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방송작가유니온)가 성명을 내면서 MBC 보도국 시사프로그램인 ‘2시 뉴스외전(뉴스외전)’에서 일하던 A작가가 평소처럼 출근해 회의에 참석했다가 일방적으로 계약해지 당한 사실이 알려졌다. 다음날 MBC 쪽에선 “계약서에 7일 전에 예고하고 계약해지한다는 조항이 있고, 4주정도 유예기간을 정해 통보했다”며 출근 당일 해지를 통보한 게 아니라고 반박했다. 

MBC는 방송작가유니온과 ‘계약해지통보 시점’에서 전선(戰線)을 그었다. 계약서 문구를 따져보고 MBC가 잘못한 게 있다면 다음부터 계약서를 잘 지키면 되고, 그렇지 않다면 무리하게 계약 이상을 요구하는 작가 개인의 문제가 된다. 

지난달 16일 계약해지를 통보받은 A작가는 다음날인 17일까지 근무한 뒤 24일부터 서울 상암동 MBC 앞에서 점심시간에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5일 1인 시위를 마친 A작가를 만났다. 

▲ 지난 5일 서울 상암동 MBC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A작가. 또 다른 방송작가가 연대하며 1인 시위에 동참하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 지난 5일 서울 상암동 MBC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A작가. 또 다른 방송작가가 연대하며 1인 시위에 동참하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A작가가 쏟아내는 질문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이 사건의 본질이 뭘까요?”, “박창진 사무장은 문제제기한 뒤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데 왜 우린 못 돌아갈까요?”, “한 달 전에 계약해지를 알려줬다면 문제가 없나요?” 

A작가는 그날을 복기했다. 

“추석연휴 마지막 날인 일요일(9월15일) ‘내일 회의하자’는 카톡이 왔어요. 아이템을 준비해 가서 월요일(9월16일) 오전 8시40분경 회의를 시작했어요. 뉴스외전 팀장, 앵커, 차장, 기자 둘, 그리고 낯선 분이 한 분 계셨죠. 인사도 없이 진행이 됐죠. ‘MBC에 인사발령이 났나’ 생각했어요. 발제한 아이템 중 두 개가 선택돼서 기자한테 하나 배정되고 나머지는 내일하자고 했어요. 그러다 누가 (처음 본 이에게) ‘무슨 작가님’ 하길래 그 분이 작가인 걸 알게 됐어요. 사실 제가 섭외도 하고 인력이 부족해서 작가진이 충원되는 줄 알았죠.”

이때까지도 그는 잘릴 줄 몰랐다. 

“‘A작가님은 저랑 말씀 나누시죠’ 이상한 느낌을 받은 거죠. 옆방에서 (팀장과) 둘이 얘기를 했어요. 오늘 개편인데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죠. 저는 그날 아이템이 없었어요. (팀장은) 개편을 맞아 인력구성을 바꿨는데 A작가님과는 여기까지 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되게 많이 들어봤던 멘트죠.”   

‘계약해지 통보’ 이후에 A작가가 부당하다는 뜻을 표현하자, MBC는 A작가가 작성한 계약서에 따라 7일, 혹은 KBS나 SBS처럼 4주의 유예시간을 주겠다는 뜻을 밝혔다. A작가는 “이미 대체작가를 뽑아 회의에 들어와 있는 상황에서 둘이 함께 일할 순 없었다”고 말했다. 발제한 아이템이 다음날(17일,화) 잡혀있어 A작가는 통보 다음날까지 일했다.

A작가가 계약해지를 통보받은 날이자 새 작가가 회의에 들어온 지난달 16일은 개편을 시작하는 날이었다. 동료작가들이 함께 문제제기에 나서자 돌아온 대답은 ‘얼마의 유예기간을 더 주면 되겠느냐’였다고 그는 전했다. “‘(계약해지) 과정에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는데 ‘문제가 없다’는 식의 대답이 돌아왔다. ‘본질은 거기에 있지 않다’고 하고 나왔다.”

A작가는 “일할 때는 동료작가, 자를 때는 부품취급”이란 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이번 일에 항의하는 뜻으로 뉴스외전에서 경제코너를 담당하던 동료작가가 집필을 보이콧하고 있고, 고정 출연진인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은 지난달 23일 출연중단 의사를 밝혔다. 7일에는 대한항공 갑질에 문제제기했던 박창진 정의당 국민의노동조합특별위원장이 A작가와 1인 시위를 함께했다. 

▲ MBC '2시 뉴스외전'에 출연하던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이 작성한 일방적인 작가 계약해지 통보에 항의하는 내용의 손글씨. 사진=방송작가유니온
▲ MBC '2시 뉴스외전'에 출연하던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이 작성한 일방적인 작가 계약해지 통보에 항의하는 내용의 손글씨. 사진=방송작가유니온

 

▲ 박창진 정의당 국민의노동조합특별위원회 위원장(왼쪽)이 최근 MBC 보도국 시사프로그램에서 일하다 계약해지 통보를 받은 방송작가와 함께 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본사 앞에서 피켓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 박창진 정의당 국민의노동조합특별위원회 위원장(왼쪽)이 최근 MBC 보도국 시사프로그램에서 일하다 계약해지 통보를 받은 방송작가와 함께 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본사 앞에서 피켓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최근 MBC 쪽과 A작가 쪽은 몇 번 더 대화를 진행했다. A작가 쪽은 책임자 사과·재발방지책 마련, 즉각 업무복귀, 기존계약서 폐기와 새 계약서 협의 등을 요구했다. MBC 쪽에선 사과의 뜻을 밝혔다. A작가가 보도국으로는 돌아갈 수 없지만 대신 시사교양국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게 MBC 입장이라고 전했다. 

MBC 뉴스외전 관계자는 7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회사(MBC)에서 작가들과 협상을 하고 있다”며 “일일이 옳고 그름을 얘기하는 건 옳지 않는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MBC의 이번 제안은 그간 방송사 태도와 비교할 때 진정성 있는 안이라는 게 A작가 쪽의 평가다. 그럼에도 부당함을 지적한 이가 모든 책임을 지듯 제 자리로 돌아갈 수 없는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는 평가가 공존했다. A작가는 “이미 기존 팀들이 있는데 갑자기 담당PD와 협의도 없이 (내가) 들어가면 누를 끼칠 수도 있어 현실적으로 (MBC 제안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1인 시위를 언제까지 하느냐’는 물음에 A작가는 “언제쯤 부품이 아닌 사람으로 볼까요”라고 답하며 덧붙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이렇게 열심히 했나 싶어요. (20여년 작가생활 중) 이번에 휴가를 처음 써봤어요. 미리 일 끝내놓고. 이런 노동조건이라면 방송작가라는 직군이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관련기사 : ‘땅콩회항’ 공익제보자 “MBC 방송작가 갑질계약 개선”]

 

MBC 작가 계약서는 공정한가?

MBC가 ‘2시 뉴스외전’ 작가와 작성한 계약서를 보면 작가를 자유로운 프리랜서라고 보기 어렵다. 작가에게 불리한 조항도 눈에 띈다. 

‘프리랜서 업무위임계약서(작가)’란 이름의 MBC작가 계약서를 보면 “‘을(작가)’의 업무수행과 관련된 통상적 경비는 ‘을’이 부담(5조1항)”하고 “자유직업 소득자에 대한 제세금은 우선 공제(5조4항)”한다. 형식상 근로계약(지휘감독)관계가 아니라는 걸 알리는 조항이다.  

“갑(MBC)은 을에게 업무수행 시간 및 장소에 대해 협의할 수 있다(6조1항)”고 했고 6조4항에선 “을은 프로그램 제작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갑의 다른 프로그램 등에 참여할 수 있다”면서 “이 경우 을은 사전에 프로그램 담당자에게 해당 사실을 통보해야 한다”고 했다. 

A작가는 “보안 때문에 일하려면 MBC 사무실 데스크톱에 로그인해서 특정 프로그램으로 일을 해 현실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협의할 수 없다”며 “진짜 프리랜서면 사전에 통보해야 하느냐”고 지적했다. 

A작가 계약기간은 1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2조)다. A작가는 지난해 여름부터 MBC에서 일했는데 당시 계약서는 그때부터 지난해 12월31일까지였다. 계약서 8조를 보면 계약기간 종료 전이라도 프로그램이 폐지된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을이 질병·사고 등 부득이한 사유로 출연이 불가능한 경우에도 갑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계약해지는 7일전에 통보하도록 했다. 

문화체육관광부·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 6월 발표한 ‘방송 분야 표준계약서 사용지침’을 보면 표준계약서엔 “계약기간은 개편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당사자 간 합의에 의해 변경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또 표준계약서에선 계약불이행 등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 14일 이내 서면으로 상대에게 알리고 그래도 상대가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프로그램 개편’은 이 정당한 사유에 포함하지 않았다. 표준계약서 사용지침에선 잘못된 예로 “개편 등 사정이 있는 경우 계약만료일 이전에라도 계약이 즉시 종료될 수 있다”를 들고 있다. 

MBC엔 ‘합의’한다는 표준계약서상 조항이 없지만 SBS는 프로그램 개편 시 4주전에 작가에게 알리고 ‘합의’하에 폐지여부를 결정한다. A작가는 “계약서에서 작가와 ‘합의’한다고 돼있어도 현실에서 합의하지 않을 수 있는 작가가 있겠느냐”며 “그 정도 강력한 문구를 넣어도 현실에선 강하게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위약벌·손해배상 책임이 작가만 있는 규정도 논란이다. 9조를 보면 을이 정당한 사유 없이 계약을 위반할 경우 갑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고 을이 갑에게 위약벌 200만원을 지급한다. 또 을이 갑에게 손해를 발생했을 경우 을이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하지만 갑의 위약벌이나 손해배상은 규정하지 않았다. 표준계약서에선 귀책사유가 있는 쪽에서 손해를 배상하도록 했다. 

MBC 작가계약서 10조에선 저작권(2차 저작물·작성권 등 포함)을 방송사에게 양도한 걸로 규정해 작가는 별도의 대가를 청구할 수 없다. 11조를 보면 제3자의 저작권 침해 등으로 분쟁이 발생하면 작가 책임 하에 해결하고 방송사가 변호사 비용 등을 지출하면 지출액 전액을 작가가 방송사에 배상해야 한다. 이 역시 작가들에게 불리한 조항으로 지적받는다. 

표준계약서에는 저작권법을 따르되 원고료·제작기여도 등을 고려해 당사자가 협의한다고 규정했다. 방송사나 제작사가 작가 동의 없이 저작물을 변경할 수 없도록 정했다. 프로그램의 2차이용의 경우 작가에게 사용료를 지급하도록 규정했다.  

이에 방송작가유니온은 MBC에 계약서 수정을 요구하며 협의하자고 제안했다. 이들에 따르면 MBC 측은 ‘MBC구성작가협의회와 계약서 수정을 협의하고 있고, 노조와 협의는 어려운 상황’이라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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