결정된다고 공언했으나 마지막 방송 직후 조작 의혹이 제기됐다. 1등과 2등 득표수 차이가 2만9978표인데, 3등과 4등의 차이도 2만9978표, 7등과 8등의 차이도 2만9978표로 동일 표 차이가 반복됐다. 일정한 수학공식도 나왔다. 미지수 x에 상수 7494.442를 곱하자 20명 중 19명의 득표수가 나왔다. 이를 두고 최수영 아주대 수학과 교수는 “로또를 아홉 번 정도 연속으로 맞는 확률과 거의 비슷하다”고 말했다.

▲엠넷 '프로듀스X101'의 시청자 투표 독려 이미지.
▲엠넷 '프로듀스X101'의 시청자 투표 독려 이미지.
▲15일 방송된 MBC PD수첩 화면 갈무리.
▲15일 방송된 MBC PD수첩 화면 갈무리.

‘프로듀스X101’에 출연했던 연습생 ㄱ씨는 “연습생들이 투표로 뽑은 첫 무대 센터가 갑자기 다른 센터로 바뀌었다”며 사전에 데뷔조가 정해져 있던 정황을 털어놨다. ‘프로듀스X101’ 제작진이었던 ㄴ씨는 “누구를 집중적으로 찍어라. 어떤 모습으로 찍어라. 이렇게 (위에서 지시가) 내려왔다”고 폭로했다. 실제로 출연자 방송 분량 차별은 존재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등이 ‘프로듀스101’의 시리즈 전편(1~4편) 6240분 분량을 전수조사해 출연자 컷을 일일이 분석한 결과 1차 탈락자 39명의 노출 시간은 평균 16초(방송 1~5회 기준)였던 반면, 데뷔한 11명은 평균 124초로 8배 차이였다.  

생방송 시청자 문자투표 진행 당시 부조정실에 투표수를 계산하는 담당자가 없었으며, 문자투표 담당 PD가 제3의 장소에서 휴대전화를 통해 결과를 보냈고, 그걸 그대로 받아쳤다는 증언도 나왔다. 담당자는 한 사람, 이아무개 PD였다. 이PD와 함께 일했던 한 인사는 “(투표수 결과 집계는) 안준영PD를 거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엠넷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이PD는 조작 논란 직후 안준영PD와 함께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있는 세 사람 중 한 명”이라고 전했다. 

PD수첩 제작진은 “과거 프로그램에선 화제성 상위 11명과 데뷔조가 거의 일치했는데 이번 경우는 일치하지 않는 예상외 멤버가 대거 포함됐다”며 연예기획사와의 유착의혹을 제기했다. 최근 경찰수사에서 압수수색 대상이었던 스타쉽 엔터테인먼트가 대표적이다. ‘프로듀스X101’에 참가했던 연습생 ㄷ씨는 “한 친구가 경연곡을 미리 유포해서 추궁했더니 안무 선생님이 알려줬다고 했다. 사전에 경연곡을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문제를 미리 알고 있는 것과 같았다”고 말했다. 

이날 방송에선 성과급 중심의 인사체계로 인해 조작이 당연시되는 분위기가 있었다는 증언, 안준영PD 혼자 조작에 나설 수 없다는 증언도 등장했다. CJENM이 만든 오디션 프로그램에 CJENM산하 연예기획사 연습생이 선발되고 음원시장까지 접수하며 연예기획사들의 위기감이 커졌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날 PD수첩에 출연한 ‘프로듀스X101’ 시청자들은 “공개만 하면 되는 시청자투표 원본데이터를 아직도 공개하지 않는 엠넷의 태도가 가장 의심스럽다”며 “국민프로듀서라는 말로 사기를 당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15일 방송된 MBC PD수첩 화면 갈무리.
▲15일 방송된 MBC PD수첩 화면 갈무리.

이날 방송에선 2017년 방송된 엠넷의 또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 ‘아이돌학교’에 대한 순위조작 의혹도 등장했다. ‘아이돌학교’ 연습생이었던 이해인씨는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시작부터 조작이었다. (제작진이) 처음에 나는 3000명이 있는 오디션장에 가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촬영 전날 작가가 인지도가 있어서 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방송에 출연한 41명의 연습생 중 3000명 오디션장에서 시험을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며 “3000명은 이용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동아일보는 “41명 중 37명은 예선을 거치지 않은 연습생”이라고 보도했다. 

이해인씨를 찍었다는 문자투표 인증자가 온라인에서만 5000명이 넘었지만 정작 방송에 나온 투표집계는 2600여표에 불과했다. 탈락자 ‘이해인’은 포털 실시간검색어 1위를 차지했다. 투표수 조작 논란에 대해 ‘아이돌학교’ 담당PD는 “(투표집계를) 담당하지 않아서 정확히 모르겠다”며 답을 피했다. 이씨 아버지는 제작진을 만나 “취업 비리와 똑같다. 10년을 고생했는데 만약 조작을 했다면 정말 악랄한 것”이라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이씨는 “칭찬을 많이 받았음에도 떨어졌다.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더라. 이렇게 이미 (불합격이) 정해져 있었다고”라며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촬영장에서의 ‘인권침해’ 논란도 도마에 올랐다. ‘아이돌학교’에서 연습생들이 잠을 청했던 ‘핑크빛 내무반’의 경우 “페인트 냄새가 가득했고 환기시설도 없었고 먼지가 엄청났다. 피부병이 날 정도였다”(이해인)는 증언이 나왔다. ‘아이돌학교’에 참가했던 다른 연습생들은 “새벽 4시에 1조 나와 이러면 좀비 나가듯이 나가서 마이크 차고 준비하고 ‘먹어’ 그러면 먹고 ‘자’ 그러면 자고 ‘일어나’ 하면 일어났다”고 말했다. 대다수가 미성년자였지만 새벽 촬영도 많았고, 밥을 주지 않아 울던 아이들도 많았다고 했다. ‘조작’·‘감금’, ‘밤샘촬영’ 등 라이브 방송 금지어도 존재했다고 전했다.

▲CJENM 사옥. ⓒ연합뉴스
▲CJENM 사옥. ⓒ연합뉴스

협회나 노조 없이, 그 누구도 제작 관행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기 어려웠던 CJENM의 사내 조직 분위기는 결국 ‘성과 만능주의’로 귀결되었고, 그 결과 제작진의 심각한 ‘도덕적 해이’가 시청자들의 분노로 드러났다. CJENM으로서는 PD수첩 방송으로 드러난 문제나 의혹에 대해 명확한 해명 또는 사과가 필요해 보인다. 그렇지 않을 경우 CJENM은 시청자들로부터 방송프로그램을 제작하고 편성할 자격이 없는 사업자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디어오늘은 PD수첩 방송내용에 대한 CJ측 입장을 묻고자 신형관 CJENM 음악콘텐츠본부장에게 수차례 연락을 시도하고 문자를 남겼으나 답을 들을 수 없었다. CJENM은 PD수첩 제작진에게 “수사 중인 사건”이라며 인터뷰에 응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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