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28일, 20대 여성들이 청년허브에 모였다. 이들은 각각 다른 곳에서 같은 목표를 가지고 뭉쳤다. 그 목표는 ‘청년 여성으로서 잘 살아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여성들, 그 중에서도 20대 여성들을 위한 사회적, 제도적 장치들이 현저히 부족한 상황이다. 남성들, 노년층, 영유아를 비롯한 이들의 자리는 갈수록 늘어만 가는데 청년 여성들의 자리들은 홀로 과거에 머문 듯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에 할 말이 많은 20대 여성 20명이 발 벗고 나섰다.

일살놀설 공론장은 ‘일자리, 살자리, 놀자리, 설자리 공론장’의 준말로, 앞으로의 청년 여성들이 잘 살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프로젝트팀이다. 청년허브에서 모임을 갖기에 앞서 각 팀들은 두 차례의 세미나를 가졌다. 세미나에서 팀들은 각각 논의해야 할 부분을 조사하고, 현재 있는 정책과 앞으로 필요한 정책에 대해 정리해 함께 공유했다. 이 날 모임에서는 이전에 조사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직접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사기를 북돋아 주는 활동을 진행했다.

▲ 사진=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 사진=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처음에는 아이스브레이킹 활동으로 각자의 ‘야망’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무작위로 단어를 뽑아 서로 조합해본 뒤에 1:1 매칭을 맺어 서로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국회의원, 건물주, IT 스타트업 기업 회장, 영화감독 등 다양한 직군이 거론되었으며 서로의 야망을 확인하고 지지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 이후에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었다.

먼저 일자리 팀에서는 “82년생 김지영을 모티브로하여, ‘92년생 김유진, 취업준비만 3년째하는 이유는?’이란 제목을 붙여보았다”며 테이블 이름에 대한 뒷이야기를 공개했다. 이어 일자리의 발표자는 “당사자성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여성들과 일하게 되었고 일자리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여성이 퇴사를 할 때 부장이 혀를 차면서 ‘여기가 최고지. 퇴사해서 갈 곳이나 있겠냐.’는 말을 했다. 여성들은 워라밸이 갖춰진 일을 원한다. 하지만 정부에선 ‘엄마’를 기반으로 정책을 내놓고 있다, 우리에겐 ‘엄마’를 기반으로 하지 않은 여성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며 청년 여성을 위한 정책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또한 여성의 경력단절이라는 말은 개인이 커리어를 관리하지 못했다는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고용단절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며 단어 사용의 문제도 지적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채용 성차별 문제가 심각하다. 최근까지도 성별에 따라 합격 점수를 조작하여 여성을 전부 탈락시키는 등의 불합리한 차별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기업에 추징금을 부과하는 강력한 제도가 필요하다. 몇 백억 정도 추징금을 부과하면 그것을 여성부예산으로 활용하여 또 다른 여성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 일자리 팀의 주된 논의 주제였다.

더불어 현재 한국에서 비정규직 여성의 비율이 점차 증가하고 있으며 여성 빈곤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고 문제점을 제시했다. 또한 경력단절의 주된 원인은 ‘성차별’에 있었다며, 그동안 사람들이 원인으로 꼽았던 ‘건강, 결혼, 육아’ 등의 개인적 요인은 15%뿐이었다고 역설했다.

일자리팀에서는 여대생들을 위한 정책 조사결과도 공유했다. “여성일자리 정책으로는 일반적으로 정부에선 경력단절 여성에 한정되어 있다. 우리는 왜 경력단절 여성 위주의 일자리 정책만 있으며 20대 여성을 위한 일자리 정책은 없느냐 의문을 가졌다. 대상자를 인문계여자 대학생, 기술·이공계부문 여자 대학생, 비진학 청년 여성, 스타트업 분야, 아르바이트·감정노동자로 분류해보았다. ‘여대생 커리어 개발 지원 사업’을 2003년도에 여성가족부에서 시행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예산금도 부족했으며 그 외의 금액은 대학 자체에 부담을 요구했다. 이 정책의 성과는 유의미하지 않았고 결국 대학에서는 시행을 거부했다. 한편, 인문계 여대생을 위한 일자리 정책이 있느냐 묻는다면 전무하다고 답할 수 있다.”

이공계여성을 위한 지원제도는 ‘한국 여성 과학 기술인 지원센터’에서 비교적 구축이 되어있었지만 비진학 여성이나 인문계 여성을 위한 제도는 없었다. 창업을 희망하는 사람에게 창업지원금을 지원해주는 제도도 있었지만, ‘창업을 하고 싶은 사람’이 아닌 ‘창업 준비가 다 되어 있는 사람’을 선발하고 있어 일자리팀의 취지와 맞지 않는 정책이라 설명했다.

일자리팀은 “청년 여성 초기노동시장에 있어서 진입지원이 필요하다. 여성이 원하는 지원형태를 수립하고, 임금문제, 차별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자신들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고,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세웠다.

살자리팀에서는 “여성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사회적 기반이 부족하다. 서울 시내 집의 물량도 부족하고, 자취하는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분위기와 혼자 사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높은 범죄율 등을 고려하면 여성들은 살 집을 찾기가 매우 힘들다.”며 여성들이 ‘살자리’를 찾기 힘든 원인을 제시하며 발표를 시작했다.

“이런 불안감 속에서 청년주거 정책은 일단 저렴한 주택을 공급하자, 좀 살기 편한 주택을 공급하자는 등의 자취 여성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자취 하고자 하는 여성들이 원하는 것은 안전한 살자리인 것이다.”라며 청년 여성을 위한 주거정책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음을 지적했다. 또한 강력 범죄의 87%가 여성대상 범죄이며 강제추행 피해여성 중 55.6%는 자신의 주거지에서 범죄를 당했다는 사실을 명시했고, 여성이 집을 더 이상 안전구역으로 여기지 않는 현실을 이야기했다.

“정부, 임차인, 청년 여성 1인가구 등이 이해관계에 포함되어 있다. 주민들은 월세를 받고 살기 때문에 새로운 행복기숙사나 연립주택을 짓는다하면 반대를 한다. 서울시에서는 민간주택을 공공정책에 활용하자는 방안이 시행되기도 하지만 넘쳐나는 수요에 비해 공급률은 낮기만 하다.”라며 문제가 쉽게 해결될 수 없는 이해관계의 문제도 함께 제시했다. 그에 더해 “우선은 주거비용을 낮춰야 한다. 여성 1인가구의 96.4%가 비혼여성이었다. 이들은 주거 빈곤층으로 분류되어서 살자리를 잃어갈 가능성이 많다. 이들이 독립적인 개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1인 가구 청년여성을 위한 살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다. 여성들이 단체를 구성하여 서로 연대하며 살아갈 수 있는 대안적 정책(ex.생활동반자 법)도 필요하다.”며 자신들의 논의를 마무리했다.

놀자리팀은 “그동안 대학생활을 하면서 20대 비혼여성의 놀자리를 찾다보면 남성 중심의 놀자리가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당구장에 가면 남성들이 점유하고 있었고, 여성의 공간을 찾으면 핑크택스를 지불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놀자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밝혔다. 연이어 “사회의 디폴트값이 남성이기 때문에 문화가 남성 중심으로 발전했다. 그들만의 문화 당구, 축구, 게임 등을 구성하면서 그들만의 리그를 점유하는 반면 그 외의 것만을 여성에게 나누어주었다. 여성이 남성의 점유공간에 들어가려면 부정적인 낙인을 견뎌야 하며 홍일점과 같은 성차별적인 소리를 듣게 된다. 더불어 남성이 점유하고 있는 문화생활에서는 여성의 신체가 상품화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PC방에 전시되어있는 헐벗은 여성캐릭터가 그 예시이다.”라며 여성들을 위한 놀자리가 부족한 원인을 설명했다.

“청년 허브 등 청년들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성과는 있지만 여성공간에는 접근하지 못했고 홍보가 부족했다. 결론은 여성이 타자화된 시선에서 벗어나 온전한 시민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남성이 없는 공간이 필요하다. 서울 중심가에 여성만을 위한 허브가 구성되어야 하고, 스포츠 센터가 설립되어야 한다. 스포츠센터는 기존 여자대학교 상권에 위치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현재 있는 청년 공간의 한계성을 지적하고 분명한 논의점을 짚어냈다.

▲ 사진=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 사진=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설자리팀에서는 “설자리를 제공한다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립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물리적 뒷받침과 건강지원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한 지식도 없고 지원금이 없기 때문에 점차 자신의 몸에 관심이 없어진다. 더불어 여성예술인 체육인에게 여성 결정권자가 없기 때문에 여성이 소외되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했다.”며 논의 주제들을 건강과 여성·체육인 지원제도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밝혔다.

대부분의 여성질환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음을 꼬집었고, 여성질환을 갖게 되었을 경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사회에서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여성에게 사후 부담이 크게 다가온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사례로는 미국에선 여성건강국이나 보건복지부의 부서가 존재하며 여성의 생애주기를 기반으로 한 여성건강에 관심을 기울인 정책이 시행되고 있음을 언급했다.

“여성예술가 및 체육인에 대한 성차별적 대우와 배제된 활동과 교류에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한국문인협회나 대한체육회와 같은 집단의 임원들 대다수가 남성이다. 여성들이 예술이나 체육 활동을 안정적으로 유지해나갈 수 있는 환경 마련이 필요하다.”며 예술, 체육인 여성을 위한 설자리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다수의 여성 예술, 체육인이 자신의 분야에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부업을 하거나 포기하는 등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며 그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했고, 여성예술인이 전업으로 예술을 하는 경우는 53%에 불과하며 43%는 겸업을, 그리고 나머지는 전혀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체육인의 경우 연간 2300여명에 달하는 여성체육인이 경력단절 현상을 겪고 있으며 특히 선수출신의 여성은 90.3%가, 체육 전공자는 63.7%가 경력단절을 경험했다고 현실을 지적했다. 프랑스의 ‘앵테르미탕’이라는 제도를 예시로 들며 예술인이 생계 걱정 없이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실업급여 정책이 있다고 설명했다. 예술인들이 매달 버는 돈을 정부에 신고하고 절반을 보험료로 납부하면 수입이 없을 때 일정한 소득을 보장해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덧붙였다.

설자리팀은 “생애주기별 여성질환 검진과 치료 항목을 국가건강검진시 적용해야 한다. 임신·출산 관련 검진과 치료 시 비혼 여성과 기혼 여성이 동일하게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여성 예술인 및 체육인 양성 및 자립 지원을 위해서는 경제적, 사회적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며 자신들의 논의를 요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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