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가 국내 레거시미디어 중 처음으로 선보이는 젠더 버티컬 매체 ‘슬랩(slap)’이 오는 14일 공식 론칭된다. 지면 매체가 젠더 버티컬 매체를 만들어 콘텐츠를 선보이는 건 한겨레가 처음이다.

‘버티컬 매체’란 특정 분야를 떼어내 기존브랜드가 가진 다른 브랜드를 내세워 자유롭게 색다른 실험을 하는 것을 뜻한다.

▲ 한겨레 젠더 버티컬 매체 ‘슬랩(slap)’ 유튜브채널 화면 갈무리.
▲ 한겨레 젠더 버티컬 매체 ‘슬랩(slap)’ 유튜브채널 화면 갈무리.

‘슬랩’이라는 매체명은 영어 단어 “손바닥으로 철썩 때린다”는 뜻이다.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젠더 감수성 등에 변화를 유도하는 가벼운 손짓을 의미한다. 주 독자 타겟층은 ‘20대 여성’이다.

앞서 ‘슬랩’은 페미니스트 29명에 대해 사전 조사를 진행했다. 지난달 16일 정식 론칭 전 베타 서비스 론칭 후 영상 콘텐츠를 선보였다. ‘탈코르셋’ 등 다소 보편적이지 않은 주제를 다뤘지만, 5개 콘텐츠 중 탈코 유튜버 두 명이 찍은 ‘눕방’ 콘텐츠는 조회 수가 2만7000회를 훌쩍 넘었다. 해당 영상에 누리꾼들은 “모든 여성이 행복하기를” “그저 이 기획에 감사하다” “좋은 영상 잘 보고 간다” 등 응원하는 댓글이 달렸다.

▲ 조회수 2만7000회를 넘긴 탈코르셋 눕방 편. 한겨레 젠더 버티컬 매체 ‘슬랩(slap)’ 유튜브채널 화면 갈무리.
▲ 조회수 2만7000회를 넘긴 탈코르셋 눕방 편. 한겨레 젠더 버티컬 매체 ‘슬랩(slap)’ 유튜브채널 화면 갈무리.

한겨레 젠더팀은 11일 현재 ‘슬랩’ 유튜브 구독자 수는 4000명이 넘었다고 밝혔다. 진명선 슬랩 팀장을 포함해 기자 3명과 PD 2명 등 팀 전원은 페미니스트 여성 저널리스트다. 다음은 진명선 슬랩 팀장과 일문일답.

- ‘슬랩’을 만들기까지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것으로 안다.

“지난해 젠더 매체를 만들려고 했을 때 이름은 ‘Fair’였다. 페미니즘 이슈나 젠더 이슈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많이 없으니까 남성들도 같이 볼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려고 했다. 한겨레가 젠더 매체를 만들어 ‘중재’하자는 정도의 접근이었다. 하지만 팀장으로서 생각했다. 젠더 이슈 전문가는 누구일까. 20대 페미들이라고 생각했다. 29명을 오디언스 리서치 대상으로 삼고 한명 한명 이야기를 들었다. 여성들이 소비할 수 있는 페미니즘 뉴스나 콘텐츠도 많지 않았다. 여성들조차 소비할 콘텐츠가 많지 않은데, 누굴 설득하는 콘텐츠를 만드냐는 결론이 나왔다. 오히려 타켓 독자가 명확해져야 수요가 많겠다고 생각했다. 안에서는 독자층이 한정되면 콘텐츠가 소비되지 않을까 우려했던 게 사실이다. 내부에서 확장성, 대중성 등을 의심받았다. 소수로 가는 거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다. 하지만 베타 서비스로 올린 ‘탈코르셋’ 콘텐츠가 반응이 좋았다. 출범 매체로서 가능성을 확인했다. 내부에서도 이런 분위기를 인정하고 있다.”

- 궁극적으로 어떤 매체를 만들려는 게 목표인가?

“레거시 미디어로서 한겨레가 포괄하지 못했던 새로운 독자들. 특히 2015년 이후 굉장히 발언권이 세지고 공론장에서 눈에 띄는 20대 여성들을 잡는 것이 목표다. ‘여자들의 뉴스룸’이라는 슬로건을 걸었다. 예전만 해도 신문 1면 사진에 남자들만 있는 수뇌부 회의 사진이 별로 이상하지 않았던 시대가 있었다. 남자는 디폴트값이었다. 하지만 젊은 페미들은 남성을 상대화했다. 왜 여자가 없어? 왜 전부 남자야? 2015년부터 젊은 페미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인식이라고 생각한다. 그 전에는 계속 남자들의 이야기가 보편적인 목소리였다면 ‘여자들만’의 이야기를 해보겠다. 옛날에는 여자들만 하겠다고 하면 왜 여자들만 해? 이런 식의 발언이 나왔다. 왜 남자가 없어? 이런 말이 흔했다. 여자들만 나오는 뉴스, 여자들만 관심 있는 뉴스, 여자들이 필요한 뉴스 등을 만들어야 할 시기가 왔다. ”

- 과거 한겨레 레거시미디어 젠더 매체인 ‘허 스토리(Her Story)’가 폐간한 적이 있다. ‘슬랩’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그때랑 지금이랑 미디어 환경이 너무 다르다. 그때와 비교할 수 없다. 그때는 그런 매체가 필요했고 성장 가능성이 있었다. 그게 왜 실패했는지에 대해 젠더 매체 담당자로서 너무 편하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좀 더 고민하겠다. 지금 현재 이야기하고 싶은 건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이 페미니즘 대중화가 이뤄졌다. 20만 넘는 사람들이 페미니즘 교육을 의무화하라고 청와대 국민청원도 했다. 페미니스트라는 말이 20대 여성들에게 콘텐츠가 됐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거였거나 튀는 행위였다면, 지금 페미니스트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행위다. 페미니즘 콘텐츠도 이미 새로운 콘텐츠로서 자기 존재감을 입증했고, 그런 점에서 생각하면 ‘슬랩’은 자연 발생적인 결과다. 걱정 안 한다.”

- 앞으로의 포부는?

“살아남고 싶다. 미디어를 준비하면서 놀란 게 사실 탈코르셋이라는 레디컬 페미니즘이 대중화되면서 페미니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는 게 눈에 보이게 됐다. 레디컬 페미 이슈를 콘텐츠로 처음으로 다루면서 이것도 굉장히 많이 안 알려져 있다는 걸 느꼈다. 페미니즘 진영 안에서도 오해가 많다고 느꼈다. 어떤 목소리든 간에 너무 쉽게 치부되고 너무 쉽게 사적인 영역으로 방치되거나 외면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제대로 된 사회적인 이슈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고 싶다. 슬랩에 오면 ‘이게 우리의 목소리지, 제대로 듣는구나’ 이런 인식을 여성들에게 주는 게 1차 목표다. 여기에 오면 중재가 된다는 느낌을 받고 갔으면 좋겠다. ‘모래 속의 진주’같은 아이템을 발굴해서 콘텐츠를 만들어 독자들이 가치 있는 걸 발견하고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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