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직‧간접 공정 여부와 관계없이 기아차와 파견 관계에 있다는 12번째 판결이 나왔다. 특히 기존 소송에서 청구한 적 없는 지게차 수리, 도장설비청소 업무에 대해서도 기아차의 불법파견을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42민사부(재판장 박성인)는 11일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 44명이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등 소송에서 노동자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주문에서 기아차가 이들에 대해 고용 의사표시를 하고 정규직이었다면 지급했을 임금 차액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년이 지났거나 사망한 사람의 소송수계인에게도 파견근로관계를 전제로 미지급 임금을 지급하라고 했다.

사건을 맡은 금속노조 법률원이 이날 낸 자료를 보면, 재판부는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이뤄지지 않는 이른바 간접업무도 정규직 노동자 업무와 불가분하게 결합돼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기아차는 작업지시서나 서열모니터 등으로 하청 노동자들에게 구체적 작업지시를 해왔다. 하청 노동자들의 작업량과 순서, 속도, 장소와 시간도 결정해왔다.

▲전국금속노조 현대기아차비정규직 6개지회 공동투쟁위원회 등이 지난 8월22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노동부가 법원 판결대로 불법파견 인력을 전원 직접고용 명령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전국금속노조 현대기아차비정규직 6개지회 공동투쟁위원회 등이 지난 8월22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노동부가 법원 판결대로 불법파견 인력을 전원 직접고용 명령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재판부는 특히 서열과 공용기 회수, 도장설비청소 등도 자동차 생산에 필수적인 업무로 전체 생산공정과 유기적 연관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지게차수리도 생산속도에 맞추기 위해 필수적인 업무라고 판단했다. 기존 사건에서 청구 대상에 들지 않아 법원이 판단하지 않았던 업무들이다. 사측은 컨베이어벨트를 직접 거치는 직접공정이 아니면 파견업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법원은 앞서 2010년 현대차 대법원 선고를 필두로 현대기아차 사내하청 비정규직이 불법파견이며, 이미 정규직이거나 원청에 직접고용 의무가 있다고 11차례 판결했다. 직접생산직과 포장‧출고‧물류 등 간접공정을 통틀어서다.

탁선호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사용자 기아차는 줄곧 직간접 공정을 구분짓기한 뒤 간접공정은 불법파견이 아니라고 주장해왔다. 노동부와 검찰도 이를 받아 대법원과 하급심 판례를 거스른 결정으로 현장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며 “이번 판결은 검찰과 노동부 판단이 잘못됐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30일 직접공정에 한해 현대·기아차에 직접고용 시정명령을 내렸다. 이는 노동부가 2018년 말 직간접 공정 모두에 대해 파견법 위반으로 검찰에 기소의견을 송치한 판단과 어긋난다는 지적을 받았다. 현대·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조원들은 1일 노동부 조치에 반발해 서울고용노동청 2층 점거농성에 들어갔고, 이튿날 13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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