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아침신문에는 가수 겸 배우 설리의 사망 원인을 조명하는 기사가 많았다. 다수는 ‘악플’에 주목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나란히 설리 추모글에도 악성 댓글이 넘쳐난다는 기사를 내며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악플 시달린 설리 추모글에... ‘너도 죽고 싶냐’ 또 악플”(조선일보), “설리 추모글에도 악성 댓글.... ‘악플러는 얼굴 없는 살인자’”(중앙일보) 기사가 대표적이다. 

조선일보는 “한국의 악플 문화가 위험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며 “청와대 게시판에는 악플 처벌 강화 청원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날 서울신문, 한국일보, 국민일보, 세계일보는 악플이 비극을 낳았다며 악플 대책이 필요하다는 사설을 냈다.

▲ 악플 문제에 조명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기사.
▲ 악플 문제에 조명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기사.

몇몇 언론은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냈다. 조선일보는 전문가 멘트로 현행 모욕죄와 명예훼손의 처벌 수준이 낮다고 지적했다. 국민일보는 “도가 지나치고 상습적인 악플에 대해서는 단속과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세계일보는 “‘악플 금지법을 만들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악성 댓글에 대한 강력한 법적 규제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대책이 효과적일지는 의문이다. 악플 금지법 등의 대책은 어떤 댓글을 어떻게 처벌할지 제시하지 않고 있다. 모욕죄, 명예훼손죄 처벌의 경우 이미 한국이 과도하다는 비판을 받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일부 언론은 인터넷 실명제를 다시 꺼내들기도 했지만 이미 위헌 결정을 받았다.

악플이 심각하고 이번 사고와 관련이 있다고 보는 건 타당하지만 악플만을 문제로 삼을 일도 아니다. 설리 소셜미디어 계정의 일거수 일투족을 기사화하며 ‘논란’이라고 규정해 악플을 부추긴 건 다름 아닌 언론이다.

▲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온라인 기사.
▲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온라인 기사.

악플을 문제로 지목한 중앙일보가 과거 썼던 기사다. “‘로리타 논란’ 휩싸였던 설리, 또 논란”, “설리, ‘성민씨 호칭 논란’ 지적 팬 호소문에 ‘많이 억울했어?’”, “‘유적지 훼손’ 때 아닌 논란 휩싸인 설리”, “설리 ‘노브라 사진 SNS에 올리는 이유는…’” 등이다. 중앙일보 계열사인 일간스포츠에선 “설리, 노브라 운동... 설마 SNS 전략인가?” 등 더욱 낯 뜨거운 기사들이 많다. 

조선일보는 “설리 연인 최자…‘설리, 밤에 전화해서 ○해달라고 조른다’”는 기사를 써 질타를 받은 적 있다. ‘○’는 ‘랩’이었다. 조선일보 계열사인 스포츠조선에선 “설리, 노브라 가슴노출 논란 이틀째ing→‘오늘 왜 신나?’” 등 기사를 쏟아냈다.

악플을 문제로 지목한 다른 언론사도 마찬가지다. “설리, 또 ‘노브라’ 논란…SNS 19금 도발 언제까지?”(세계일보), “만취 SNS 방송 진행한 설리 ‘노브라? 시선강간이 더 싫어’”(서울신문), “노브라 영상 올린 날… 또 논란된 설리 인스타 사진”(국민일보) 등 기사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언론 보도, 혐오표현 문제에 주목한 언론

‘악플’이라는 표현만으로는 현상을 정확히 진단하기 힘들다. 경향신문은 다른 언론과 달리 ‘악플’ 뿐 아니라 언론의 문제도 함께 조명해 한발 더 깊은 분석을 내놨다. 

경향신문이 중앙일간지, 경제지, 지역종합지, 방송사 등 54개 매체를 분석한 결과 설리 관련 기사에 주로 등장하는 키워드는 ‘악플’과 함께 ‘인스타그램’ 등 사생활 내용이 많았다. 포털에 ‘노브라’를 포함해 설리 관련 기사를 검색하자 1370건의 기사가 나왔다. 경향신문은 “언론이 악성댓글을 기사화해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더 가학적인 댓글을 유도하는 악순환이 이뤄진다”고 지적했다.

▲ 16일 경향신문 보도 갈무리.
▲ 16일 경향신문 보도 갈무리.

‘악플’이라고 단순화하지 않고 아이돌에 대한 편견, 여성혐오 등을 문제로 짚는 보도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겨레는 사설에서 “일부 악플 다는 사람들 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여성 아이돌을 대하는 방식도 돌아봤으면 한다”고 했다. 한겨레는 “남성이 하면 소신발언이고 여성 아이돌이 하면 관심종자라는 식의 비난이 쏟아지는 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라며 “젊은 여성 연예인을 인형이나 성적대상으로 소비하는 대중문화와 깊은 연관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고 했다.

한겨레는 악플 대책을 촉구한 다른 언론과 달리 기획사에 전속 심리상담사를 두는 등의 체계적인 관리가 부실한 점을 문제로 지적하기도 했다.

▲ 한겨레와 한국일보 보도.
▲ 한겨레와 한국일보 보도.

한국일보는 혐오표현의 관점에서 사안을 바라봤다. 한국일보는 “이번 사건은 단순히 유명 연예인에 대한 집단적 괴롭힘을 넘어 온라인상에 만연한 혐오 문화가 낳은 비극이라는 지적이 나온다”고 했다. 한국일보는 온라인 혐오 96%가 성차별적 표현에 집중된다고도 했다. 한국일보는 대책으로 혐오표현 자율규제, 혐오죄 신설 등 형사범죄화 등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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