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찾기유니온 ‘권유하다’가 오는 9일 출범한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권리찾기 당사자운동 단체다.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조직해 준비모임 대표를 맡았다.

한상균 권유하다(준) 대표는 지난 4일 “위원장 자리를 떠나니 절망에 내몰린 노동자 현실이 더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그는 2015년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민중총궐기 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뒤 2년 6개월을 감옥에서 지냈다. 그 동안 ‘천원의 혁명’이란 이름의 당사자운동을 떠올렸다. 노동자로 권리를 빼앗긴 미조직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기부로 권리찾기 활동에 나서는 단체다. 지난 5월 가석방으로 출소한 뒤 노동현장을 다니며 13명의 동료를 모았고, 이를 ‘권유하다’로 발전시켰다.

한상균 대표는 “세상과 직접교섭”이라는 슬로건을 강조했다. “홍콩의 시민들이 송환법 철회를 이끌어낸 것은 정부와 테이블에 마주 앉아서가 아니다. 사업주나 정부에 요청하는 것이 아닌, 노동자 당사자가 모여 당연한 권리를 명령으로 만들어낸다는 계획이다.” 서울 영등포구 한 커피숍에서 만난 그는 주변에 있는 사물들을 가리키고 이용해가며 권유하다 활동 계획을 설명했다.

▲한상균 권유하다(준) 대표. 사진=김예리 기자
▲한상균 권유하다(준) 대표. 사진=김예리 기자

-권유하다가 5인 미만 사업장을 중심에 놓은 이유는 무엇이고, 어떤 활동을 하나.

“5인미만 사업장에서 모순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다. 노조 조직률이 가장 낮은 사업장이기도 하다. 5인 미만 사업장은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에서 빠진다. 안 그래도 가장 힘들게 사는 노동자에게 ‘2등 국민으로 살라’는 말이다.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인데, ‘그래야 경제가 돌아간다’는 담합이 있었고, 이는 사회 상식이 됐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이 ‘합법 테두리’를 악용한다. 직원이 6명이면 4명은 고용계약 체결하고 2명은 임시직으로 돌려 연장근로수당 의무를 피해 가는 식이다. 5인 미만 업장 노동자들은 그래서 고용 기간이 짧고 자주 이직한다. 불합리를 피해 일터를 옮기면 또 같은 곳이다. 한편 5인 미만 사업장은 업주끼리 담합해 4대보험 가입을 피해간다. 사업주가 이런 것조차 신경 쓰기 싫으면 특수고용 계약을 체결한다. 노동자만 3.3% 세금을 내고, 노후보장 없이 절망적 상황에 내몰린다. 정부는 외면하고 자본은 확장한다. 이에 전면 문제 제기하기 위해 5인 미만 사업장에 주목했다.

노동자들의 체념을 깨려면 거창한 구호 가지곤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서류상 회사를 쪼개 근로기준법을 피해가는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고발센터로 활동을 시작할 계획이다. 근로계약서 교부 의무를 알리는 활동도 하려 한다. 이후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임시직과 4대보험 4각지대, 특수고용 노동자 권리로 활동을 넓힐 생각이다.”

지난 3월 통계청에 따르면 5인 미만 사업장의 종사자는 580만 명에 달한다. 무급 가족종사자를 뺀 임금노동자는 358만여명이다(한국노동연구원 2016년 조사). 전체 임금노동자 1988만 명의 20% 정도다. 특히 도소매업과 음식·숙박업, 부동산업 등은 대다수가 5인 미만 업장으로 이뤄졌다. 이들의 월급은 평균 138만원으로, 10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 급여인 279만원의 절반에 그친다.

근로기준법은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한다”고 명시하고, 시행령에 세부 내용을 맡겼다. 전체 노동자의 20%가량이 이른바 ‘노동권의 최소 기준’에서 제외란 얘기다. 이들은 산업안전보건법도 적용받지 못한다. 헌법재판소는 1999년과 지난 4월 잇따라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제외’ 조항에 합헌 결정했다. 사업주의 지불능력이 모자라고, 정부의 근로감독 행정 부담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 5인 미만 노동자들이 뜻을 모아 사업주를 상대하는 모습이 상상이 안 된다.

“사업주 한 명을 상대하는 일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법을 악용하는 업주에 계속 소송 거는 일과 다르지 않다. 문제를 사회 전반에 드러내고, ‘이 정도를 기본으로 지키지 않으면 사용자가 될 수 없다’고 인식을 바꾸는 게 목표다. 권유하다의 핵심은 ‘당사자가 명령을 만든다’이다. 정부와 기업에 요구하고 청하지 않고, 우리 말에 귀를 기울이는 권력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최근 서초동에 200만, 광화문 앞에 300만 명이 모였다고 하지만, 이들의 개혁 요구 안에 노동자의 삶은 없다.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만나는 것이 가장 무섭다고 한다. 권리를 빼앗긴 1750만 명 노동자들이 한 번에 모이지 못해도 한명 한명이 소중하다. 국회 의석을 다수 바꾼다고 해서 가진 자를 위한 거수기로 전락하고, 정부는 대법원까지 도로공사 노동자들이 불법파견이라고 선고한 데 눈 깜짝하지 않는다. 반면 홍콩 시민들이 송환법 철회를 이끌어내기까지 정부 수반과 테이블에 마주앉은 적 없다. 그래서 “세상과 교섭”이라는 화두를 꺼냈다. 결국 우리가 직접 나서야 한다는 의미에서 권유하다는 당사자 운동이자, 직접권리행동이다.”

- ‘권유하다’를 어떻게 처음 떠올렸나.

“감옥에 있는 동안 생각했다.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1년만 있고 나머지 2년은 감옥에서 지냈다. 위원장 자리를 떠나니 현실이 더 잘 보였다. 위원장은 주로 조직된 노동자들의 힘으로 노동자 이익을 대변하는 조직의 장이다. 그러나 여전히 손이 닿지 않는 곳이 많고, 비정규직은 더 늘어났다.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해 평생 노동자로 살아갈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감옥에서 임기가 끝났지만, 그 뒤 무엇을 할까 생각했다. 조직과 미조직 손 잡아 한편이 돼야 하고, 그 과정에서 인터넷이란 열린 공간을 활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위원장 자리를 떠나 절망에 내몰린 노동자가 더 잘 보였다는 건 무슨 말인가.

“위원장일 땐 당장 박근혜 정권이 노동개악을 밀어붙이고 민주노총을 적으로 규정해 공격하는 데 맞서야 했다. 가장 힘든 노동자를 위한 민주노총이 돼야 한다 생각하면서도 챙기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한편 감옥에서 노동자였다가 죄를 짓고 들어온 사람들을 만났다. 대체로 한 가지 얘길 한다. ‘난 1년에도 수십 번 해고 당하고 노조 만들 엄두를 못 내는데, 위원장처럼 투쟁을 외치는 모습이 부러웠다. 최저임금 인상을 위해 싸워줘 고맙긴 했지만, 내가 못하는 걸 너희는 하니 오히려 미워지고 적대하게 됐다”고 했다. 그 차이가 뭘까. ‘조합원’으로 불리는 게 인간의 존엄이라고 생각한다. 사회가 해고를 일상화하고 외주화 착취를 정당화해 젊은 노동자를 범죄로 내모는 모습도 봤다. ‘나가면 일하며 살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는 그들의 말을 들으며 위원장으로 부끄러웠다.”

▲한상균 권유하다(준) 대표. 사진=김예리 기자
▲한상균 권유하다(준) 대표. 사진=김예리 기자

-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한다고 했는데, 왜인가.

“노동자란 이름을 최초로 찾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다고 봤다. ‘내가 노동자 한상균’이라고 실명을 말하고 플랫폼에 들어올 사람은 밖에서도 노조에 들어갈 것이다. 한편 기존에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은 익명으로나마 ‘내가 노동자 아무개’임을 확인하는 것만으로 어마어마한 존엄의 차이가 생긴다고 본다. 같은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이 모이면 결국 그 힘들이 지역 중심으로 모이게 될 것 같다. 미국의 최저임금 인상 투쟁, 스페인의 포데모스, 프랑스의 노란조끼 등 해외의 경우를 쭉 봤다. 직접행동이 사회 모순을 드러냈다가도 곧 사라지는 경우가 있고, 정치적 기반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운동이 지속되는 곳은 온-오프라인이 협업을 이뤘다는 특징이 있었다.”

- 민주노총의 미조직 비정규사업과 어떤 점이 다른가.

“민주노총도 산별과 함께 열심히 미조직 비정규사업을 하고, 100만 조합원을 훌쩍 넘어 확대하고 있다. 지역에서 비정규센터, 공단 사업, 이주노동자 조직화까지 꾸준히 활동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당장 노조로 조직화할 수 없는 노동자들이 너무 많고 그 수가 줄어들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이는 민주노총 문턱의 문제도 아니다. 작은 사업장에 있다가 힘든 상황이 극에 치달아 이리저리 찾아가 보고 해결하지 못한 사람들이 분노해 마지막으로 택하는 게 노조다. 그런데도 이마저 포기한 이들, 조직하지 않은 노동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노동존중사회’를 내건 문재인 정부에서 반노동 정책과 수사구가 나온다. 언론의 반민주노총 프레임도 여전하다.

“대선 당시부터 드러날 것이라고 봤다. 박근혜 정권은 민주노총과 전교조, 조직된 노동자들을 ‘적’으로 규정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입으론 노동친화를 말했지만 2년이 지난 지금 재벌의 편에서 그들이 한국 경제를 끌고 가게 하려는 것임이 드러났다. 문재인 정부가 촛불을 내걸고 당선했지만, ‘박근혜 대통령보다 잘할 거다’란 판단에서지 노선과 정책으로 낱낱이 검증받았다 보진 않는다. 태생적 한계이고, 오히려 당연하다.

‘말로만 노동존중하고 실현하지 않느냐’는 비판이나 방어가 아니라 반격을 준비해야 한다. 이 정부가 친노동인지 판단을 다시 구할 필요는 없다. 차고 넘칠 정도로 반노동 정권의 길을 스스로 가고 있다. 도로공사 여성 노동자들이 웃통을 벗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는데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반면 박근혜와 이명박 정부도 하지 못한 노동개악안을 내놓고 있다. 노동자 편에 설 권력을 세울 준비를 하지 않으면 계급 문제는 또다시 ‘최악과 차악’ 구도에 밀려 5년 전 논쟁을 반복할 것이다. 그동안 비정규직과 간접고용, 외주화 천국이 되고 무권리 노동자가 늘어나는 상황은 뻔하다.”

권유하다는 오는 9일 2시 서울 용산역 부근 용산전자랜드 신관 랜드홀에서 창립발기인대회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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