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전, 방송사에 맞선 여성들이 있었다
20년전, 방송사에 맞선 여성들이 있었다
마산MBC작가 중심 2001년 여성노조 방송사지부 출범… 당시 조합원 “이번에 작가노조 생길 때 또 상처받을까 마음 아팠다”

“작가 정규직 해봤자 잘되는 케이스는 PD랑 결혼하는 걸 거야. 어느 PD가 정규직 작가와 일하려고 하겠어? 정규직 작가는 도태될 수밖에 없어.”

tbs 정규직화 과정에서 노조 간부인 한 방송작가(구성작가)가 들은 말이다. 여성차별과 방송작가를 무시하는 발상은 구분되지 않는다. 방송작가는 여성의 직업이 됐다. 2016년 방송작가유니온 실태조사를 보면 방송작가 94.6%는 여성이다. 원래는 이러지 않았다. 

한 작가는 미디어오늘에 “원래 남성 시사교양 작가도 있었는데 처우가 낮으니까 버텨낼 수가 없어 여성만 남았다”며 “예능·드라마 쪽엔 남성작가가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미혼여성의 노동을 보조화하고 기혼여성은 가사노동을 전담하라는 사회의 압력은 방송계도 마찬가지다. 이런 분위기가 여성이 절대다수인 방송작가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정당화한다. 

성역할은 직업에도 적용됐다. PD는 결정권자인 반면 작가는 이를 지원하는 보조역할을 한다. PD와 작가를 남성과 여성으로 바꿔도 무방했다. 젠더 등 정체성이 다르면 다른 노동시장에서 일한다는 이중노동시장의 한 예가 작가다. 1996~2004년 지역방송사 작가로 일한 임현희는 자신의 연구에서 “우연의 일치인지 정규직 공채 통과자는 대부분 남성이며 구성작가 등 프리랜서 채용자는 대부분 여성”이라며 “(PD와 구성작가는) 건널 수 없는 강”이라고 했다. 

▲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가 지난해 발표한 '모성권 실태조사'를 보면 10명 중 7명은 임신 결정이 자유롭지 않다고 답했다. 사진=게티이미지
▲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가 지난해 발표한 '모성권 실태조사'를 보면 10명 중 7명은 임신 결정이 자유롭지 않다고 답했다. 사진=게티이미지

마산MBC 작가들이 지난 1999년 전국여성노조 산하에 마산MBC분회를 만들었다. 이후 전국 작가 등 비정규직들이 2001년 여성노조 방송사지부를 만들었다. 미디어오늘은 당시 여성노조 방송사지부에서 활동한 A작가를 만났다. A작가는 지역방송사 공채출신 작가다. 당시 저연차였고 20여년이 흘러 기억의 조각 밖에 모을 수 없었다. 그는 노조가 깨지는 과정에서 작가들의 상처가 컸다고 전했다.

방송사는 작가의 ‘노동자성’을 제거하며 노조 자체를 부정했다. A작가는 “작가노조를 만들자 방송사가 작가 공채를 없앴다”며 “원래 작가실이 있고 작가마다 자기자리에서 일했는데 작가실을 폐쇄하고 우릴 몰아냈다”고 말했다. 이어 “‘안녕하세요’ 인사만 하고 드나들었는데 경비아저씨들이 출입을 못하게 막았다”며 “어제까지 웃으면서 회의했던 PD들이 싹 다 적이 되는 과정에서 너무 큰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법적다툼이 발생하자 방송사들은 공개모집을 없애고 작가 등 양성기관을 운영하며 모집비용과 절차를 줄였다. 한 작가는 미디어오늘에 “(최근) 방송사에서 운영하는 방송아카데미에서 작가를 지망하는 이들이 3개월에 400만원을 내고 수업을 들었다”고 말했다. 한국방송작가협의회가 2002년 작가의 업무가 섭외·공문작성·자료대출·소품구입 등 30여종에 달한다고 발표했는데 방송아카데미에서 이를 배우진 않는다.

A작가는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막내작가 페이를 조사해 문제제기 했더니 PD한테 전화가 와서 얘기 좀 하자네요. 밤새워 술을 마셨죠. ‘왜 작가들이 이런 대우를 받으면 안 되는지’ 말했어요. 근데 PD들이 ‘알아, 너네 고생하는 거’ 거기까지였죠. ‘억울하면 시험 봐서 PD하든가’ 이런 거죠.” ‘방송작가=프리랜서’라는 굴레는 무거웠다.

여성노조 내부자료를 보면 노조의 요구는 원고료 인상, 고용계약서 작성, 프로그램 개편시 협의체계 마련 등 2019년 현재와 다르지 않다. 2001년 3월 마산MBC분회가 교섭을 요구하며 단체행동에 들어가자 마산MBC는 다음달 FM방송 4개 중 3개 프로그램을 없애겠다며 개편안을 통보했다.

▲ 여성노조 마산MBC분회 요구 내용. 자료=A작가 제공
▲ 여성노조 마산MBC분회 요구 내용. 
▲ 여성노조 방송사지부 요구 내용
▲ 여성노조 방송사지부 요구 내용와 방송사 반응

사측과 대화가 원활하지 않자 여성노조는 같은해 4월25일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했다. 7월 사측은 PD대표를 통해 ‘노조 활동 포기하면 요구조건을 듣겠다, 아니면 재택근무하라’고 통보했다. 다음달인 8월 지노위는 사측이 교섭에 응할 이유가 없다며 이를 각하했다. 8월26일 전국 9개 지역 13개 방송사 130여명이 가입해 여성노조 방송사지부가 출범했다. 

A작가는 서울에 있는 작가들과 만났던 경험도 회상했다. 2000년대 초 서울은 이미 작가들이 파편화한 상황이었다. “버스를 대절해 서울 가서 작가들을 만났어요. 작가노조 필요성을 말했는데 힘을 실어주지 않았죠. 우리(지역방송사)는 직원처럼 일을 하고 있었는데 서울은 그렇지 않았어요. 이미 여러 프로그램을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설득이 안 된 거죠. 어린 마음에 상처를 받고 내려왔어요.”  

노조는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했다. 중노위는 2002년 2월 “일반작가와 달리 구성작가는 PD를 포함한 제작진들과 팀을 이뤄 프로그램에 대한 조사, 취재, 창작, 구성 등이 필수적으로 수반되고 출연자 섭외, 촬영구성, 편집구성 등 프로그램 제작의 전반적인 과정에 참여한다”며 “근무시간·장소도 실질적으로 담당PD에 의해 결정되는 점을 고려할 때 노조법상 요구되는 종속성이 없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중노위는 노조의 존재도 인정했다. 작가노조의 성과다. 

마산MBC는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서울행정법원은 2002년 11월 “작가의 노무 성질면에서 종속성이 있다”면서도 “인정될 정도로 지휘·감독된다고 볼 수 없다”며 방송사 손을 들어줬다. 여성노조는 이에 항소했지만 서울고등법원은 2003년 11월 기각했다. 당시 한국사회는 작가 등 여성 비정규직의 요구를 들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 여성노조는 대법원 기록을 남길 수 없다며 훗날을 기약했다. 

▲ 사진=방송작가유니온
▲ 사진=방송작가유니온

A작가는 “그때나 지금이나 분위기는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했다. 사실은 노동조건이 더 나빠졌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광고수입이 줄자 지상파 3사는 500억~700억 가량 제작비를 줄였고 원고료를 KBS는 30~50%, MBC·SBS는 20.6% 줄였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광고수입이 감소하자 방송작가간 경쟁이 늘고 상사·PD와 작가 간 의사소통·동료의식이 줄었다. 방송작가 업무량이 증가했고 작가들은 시청률을 더 많이 의식했다. 물론 작가 원고료도 삭감했다. 

방송사 수가 늘고 광고시장이 축소하는 가운데 작가들을 바라보는 관점, 즉 원고료를 인건비로 책정하지 않고 제작비 일부에 포함하는 관행을 바꾸지 않는 이상 작가처우를 개선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다만 A작가는 “촛불 이후 미묘하게 분위기 변화를 느낀다”고 말했다. 2년간 준비 끝에 전국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방송작가유니온)이 2017년 11월 출범했다. A작가는 “작가노조가 생긴다고 했을 때 기쁘기도 했지만 걱정도 되고 만감이 교차했다”며 “고스란히 또 상처를 받지 않을까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2017년 11월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출범식.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2017년 11월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출범식.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는 지난해 5월 대구MBC와 원고료 지급기준에 관한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지난해 8월 안동MBC와 개별계약 형식으로 협약을 체결했다. 두 달 뒤엔 tbs에서 신입작가들이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작가노조의 존재와 작가의 노동자성을 확인한 성과들이다.

모든 방송작가가 정규직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방송작가가 항상 프리랜서인 건 차별이다. A작가는 “분명 PD·기자와 같이 일하는데 작가는 일용직처럼 쓰고 버려진다”며 “방송사는 1년짜리 계약서로 1년마다 자를 권리를 얻고 작가는 안 잘리려면 PD·기자들에게 잘 보여야 하느냐”고 말했다. 

당시 여성노조 방송사지부 내부 자료에는 이런 평가와 고민이 나온다. “프로그램 개편으로 인한 계약해지는 지방사들을 다 노조로 묶어 서로 자유롭게 이동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대응)한다. 그러나 노조 탄압 성격에는 단호하게 대응한다.”, “조합원 권익개선과 폭넓은 방송사간 교류를 위해 권역별 협회 결성을 추진한다.” 후배들에게 남긴 조언이기도 하다. 

※ 참고문헌 
임현희, 특수고용직의 여성화 사례 연구-대구지역 방송사 구성작가직을 중심으로 
김연정, 지상파 방송사의 광고수입 변화와 구성작가의 근무환경에 대한 인식 연구 : KBS 교양작가들을 중심으로
장희은 등, 불안정 창의노동자들의 정체성과 고용형태의 변화 : A사 프리랜서 구성작가의 정규직화 과정 사례를 중심으로
김한별, 방송국에서 일하는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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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2019-10-19 22:08:12
과거 부산/마산은 깨어있는 시민이 많았고, 민주주의에 성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