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 ‘머릿수 채우기’ 전락?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 ‘머릿수 채우기’ 전락?
‘실적 위주 퇴색’ 비판… 중증장애인 48명 5번씩 만나야, 못 채우면 수당 거둬가

시행한 지 6달에 접어든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시범사업이 당초 취지와 달리 ‘상담 건수 채우기’식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참여자 자격 문턱은 높은 반면, 활동가는 정해진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인건비를 도로 반납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증장애인이 접근할 일자리 자체가 부족하다.

정의당 이정미 국회의원실과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은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누리홀에서 ‘장애인 공공일자리 동료지원가 사업 중간평가 및 개선방향’을 주제로 2019 장애인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정의당 이정미 국회의원실과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은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누리홀에서 ‘장애인 공공일자리 동료지원가 중간평가 및 개선방향’을 주제로 2019 장애인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정의당 이정미 국회의원실과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은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누리홀에서 ‘장애인 공공일자리 동료지원가 중간평가 및 개선방향’을 주제로 2019 장애인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고용노동부는 지난 4월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의 하나로 발표한 ‘동료지원가 사업’을 시작했다. 중증장애인 당사자인 ‘동료지원가’가 비경제활동인구(일할 능력이나 의사가 없는 사람)나 장기 실직자인 장애인을 찾아내 취업지원하도록 했다. 동료지원가는 1년에 48명의 장애인에게 각 5회 이상 상담하거나, 일자리 연결에 성공하면 수당을 받는다. 이 사업은 장애인 당사자들이 지난해 초 중증장애인이 접근할 양질의 일자리를 요구하며 장애인고용공단을 장기 점거농성한 끝에 논의가 시작됐다. 현재 120여명이 전국 11개 사업수행기관에서 동료지원가로 활동한다.

토론자들은 사업이 실적 위주로 진행되는 탓에 동료지원가와 참여자 모두 정책 효과를 보지 못한다고 입을 모았다. 사업은 동료지원가가 참여자를 한 달에 4명, 5번씩 만나 취업지원하면 1명 당 20만원씩 지급한다. 일자리 연결에 성공하면 취업연계 수당을 20만원 지급한다. 이 돈을 기본운영비 명목으로 미리 지급한 뒤, 달성하지 못하면 거둬들인다. 프로그램 운영비와 장소대여‧이동‧식사 등에 드는 비용은 지급하지 않는다.

조은별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도 “참여자 1명 당 최소 5번 만나야 20만원을 받을 수 있다보니, 실적을 채우는 데 급급하다. 사실상 5번 이상 만나지 못하게 하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송효정 피플퍼스트 서울센터 사무국장은 “올해 안에 100명을 ‘실적’으로 더 채워야 하는 상황이라, 동료지원가들은 다리 뻗고 잠이 안 온다. 매일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하는 것도 지옥같은데, 내년에도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니 이 사업이 유의미한지 의문을 갖게 된다”고 토로했다.

참여자와 동료지원가 자격 문턱도 높다. 정부는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중증장애인만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송효정 사무국장은 “일할 욕구를 가진 이들은 대부분 최저임금을 적용 받지 않는 사업장에서 일하는데, 이들은 고용보험에 가입돼 참여 자격이 없다”고 설명했다. 동료지원가도 중증장애인이자 고용보험 미가입자여야만 자격이 돼, 다른 직업활동을 하던 이들은 동료지원가가 되기 어렵다.

▲이형숙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이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누리홀에서 ‘장애인 공공일자리 동료지원가 사업 중간평가 및 개선방향’을 주제로 발제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형숙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이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누리홀에서 ‘장애인 공공일자리 동료지원가 사업 중간평가 및 개선방향’을 주제로 발제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아무리 취업지원‧연결 활동을 해도 중증장애인이 일할 자리 자체가 부족하면 도루묵이다. 부산 삶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동료지원가로 일하는 박상호씨는 “취업연계하려 해도 일자리 자체가 없어 5회 상담만 채우고 끝이 난다”고 했다.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동료지원가 최민정씨는 “중증장애인에게 맞는 취업 프로그램이 없다. 그간 20년 동안 장애인고용공단 웹사이트를 봤지만 취업 프로그램이 바뀐 것을 본 적이 없다”고 꼬집었다.

발제에 나선 이형숙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동료지원가 인건비와 기관 운영비를 ‘건당 실적’에 따르지 말고, 별도 예산을 책정하고 월급제를 실시해 안정적이고 질 높은 취업지원 활동을 하도록 해야 한다. 동료지원가가 지원해야 할 참여자 규모도 1년에 4명 이하로 대폭 축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선호 고용노동부 사무관은 토론 자리에서 “공단과 고용노동부 의견이 현장에서 나오는 목소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건수 위주 체계로는 사업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본다. 전향적인 계획이 필요하다”며 “이해당사자 전체가 모여 토론할 자리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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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2019-10-10 21:21:56
이것이 바로 수익을 모든 것의 전제로 보는 인식의 문제다. 공공기관도 수익, 일도 수익만 보며 진행하면 공공성과 공적인 부분, 취약계층 노동분야는 무시될 수밖에 없다. 우리 먼저 수익성에 대한 관점을 바꿔야 한다. 공사가 부채가 많으면 나라가 무너진다는 사람이 많은데, 반대로 공사가 수익추구만 한다면 노동 취약 계층과 공공성/안전은 철저하게 무시 될 것이다. 우리 모두 공사와 공공분야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익이 아까워 원자로를 30시간 내버려둔 도쿄전력의 결과는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