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MBC에서 고용 성차별을 호소하는 유지은 아나운서가 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 나와 본인의 이야기를 직접 증언했다. 반면 대전MBC는 이날 ‘대전MBC 흠집내기’ 목적이 아니라면 고용노동부나 법원 판단을 받으라며 허위 사실 주장에 근거한 이미지 훼손 행위를 한 개인이나 단체에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유지은 아나운서는 이날 이상돈 바른미래당 의원이 신청한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했다. 앞서 이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 때 지역민방 TJB 대전방송의 전직 아나운서를 참고인으로 불러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여성 비정규직 아나운서들의 현실을 알렸다. 이 의원은 이날 유 아나운서에게 “남성 아나운서들은 대개 정규직인데 여성 아나운서들은 상당기간 프리랜서라는 미명하에 고용상 성차별을 심각하게 당하고 있다”며 “실제 정규직 아나운서와 똑같이, 경우에 따라 더 장시간 일하지만 사실상 차별이 있었다는 것을 상세하게 말씀해 달라”는 말로 질의를 시작했다.

유 아나운서는 “저는 무늬만 프리랜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며 “최근 1년간 근무시간을 보면 오전 10시30분 출근해서 밤 9시30분 퇴근, 새벽 6시부터 밤 9시30분까지 하루 15시간 이상 근무를 3개월 간 한 적도 있다. 당시 저를 안타깝게 생각한 시청자 여러분께서 인터넷에 ‘대전MBC 노예’ 등의 글을 인터넷에 올려주셔서 보도국장에게 보고된 적이 있을 정도로 말도 안 되는 근무시간이었다”고 전했다. 정규직과 동일하게 주말 뉴스당직을 담당했고, 법정공휴일이나 연휴에도 근무했고, 사원증이 있었고 자리도 마련돼 있었다며 상시적 업무지시를 받으며 아나운서 주업무인 방송업무를 수행했다는 것이다. 대전MBC에서 일해 온 6년 동안 단 9일, 그마저도 무급휴가를 다녀왔다고도 했다.

▲ 8월16일 대전MBC 뉴스데스크 갈무리.
▲ 8월16일 대전MBC 뉴스데스크 갈무리.

그는 대전MBC가 그간 여성 아나운서를 2년 계약직으로 채용하다 본인이 입사할 때부터 프리랜서로 채용했으나, 기존 계약직 아나운서 업무에 더해 더 많은 업무까지 맡았다고 밝혔다. “‘프리랜서’라면 상호간 스케줄을 조정할 수 있어야 하지만 회사 업무배정은 모두 통보식으로 이뤄졌고 무조건 따라야 했다. ‘대타’하라면 해야 했고 주말에 회사 주최 행사에 나가라면 나가야 했다. 메이크업부터 뉴스 톤, ‘스탠바이’ 시간까지 상세한 업무지시를 받았고 회의에도 참여했다. 심지어 외부행사하겠다고 보고했을 때 회사 뉴스를 해야 한다고 해서 행사를 거절한 적도 있다. 프리랜서라면서 돈을 안 주고 회사 내 행사 사회를보게 하거나 프로그램 편집, 보이는 라디오 페이지 관리, 더빙도 무보수였다”며 “저를 보고 김성주, 전현무 아나운서처럼 ‘프리랜서’라고 하던데 한 방송국에서 6년간 종속적으로 일한 제가 어떻게 그분들과 같은 프리랜서라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유 아나운서는 전했다.

▲ 유지은 대전MBC 아나운서가 4일 세종시 고용노동부청사에서 진행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노동부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증언하고 있다.  사진제공=길바닥 저널리스트.
▲ 유지은 대전MBC 아나운서가 4일 세종시 고용노동부청사에서 진행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노동부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증언하고 있다. 사진제공=길바닥 저널리스트.

유 아나운서는 지난해 대전MBC가 남성 아나운서만을 정규직으로 신입 채용한 이후 국가인권위원회에 남녀채용차별 진정서를 냈는데, 이후 프로그램 하차 통보가 이어졌다고 했다. 이 의원이 “근로기준법 위반 문제도 있을 거 같다. 이런 문제를 참고인이 제기하니까 프로그램을 아예 폐지하기도 했는데 참고인을 의식해서 그런 게 아닌가 생각한 적 있느냐”고 묻자 유 아나운서는 “인권위 진정을 넣고나서 개편이 연속적으로 이뤄졌다. 프로그램 폐지, 하차 통보가 이어졌다. 뉴스데스크 하차 통보는 생방송 직전에 받았다”며 “지금은 한 개 프로그램만 남아서 월 100만원대 급여를 받고 있다. 너무 억울해 보도국장을 찾아가 하차 이유를 물었지만 ‘이유를 물으면 안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유 아나운서는 “여성 아나운서만을 계속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많은 분들이 프리랜서로 입사해서 왜 정규직을 요구하느냐고 묻는데 ‘꼼수’로 정규직 시켜달라는 게 아니라 애초 대전MBC에는 여성 아나운서가 응시할 시험 자체가 없었다는 부분을 주의깊게 봐주셨으면 좋겠다. 인권위 진정까지 이르게 된 건 남성 아나운서만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면서부터다. 저와 실질적으로 차이나는 월 급여, 유급휴가 등을 보면서 상실감·박탈감을 느꼈다. 그전에 제가 일했던 방송국 한 곳에서도 남성 정규직만 채용한 일이 있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게 정말 문제”라는 것이다. 이어 “제가 이렇게 목소리 내고 있는 건 대전MBC에서 정말 더 열심히 일하기 위해서다. 20여년 동안 일반직과 동일 업무한 비정규직 카메라기자들은 급여·수당 차별을 받았다. 2012년부터 기본급조차 올려주지 않아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내부 문제는 곪을 대로 곪아가고 있는데 회사는 비정규직, 외부 노동자 문제를 보도해 상 받고 자랑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 외부 비정규직 문제 취재하고 전달한 건 현재 고통받는 비정규직 카메라기자들과 비정규직 앵커였던 저였다”고 지적했다.

▲ 이상돈 바른미래당 의원 4일 질의 자료.
▲ 이상돈 바른미래당 의원 4일 질의 자료.

끝으로 유 아나운서는 “고용노동부에도 부탁드린다. 방송사는 방송사 스스로 저지른 문제에 대해 전혀 보도하지 않는다. 가장 힘들었던 건 방송국에서 일어난 일을 어디서 제보해야 하느냐는 거였다. 고용노동부에서 더 면밀히 지속적으로 들여다봐주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사를 하더라도 여성아나운서의 고용근로 형태 특수성을 좀 더 세심하게 살펴서 저처럼 고통받는 근로자가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확실한 조치를 취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지난 6월 이후 유 아나운서 사례가 알려진 뒤 대전MBC 시청자 게시판에는 대전MBC 사측의 시정을 촉구하는 게시글들이 이어졌다. ‘대전MBC는 불평등한 고용관계를 개선하십시오’, ‘여자 아나운서 차별이 쇄신과 개편입니까? 명확한 답변을 요구합니다’, ‘신원식 사장은 여성 아나운서에 대한 보복을 그만두시오’ 등의 글들이 4일 오후 기준 세 페이지 가까이 이르렀다. 대전MBC 사측은 이날 해당 게시판에 ‘프리랜서 아나운서 보도에 대한 대전MBC 입장’이란 제목의 글을 올려 “프리랜서 여성 아나운서들이 언론플레이를 통한 대전MBC 흠집내기가 목적이 아니라면 고용노동부나 법원을 이용해 정당한 판단을 받기를 바란다. 대전MBC는 허위 사실 주장에 근거한 이미지 훼손 행위로 인해 회사나 구성원들에게 심각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점을 엄중히 인식하고 있으며, 그 행위를 한 개인 또는 단체에게 엄한 법적 책임을 물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 4일 대전MBC 시청자 의견 게시판 갈무리.
▲ 4일 대전MBC 시청자 의견 게시판 갈무리.

대전MBC는 “프리랜서 채용은 회사에서 관여하지 않으며 제작부서에서 필요에 따라 자체적으로 진행한다. 프리랜서 여성 아나운서들은 별도의 프리랜서 모집 공고를 통해 대전MBC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이들이 정규직 아나운서에 남성이 뽑혔다는 이유만으로 채용 차별을 주장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2018년 신입사원 채용에 응시하지도 않았다”고 반박했다. “프리랜서는 현행법상 근로자가 아니라 방송 진행과 행사 사회 등을 전문으로 하는 자유직업인이다.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없고 대전MBC와 계약한 프로그램만 출연하면 된다”며 “프로그램 출연 횟수가 비슷하다고 사업소득자와 근로소득자를 비교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했다. 프로그램 개편과 진행자 교체에 대해서는 “정당한 개편에 따른 프로그램 출연 계약 종료를 부당한 업무 배제라고 주장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프리랜서의 프로그램 출연 계약 종료는 현행 근로기준법상 직장내 괴롭힘 대상에도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