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공익 제보, 그 이후의 삶
공익 제보, 그 이후의 삶
[서평] 책 : 공익제보 하지마세요 / 인지니어스 외 3명 지음 / 들녘 펴냄

권력과 부조리에 맞서 용기를 낸 사람들, 그들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딴지일보 편집국이 7명의 공익제보자를 만났다. 재벌 갑질을 폭로한 박창진 전 대한항공 사무장부터 군납비리를 폭로한 김영수 전 해군 소령까지. 공익제보자들의 용기는 사회에 득이 됐고 조직과 사회에 변화를 가져다주면서 많은 이들이 혜택을 입었지만 정작 이들은 이런 변화에서 철저히 제외됐다. 조직 구성원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을 먼저 말하고, 가장 먼저 움직였다는 이유 만으로.

대한항공에서 탄탄대로를 달리며 승무원이란 직업을 자랑스러워했던 박창진 전 대한항공 사무장. 하지만 2014년 12월5일 땅콩 회항 사건 이후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바뀐 삶은 공익제보자가 겪어야 하는 온갖 어려움을 보여준다.

그는 능력을 인정받아 사무장에 올랐지만 ‘땅콩 회항 사건’ 이후 한순간에 회사 내 왕따가 되고, 저성과자로 찍혀 부당한 업무지시를 받고, 자신을 음해하는 찌라시까지 돌았다. 공익제보자가 철저하게 당하는 모습을 본 동료들이 공포를 느끼고 이를 학습해 이후 공익제보를 가로막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대한항공에서 근무한다. 사람들이 그렇게 비참한 일을 당하고도 왜 대한항공에서 근무하냐고 물어보면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 공익제보 하지마세요 / 인지니어스 외 3명 지음 / 들녘 펴냄
▲ 공익제보 하지마세요 / 인지니어스 외 3명 지음 / 들녘 펴냄

“지금도 저는 이 일을 좋아하고 이 일에 자부심이 많아요.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으면 어떻게 일을 하겠어요. 회사에 남아 있는 것은 주체성의 문제인거 같아요. 승무원이란 직업은 내 일이고 내 인생이었어요. 그런데 그것을 타자에 의해서 관둬야 하거나 포기하는 것은 맞지가 않다고 생각해요.”

여기 최고의 명절을 보낸 부부가 있다. 명절인데도 시댁에 가지 않았다. 이 부부는 완벽한 추석을 보냈다며 기뻐했지만 한편으로는 지금 이 시간이 지난 모진 날들 위에 핀 꽃이라는 걸 안다.

결혼 전부터 싹튼 며느리와 시어머니 갈등은 아이가 태어나면서 본격화됐다. 며느리 진영씨와 시어머니는 남편 호빈씨의 동생을 부르는 호칭부터 시작해 고양이를 키우겠다는 진영씨의 요구가 묵살되는 일까지 겪으며 서로에 불신만 늘었다. 이런 고부갈등을 1년 반동안 촬영한 호빈씨는 다큐멘터리 영화 <B급 며느리>를 만들었다. 

영화를 다 만들고 보니 정작 고부갈등이 문제가 아니었다. 개인의 삶보다 가족 내 역할을 강조하는 우리 사회의 가족주의가 문제였다. ‘대한민국 부부들 다 이렇게 산다’라는 말에 반기를 든 이 부부는 ‘며느리’가 가족 안에서 얼마나 많은 부담과 기대를 받는지 보여준다. 

기본 인간관계가 통하지 않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를 진영씨는 이렇게 말한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봉사하고,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위해서 뭔가 해줘야 한다는 의무감에 묶이는 순간 상대의 존재 자체가 부담인 거죠. 그리고 거기서부터 어머니와 자식의 관계, 부부의 관계가 다 어그러지는 거예요. 저희 부부가 겪었던 것처럼.”

이들의 이야기는 그저 한 가족의 이야기로 보이지만 며느리가 된 한국 부부가 겪는 불편한 모습을 대변한다. 고부갈등 사이에서 어찌할 바 모르는 남편, 서로를 답답해하는 며느리와 시어머니, 이 가족 이야기는 개인에게 역할만 강조하는 사회구조의 치부를 보여준다. 

흔히 ‘꿈의 직장’이라 불리는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이른바 국민 세금, 나랏돈으로 운영되는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는 세금이 개인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부정한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 일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던 이재일씨는 문제를 드러내면 ‘자정’될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으로 감사실에 제보했지만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따돌림과 직장 괴롭힘이었다. ‘꿈의 직장’이었던 회사에서의 따돌림과 괴롭힘은 이씨에게 ‘악몽의 직장’이 돼버렸고, 일을 주지 않고 없는 사람 취급하는 회사의 압박은 퇴직 혹은 해고라는 결론으로 내몰았다. 현재 서울시 공익제보지원위원회 위원으로 활동중인 이재일씨는 그때로 돌아가도 다시 제보할 것인지 묻자 이렇게 말했다. 

“하긴 할 거예요. 대신 방법을 좀 달리 하겠죠. 그때는 너무 어려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치기 어린 정의감이 있었어요. 아닌 건 아니라고 정확하게 말해야 하지만, 지금은 말을 하되 그렇게까진 대놓고 안하겠죠. 하하.”

이 기사를 후원합니다.


이 기사는 논쟁 중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바람 2019-10-13 19:20:58
누군가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사회가 조금씩 변하는 게 참으로 씁쓸하다. 이런 시스템을 만든 한 사람(국회의원을 뽑은)으로서, 그대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하고 존경을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