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 고용노동부가 보인 이중 행태에 질타가 나오고 있다.   

지난 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감에서 이정미 정의당 의원이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진정 1호’인 MBC 계약직 아나운서 문제에 묻자 이재갑 노동부 장관은 “(MBC 아나운서들에게 보낸 노동부의) 통지문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환노위 국감에서 임이자 자유한국당 의원이 역시 이 문제에 대해 묻자 시민석 서울지방고용노동청장은 “행위 시 기준으로 판단하면 직장 내 괴롭힘이 맞다”고 말했다. 

MBC 계약직 아나운서들은 해당 법 시행 첫날인 지난 7월16일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고 진정을 넣었지만 서울노동청 서부지청은 지난달 26일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 MBC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지난해 5월22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MBC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지난해 5월22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이들은 지난 2016·2017년 MBC에 입사한 아나운서들로 MBC에서 잘렸지만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에서 각각 부당해고라고 판정받았다. 이에 불복한 MBC는 지난 3월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아나운서들이 제기한 근로자지위보전 가처분신청에서 아나운서들 손을 들어줬다. 이에 따라 해당 아나운서들을 지난 5월말부터 출근했지만 MBC는 아나운서국이 아닌 별도의 공간에 배치했다. 

직장갑질119는 14일 논평을 내고 고용노동부의 이런 태도에 “법을 집행하는 행정기관이 위법 행위에 무죄라고 판단하더니 나중에 유죄라고 하는 꼴”이라며 “노동부 스스로 직무유기를 인정”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노동부의 직무유기는 2차, 3차 피해로 이어졌다”며 “MBC 계약직 아나운서들은 근로자 지위를 다투는 재판에서 회사측 증인으로 나온 아나운서국 관계자에게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하다니 앞으로 회사생활 할 생각이 있는 사람들인가’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고 덧붙였다. 아나운서들은 서울노동청 책임자를 국민권익위원회에 ‘소극행정’ 진정을 제기했다.

진정대리인 류하경 변호사는 이번 노동부 결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비판했다. 

노동부는 ‘업무 미부여’에 “신고 이후 회사 측이 비방송 업무를 부여했지만 진정인(아나운서들)이 거부한 후 다시 방송업무 중 일부를 부여하겠다고 하면서 진정인측 의견을 물었다”며 “회사 조치가 명백히 불합리하다고 볼 근거를 찾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류 변호사는 “진정인 의견을 묻는 조치만으로 괴롭힘 상태가 해소되지 않았다”며 “회사가 제시한 업무는 ‘2020년 한글날 기획안 작성’으로 아나운서들이 해온 업무가 아니라 외부 용역업체·MBC자회사가 수행하던 업무”라고 비판했다. 또 “수행방식 또한 16사번과 17사번 팀을 나눠 경쟁하고, 수행결과는 간부들 앞에서 발표하도록 지시했다”며 “이런 업무수행 방식은 이례적이고 진정인들에 대한 아나운서국의 비우호적 태도를 볼 때 2차 가해 우려가 있는 방식”이라고 했다. 

노동부는 ‘별도의 근무공간(12층)에 배치한 것’에 “회사측이 진정인들을 아나운서국(9층)에 재배치하겠다고 하면서 선배 중 일부를 12층으로 이동시키겠다고 제안한 데 대해 설사 진정인들이 수용거부했다 하더라도 회사측이 경영질서, 작업환경, 여타 직원과 관계 등을 고려해 직원근무공간을 배치할 수 있는 점 등을 볼 때, 회사측 조치가 명확히 불합리하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 MBC는 계약직 아나운서들에게 9층 아나운서국이 아닌 12층 아나운서실을 따로 만들어 자리를 배치했다. 사진=류하경 변호사
▲ MBC는 계약직 아나운서들에게 9층 아나운서국이 아닌 12층 아나운서실을 따로 만들어 자리를 배치했다. 사진=류하경 변호사

류 변호사는 “진정인들이 아나운서국으로 가고 선배 아나운서 중 일부가 12층(별도공간)으로 이동하면 마치 진정인들 때문에 선배들이 희생되는 모양새가 된다”며 “이런 조치는 더 나쁜 상황이라고 받아들였다”고 지적했다. 또 “물리적으로 아나운서국에 진정인들 포함한 아나운서 전원 수용이 가능하다”고 했다. 

MBC에서 괴롭힘을 받는 진정인들이 MBC에서 사건조사를 받은 것도 언급했다. 류 변호사에 따르면 회사 자체 기구인 직장내괴롭힘진상조사위는 7월31일 의도적으로 신고자들을 괴롭히기 위해 시행됐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면서 인도적 차원에서 해결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노동부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을 보면 의도 여부와 관계가 없다. 행위자 의도가 없었더라도 그 행위로 신체·정신 고통을 받거나 근무환경이 악화되면 인정된다. 류 변호사는 “노동부가 이 때 회사의 자체조사 결과는 노동부 매뉴얼과 다르다고 발표했어야 한다”며 “노동부는 이때 처리기간만 한 차례 연장했다”고 비판했다. 

류 변호사는 “노동부는 노사 양측 조사하더니 회사가 개선 시도를 했다며 현재는 괴롭힘 ‘상태’가 아니라는 정도만 발표했다”며 “실질을 들여다보지 않은 지극히 형식적 행정처리”라고 지적했다. 이어 “회사 조치 이전 괴롭힘 행위에도 ‘다툼의 소지’가 있다는 정도로 회피성 언급을 했는데 업무배제, 공간격리, 인트라넷 차단이라는 명백한 법 위반이 확인됐는데도 명시적인 언급이 없다”고 했다. 
  
류 변호사는 “노동부가 다른 사건들도 이런 식으로 처리한다면 이 법은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아니라 괴롭힘 가중법이 될 우려가 있다”며 “법률미비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노동부의 실무처리 매뉴얼 부재, 가해자 관점에서 안이한 온정주의, 지나치게 늦은 행정처 리는 문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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