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법무가 사퇴한 다음날, 조선일보는 신바람이 났다. “‘조국 사태’ 만든 文, 사과 한 마디에 남 탓 열 마디” 제하의 사설에서 대통령이 언론에 ‘성찰’을 요구한 대목에 발끈했다. 성찰은 대통령이 해야지 “왜 기자들이 해야 하나”고 되물었다. 

바로 아래 사설 “국정 곳곳에서 먹잇감 찾아 악착같이 이익 챙기는 좌파들”도 자극적이다. 이참에 “좌파”들을 싹 쓸어버리겠다는 분기탱천이 읽혀진다. 조국을 비판하며 틈틈이 정의당에 칼날을 겨눈 보도와 같은 맥락이다. 

정말 조선일보 기자들은 성찰할 대목이 없을까. 조선일보는 위선이 없을까. 전혀 아니다. 조국으로 지면을 도배질하던 조선일보는 최근 신문 1면에 느닷없이 “보훈처 혁신위 “독립유공자 발굴 북한과 상의하라””제목을 내보냈다. 그 아래 ‘팔면봉’에선 “독립유공자는 북과 함께 발굴, 미사일 도발엔 ‘노코멘트’. 문 정부에 북한은 ‘신성불가침’영역인가요”라고 비아냥거렸다.

▲ 조선일보 10월10일 1면 기사 갈무리
▲ 조선일보 10월10일 1면 기사 갈무리

 

기사는 혁신위가 “지난해부터 독립유공자 발굴을 북한과 상의하라고 보훈처 측에 수차례 요구했던 것으로 9일 확인됐다”고 단언했다. 기사는 “친정부 인사로 구성된 혁신위”가 보훈처 주요 정책을 사실상 좌우했다며 실제로 약산 김원봉을 비롯한 사회주의 계열 인사들에 대한 서훈을 추진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 기사를 받아 어느 일간지는 “‘유공자 선정 북과 상의’ 보훈혁신위, 당장 해산”하라는 사설까지 냈다. 

명백한 사실왜곡이자 심각한 명예훼손이다. 대체 누가 “독립유공자 발굴을 북한과 상의하라”했는가. 촛불정부를 ‘종북 좌파’로 몰아 모든 개혁정책을 저지하려는 ‘정치언론’의 추악한 작태 가운데 하나이다. ‘조국 사태’는 아주 반가운 소재였다.  

국가보훈처는 해명자료랍시고 “혁신위 일부 위원이 아이디어 차원으로 제기한 의견”이라고 밝혔다. 내가 확인한 혁신위 어떤 위원도 “아이디어 차원에서 독립유공자 발굴을 북한과 상의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한 혁신위원이 사적으로 낸 의견은 “남북 대화가 이어질 때 ‘3‧1운동 100주년’에 대해서는 북쪽에서 그리 적극적이지 않을 터이므로 남과 북에서 모두 높이 평가하는 독립운동가 조명이 성사 가능성이 높다”며 그 사례로 신채호와 안중근을 들었을 뿐이다. 신채호도 안중근도 이미 독립유공자이다. 기사로 미뤄 이해력이 부족한 어느 보훈처 국장이 제멋대로 해석한 내용을 기자에게 흘리고 그대로 받아쓴 ‘단독 취재’로 추정된다. 

독립유공자 발굴을 북과 상의하라는 말은 논리적으로도 모순이다. 혁신위는 북에서 숙청당해 지워진 의열단 단장 김원봉 서훈을 권고했다. 그런데 북과 상의하라? 상식을 갖춘 기자라면 얼마든지 판단할 문제인데 버젓이 1면에 올리는 조선일보나 이미 지난해 해산한 혁신위를 열 달이 지난 지금 ‘당장 해산하라’고 요구하는 ‘신문’에 과연 ‘성찰’을 기대할 수 있을까. 

“국정 곳곳에서 먹잇감 찾아 악착같이 이익 챙기는 좌파들” 제하의 사설에선 조선일보가 조국을 질타하며 내건 ‘위선’의 극치가 드러난다. 조선일보는 나라 곳곳에서 비정규직 노동운동을 비롯해 줄기차게 싸우고 있는 “좌파들”을 언제나 마녀사냥 해왔다. 

▲ 조선일보 10월15일 사설
▲ 조선일보 10월15일 사설

 

내가 신문기자를 시작한 1984년부터만 짚어도 조선일보는 몸을 던져 민중운동을 벌여온 사람들을 내내 ‘먹잇감’으로 사냥해왔다. 전혀 성찰이 없는 그 행태는 지금도 “독립유공자 발굴을 북한과 상의하라” 따위의 기사로 이어지고 있다. 민중의 고통을 외면해온 그들이 “국정 곳곳에서 먹잇감 찾아 악착같이 이익 챙기는 좌파들”을 비난하는 꼴은 이 신문의 성격을 또렷이 드러내준다. 조선일보는 언론이 아니다. 부라퀴들을 대변하는 선동물이다.

물론, 민중은 방관만 하지 않았다. 언론권력의 칼춤에 촛불로 맞서왔다. 조국 사태를 맞아 촛불은 잠시 흔들렸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촛불이 흔들리는 까닭은 꺼지지 않기 위해서임을. 우리 내면의 어둠을 밝히고 다시 맑은 촛불을 준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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