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이사제 같이 투자협약에 정하지 않은 책임 없는 주장이 거론되지 않도록 합의”

김설 광주청년유니온 위원장은 귀를 의심했다. 지난 9월18일 광주 노사민정협의회 회의를 앞둔 때였다. ‘광주형일자리 합작법인(자동차공장) 조기 안정화’를 위한 공동결의가 안건이었는데 결의문 초안에 ‘노동이사제 같은 책임없는 주장은 거론치 말라’는 요구가 담겼다. 광주형일자리 기본 정신을 부정하는 요구였다.

“광주시가 현대차에 끌려 간다.” 김 위원장은 회의 풍경을 한 마디로 말했다. 현대차가 노동이사제를 반대하는 건 광주형일자리 관계자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문제는 ‘노사책임경영’을 광주형일자리 근본 가치로 약속한 광주시가 이를 제어하지 못하는 점이다. 지난 7~9월 합작법인 설립이 자꾸 지연되면서 광주시청엔 풍문도 돌아다녔다. ‘노동이사제가 공식 언급되면서 현대차가 광주시청 쪽 전화를 일절 받지 않아 고위 관계자가 현대차 본사로 몇 번을 찾아갔다’는 설이다.

▲지난 9월 철회된 결의문 초안 중 일부. 한국노총 광주본부 등 노동계 측 위원의 반발로 문구는 “투자협약 범위를 벗어난 사안이 제기돼 위 법인의 조기 안정화와 지속가능성이 흔들리지 않도록 적극 노력한다”고 변경돼 의결됐다. 그러나 일부 위원들은 표현만 다를 뿐 내용은 그대로라며 계속 반발했다.
▲지난 9월 철회된 결의문 초안 중 일부. 한국노총 광주본부 등 노동계 측 위원의 반발로 문구는 “투자협약 범위를 벗어난 사안이 제기돼 위 법인의 조기 안정화와 지속가능성이 흔들리지 않도록 적극 노력한다”고 변경돼 의결됐다. 그러나 일부 위원들은 표현만 다를 뿐 내용은 그대로라며 계속 반발했다.

 

지난달 20일 합작법인 광주글로벌모터스가 법인 등기를 마치면서 광주형일자리가 본 궤도에 올랐으나 광주는 여전히 시끄럽다. 노사민정 대타협 정신을 지켜야 할 광주시가 성과에 치중해 원칙을 간과하거나 현대차에 좌지우지된다는 비판이 지역사회에 높다.

대표 선임부터 ‘시끌’

당장 등기이사 선임부터 문제가 됐다. 박광태 대표이사와 박광식 사내이사를 둘러싼 부적격 논란이다. 각각 광주글로벌모터스 1대 주주인 광주시와 2대 주주인 현대차가 선임했다. 이 때문에 정의당 광주시당 등 10여개 정당·시민단체가 ‘박광태 대표이사 사퇴를 위한 대책위원회’(대책위)를 꾸렸고 한국노총 광주전남본부도 두 이사 선임 철회를 주장하고 있다.

박광태 이사는 국회의원 3선에 광주시장을 재선한 지역 유지이지만 심각한 도덕성 문제를 안고 있다. 박 이사는 광주시장 재임 시절 145차례에 걸쳐 업무추진비로 20억원 치 백화점 상품권을 사 현금화해 정치자금법 위반 유죄를 선고받았다.

‘반(反) 노동’ 성향과 전문성도 문제다. 대책위는 박 전 시장이 시장 재임시절인 2007년 용역업체가 바뀌며 해고위기에 처한 광주시청 여성 청소노동자들이 청사에서 농성하자 전투경찰과 공무원을 동원해 강제로 끌어낸 인사라 지적한다. 자동차 산업에 전문성도 없고 노사민정 대타협 원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평가도 높다.

▲광주광역시 빛그린산단 내 광주글로벌모터스가 설립될 부지 전경. 사진=김용욱 기자
▲광주광역시 빛그린산단 내 광주글로벌모터스가 설립될 부지 전경. 사진=김용욱 기자

 

▲광주광역시 빛그린산단 내 광주글로벌모터스가 설립될 부지 전경. 사진=김용욱 기자
▲광주광역시 빛그린산단 내 광주글로벌모터스가 설립될 부지 전경. 사진=김용욱 기자

 

현대차 부사장 출신의 박광식 이사도 같은 이유로 논란이다. 한국노총 광주본부는 박 이사가 광주형일자리 정책을 총괄하는 박병규 사회연대일자리특보를 노동계 출신이라며 ‘빨갱이’라 지칭했고 박 특보가 광주시에 있는 한 투자를 할 수 없다며 엄포를 놓았다고 전했다. 박 특보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광주지회장 및 금속연맹(금속노조 전신) 부위원장 출신이다. 박광식 이사가 현대차에서 정부·국회 대관업무를 주로 맡았기에 공장 운영 전문성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대책위의 나경채 정의당 광주시당 위원장은 “이런 체제에서 광주형일자리 공적 의미가 제대로 실행될 수 있는지 심히 우려되고, 의미를 지킬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며 “광주 시민사회와 노동계가 주장하는 노동이사·시민이사는 그 장치도 된다”고 말했다.

지역 내 고개 드는 ‘노동배제’ 우려

지난 18일 논란의 결의문 초안은 노동계 강력 반발로 철회됐지만 광주시가 현대차 요구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는 방증이었다. 초안엔 ‘광주형일자리 조례’까지 투자협약서에 맞게 개정하자는 요구도 있었다. 지방정부가 제정한 법을 그 법을 근거로 탄생한 기업이 반발하고 나선 셈이다. 급기야 이용섭 시장은 지난 23일 광주형일자리에 노동이사제를 도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노동계 반발을 낳았다.

광주형일자리를 자본이 주도할 거란 우려는 처음부터 있었다. 새로운 사회적 대화를 시도한다고 기울어진 운동장 구조가 갑자기 동등해지지 않기에 힘없는 노동계가 양보만 할 것이란 우려였다. 지난해 9월 최저임금 논란도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 광주시와 현대차 간 투자유치 협상 과정에서 초임 연봉이 2100만원이라거나 모든 수당을 포함해 3000만원으로 거론된 사실이 알려지며 노동계 극렬 반발을 낳았다.

‘노동권 통제’ 논란도 꺼지지 않았다. 투자협약 초안의 ‘35만대 생산(약 5년)까지 임금·단체협약을 유보한다’는 조건이 시발점이었다. 이후 ‘노사협의회에서 노동조건을 협의한다’로 보완됐으나 조건 자체가 헌법상 노동 3권(단결권·교섭권·행동권)을 해친다는 비판은 계속 나온다. 어차피 법적 효력이 없으므로 현대차 투자 유치를 위한 보증 차원으로 봐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박광태 대표이사 사퇴를 위한 대책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나경채 정의당 광주시당 위원장이 지난 9월26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용욱 기자
▲‘박광태 대표이사 사퇴를 위한 대책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나경채 정의당 광주시당 위원장이 지난 9월26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용욱 기자
▲지난 9월 노사민정협의회에 제안된 결의문 초안 중 일부. 노동계 반발로 철회됐다. 5개 안건 모두 광주형일자리 설립을 위한 노사민정 협약 정신에 위배돼 논란을 낳았다.
▲지난 9월 노사민정협의회에 제안된 결의문 초안 중 일부. 노동계 반발로 철회됐다. 5개 안건 모두 광주형일자리 설립을 위한 노사민정 협약 정신에 위배돼 논란을 낳았다.

 

광주시와 현대차가 지난 1월 체결한 투자협약서와 부속합의서 전문은 모두 비공개다. 현대차의 요구 때문이다. 광주시 관계자는 “핵심 내용은 보도자료로 모두 공개했고 공개가 안 된 부분에서 법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내용은 없다”고 밝혔다.

현대차의 득과 실은 어떨까. 현대차는 590억원을 출자한 1대 주주 광주시에 이어 530여억원(지분율 19%)을 출자한 2대 주주다. 나머지 1680여억원 자본금은 광주은행 등 광주시 산업계·공공기관 등이 참여했다. 현대차는 스스로를 “경영권 없는 비지배 투자자”라 밝혔고, 경차급 SUV를 신규개발해 생산을 광주글로벌모터스에 위탁한다.

지역사회와 노동계에선 현대차가 530억원 투자의 대가로 꽃놀이패를 쥐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대차그룹 차원의 정부 특혜 지원이 오고 갔지 않았냐는 추측과 함께, 광주형일자리가 테스트베드(새 기술·제품 효과를 시험하는 시스템)로서 현대차에게도 악조건은 아니란 지적이다. 10% 투자 보조금, 취득세 75% 감면, 재산세 75% 감면 등 대규모 인센티브가 지원되고 기업 측엔 임금 삭감, 위탁생산 등의 노무 관리 실험도 된다. 현대차는 경영 실적 책임에서도 자유롭고 혹여 추후 공장이 경영위기에 처한다면 헐값에 공장을 인수할 여지도 있다.

“똑같은 기업 투자에 ‘상생’이라 시민들이 박수칠까 우려”

때문에 나 위원장은 광주시의 모호한 태도가 현대차의 협상력만 키워준다며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주문했다. 그는 “비밀주의 원칙 속에서 어떻게든 사업 성과를 내는데 급급해 일을 그르친 측면이 있다”며 “광주시가 노조, 노동자의 이해관계가 법인 안에서 경영의 주체로 반영될 수 있다는 확신을 줄 수 있는 노동이사제나 시민이사제 등의 장치를 약속해야 하며, 향후 이들의 복지를 어떻게 보장할지 노동계와 적극적으로 소통해 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시청이 노사민정 협치에 대한 의지가 부족하단 지적도 있다. 올해 처음 노사민정 협의회를 참여해 본 김설 위원장은 “우리 사회 사회적 대화 기반이 너무나 열악하단 것을 처절하게 느꼈다”며 “시 주력사업인 광주형 일자리가 안건 임에도 안건 내용이 사전 공지되지 않고, 관련 자료가 회의 현장에서까지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다. 질문, 토론은 없다. 결과가 정해지면 박수를 치는 자리에 가까웠다”고 말했다. 실제 추진 상황을 아는 복수의 관계자들도 ‘정책을 이해하고, 의지있게 추진하는 담당자는 손에 꼽는다’고 전했다.

광주에선 “노사민정 합의가 빠진 일자리가 광주형일자리일 수 있느냐”는 근본적인 물음이 나온다. 나 위원장은 “정말 부정적인 방향으로 가게 되면 지자체가 투자를 유치하며 각종 면세·보조금 지원 등으로 기업 특혜만 더 주는 형국이 될 수 있다”며 “이런 특혜를 시민들이 상생형 일자리라며 박수까지 쳤으니 더 나쁜 경우”라 우려했다.

▲ 빛그린산업단지 조감도. 사진=김용욱 기자
▲ 빛그린산업단지 조감도. 사진=김용욱 기자
▲ 이용섭 광주시장이 지난 19일 열린 노사민정협의회 3차 본회의에서 위원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광주광역시
▲ 이용섭 광주시장이 지난 19일 열린 노사민정협의회 3차 본회의에서 위원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광주광역시

 

한편 구직자들은 기대에 부풀어 있다. 광주글로벌모터스 취직을 희망하는 김희수(가명·30)씨는 9월26일 미디어오늘과 만나 “애초 약속한 상생 가치가 지켜지지 않아 생기는 논란을 알고 있지만, 새 공장 처우가 광주에선 질 좋은 일자리인 건 부정할 수 없다”며 “취업 정보를 위해 틈틈이 광주형일자리를 검색하고 있고, 이렇게 기대를 갖고 예의주시하는 친구·동료들이 많다”고 밝혔다.

김씨는 광주 제조업 종사 청년들 처우를 묻는 말에 자신의 과거 사례를 들었다. 그는 6년 전 기아자동차 차체를 만드는 3차 협력업체에서 2년 일했다. 매달 25~29일씩 출근했고 하루 노동시간도 12시간이 보통이었다. 그렇게 일하고 쥐는 돈은 월 230~270만원. 작은 업체에서 경력을 쌓아 기아자동차 정규직이 되는 게 목표였지만 2년 후 포기했고 임금 수준이 더 높은 경기도로 가 1년 가량 돈을 번 뒤 다시 광주로 돌아왔다. 현재 한 대기업 계약직으로 법정 최저임금 시급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김씨는 “고용 안정과 주 44시간 근무에 연 3500만원 임금 부분이 가장 기대되는 부분”이라며 “처음의 노사민정 약속대로 추진이 잘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 광주시 관계자는 비판과 관련 “일리 있는 지적이고 기업이 주도하면 상생형 일자리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같이 가야 만들 수 있다”며 “서두르면 빨리는 가지만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충분히 가치가 공유돼 안정적으로 가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현대자동차는 경영권 없는 비지배 투자자다. 광주형일자리 관련 문의는 새 법인 광주글로벌모터스에 하는 것이 맞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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