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형일자리를 모델삼아 전국에 지역 상생형 일자리가 우후죽순 늘어나지만 정작 핵심인 ‘상생 실현’이 빠져있다는 비판이 높다. 통상 지자체의 기업 투자 유치와 다를 바 없지만 정부 지원금이 추가로 투입돼, 기업만 특혜를 본단 지적도 있다. 

전국 9개 지자체에 확산된 노사 상생형 지역 일자리는 ‘공정하고 평등한 일자리 창출을 사회적 대화로 모색하기 위해’ 추진된 광주형일자리가 원조다. 정부는 지난 1월 광주시와 현대차가 투자협약을 체결하자 2월 '상생형 지역일자리 모델 확산방안'을 꺼냈다. 광주시처럼 적정 노동조건, 노사 및 원·하청 상생 등의 내용을 담은 노·사·민·정 상생협약을 체결하고 기업 투자를 이끌면, 공모로 지자체를 선정해 ‘맞춤형 패키지’ 지원을 해주겠단 내용이다. 기업 투자 보조금 지원 및 세금 감면, 근로자 복지 지원 확충 등이 세부 내용이다. 

9개 지자체는 강원·경남·경주·구미·군산·울산·익산·전남·충주 등이다. 고용노동부 노사상생형 지역일자리 컨설팅사업 대상 지자체로 선정된 곳이다. 이 중에서 구미, 경남(밀양), 강원 등은 노사민정 협약을 체결해 가장 앞서 가고 있다. 군산도 노사민정 협약 체결만 앞두고 최종 조율을 보고 있다. 

▲지역 노사 상생형 일자리 관련 기사 헤드라인. 디자인=이우림 기자
▲지역 노사 상생형 일자리 관련 기사 헤드라인. 디자인=이우림 기자

구미형 일자리 투자협약은 7월25일 타결됐다. LG화학은 5000억원을 투자해 2020~2024년 구미국가산업 5단지 6만여㎡ 부지에 전기자동차 2차전지의 핵심 부품인 양극재 공장을 짓기로 했다. 1000여명 규모의 고용창출이 예상된다. 구미시와 경북도는 부지를 장기 무상임대해주고 수백억원의 보조금과 세제혜택을 준다. 구미시와 정부는 애초 국외에 투자하려던 LG화학을 설득해 국내 투자를 이끌었다. 

강원형과 밀양형 일자리는 중소기업 기반이다. 강원형일자리는 완성차 제조기업 디피코와 협력부품 8개사 등 9개 기업이 2023년까지 661억원을 투자해 본사를 이전하거나 공장을 건설해, 올해 연말 전기차 100여대 출시를 시작으로 2023년까지 누적 4만대 생산을 목표로 한다. 580명 신규 고용을 계획한다. 밀양형일자리는 밀양하남기계소재공단에 경남 뿌리산업인 주물기업 30여개를 집단 이전시켜 스마트공장화 하면서 500개 이상의 일자리를 만드는 게 골자다. 지난 6월10일 협약식을 치렀고 기업은 설비에 3500억원 이상을 투자할 거라 밝혔다.

문제는 노사민정 상생협약의 질이다. 국내 투자를 진작시켜 지역의 고질적인 일자리 부족 문제를 개선하는 의의가 있지만, 그 이상의 차별점은 없어 기존 기업 투자와 다르지 않은 모양새다. 노사민정 상생협약은 사회적 대화 틀만 갖추기 위한 형식일 뿐 심도깊은 논의나 노동계 실질적 참여가 없었다는 평가다. 

구미시 노사민정 협약안에 따르면 노동계는 투자의 대가로 ‘적정 근로조건’과 ‘생산성 향상 노력’, ‘노사분규 최소화’ 등에 합의했다. 기업은 고용·투자 확대와 대기업․중소기업 상생, 고용안정 보장 등을 약속했다. 노사 상생이나 원·하청 상생을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지 구체화된 새로운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밀양형·강원형도 마찬가지다. 밀양 지역 노동계는 노사민정 상생협약으로 숙련향상 훈련 참여 등 생산성 향상에 노력하고, 신규직원의 현장직무교육 협조하며, 업체별 노사협의 제도화에 협력한다고 약속했다. 기업 측은 3500억원 투자해 친환경 산업단지를 만들고 지역주민상생기금을 조성한다는 조건이다. 

강원형일자리도 적정 임금, 탄력근로제, 경영이 안정될 때까지 단체협약 유보 등이 노동계 협약 내용이다. 적정 임금은 임금 하향화 논란이 촉발될 수 있고 탄력근로제 경우 노동 유연화가 쟁점이다. 단체협약 유보는 노조 단체교섭 권한을 제한해 그 자체로 논란이다. 강원지역 노동계가 이를 두고 사측과 대등히 협의할 수 있는진 미지수다. 이에 반해 사측 협약은 신규 투자, 지역주민 우선 채용 및 지역 공헌사업 추진, 정규직 채용과 정년 보장 등이다. 

상생협약안 모두 지역형 일자리 확대방안이 나온 뒤 6개월 내 마련됐다. 이에 반해 광주시는 지난 4년 간 예외없는 공공부문 비정규직화, 청소년노동인권센터 설립 등 지자체 고유의 노동정책을 수립·집행했고 ‘더 나은 일자리위원회 TF’ 등을 통해 △노사책임경영 △적정(연대)임금 △적정노동시간 △원·하청 상생관계란 4대 원칙을 세웠다. 이마저 실제 협약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노동계에 불리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들 지자체는 투자협약문이나 상생협약안 전문도 비공개한다. 구미시청 관계자는 “노사민정 위원 개개인이 협약한 것이라 지방정부가 공개를 결정할 권한이 없다”거나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할 부분이 아니고, 자칫 공개될 시 공격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답을 내놨다. 

▲광주 빛그린산단 인근 전경. 사진=김용욱 기자
▲광주 빛그린산단 인근 전경. 사진=김용욱 기자

전북 군산은 온도차가 있다. 민주노총은 상생형일자리 논의에 참여하지 않는 방침이지만 군산만 예외적으로 지역 민주노총 관계자가 참여한다. 이 관계자는 2017년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가동 중단, 2018년 GM군산공장 폐쇄 등에 따른 지역 경제 붕괴를 우려해 중앙 방침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사 상생, 원하청 상생 가치 논의도 가장 진전됐다는 평가다. 군산형 일자리는 에디슨모터스 등 4개 기업과 주식회사 명신이 투자협약을 체결해 구GM 군산공장 등 군산·새만금 산단 내 유휴 공장을 활용해 내연 기관차에서 전기차로 산업 재생을 하는 일자리 창출 시도다. 참여기업 4개(명신 제외)는 공동교섭으로 임금을 협상하거나 노동이사제를 참관 수준에서 우선 도입하며 우리사주제, 참여 기업들이 소속 노동자 전체를 대상으로 ‘공동복지기금’을 조성하는 시도, 하청업체와 수익공유(5:5) 등이 논의되고 있다.

내부 상황을 아는 한 인사는 "군산형이 그나마 낫다고 해도 사회적 대화 기구에서 정부·지자체가 사측에 힘을 실어 줄 가능성은 더 크다"며 "공동교섭, 노동이사 등 상생 가치 실현이 반드시 되도록 노동계가 끝까지 책임지고 가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았다"고 말했다.

채준호 전북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와 관련 “지역 노사민정 주체들이 사회적 대화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방향은 긍정적이나 ‘협약서’ 중심의 조급증은 탈피해야 한다”며 “광주 경우 3~4년 논의를 해 협약이 마련됐다. 노사민정 주체들의 고민이 무르익어 결과물로 오롯이 나올 때 정부가 지원을 허가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광주형 일자리 관련해 지역 시민단체와 대책위를 구성해 활동하는 나경채 정의당 광주시당 위원장은 “내년이 총선 시즌인데, 아마 일자리 관련 정책이 꽤 많이 나올 것이고 거의 모든 지역에서 ‘○○형 일자리’ 등이 성과나 정책으로 나올 것”이라며 “광주형일자리도 이상대로 가지 못해 문제가 생기는데 애초 이상도 없는 형태에서 만들어지면 더 문제 소지가 많을 수 있다. 시민사회나 노동계가 이게 어떻게 진행돼야 하고, 현실적으로 무엇이 문제인지, 지자체나 정부가 이를 어떻게 할지 견제해야 이 정책이 잘못된 결과로 가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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