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아나운서는 몇 년을 일해도 비정규직, 정규직은 남성만 채용, 국가인권위원회에 남녀채용차별 진정을 제기한 뒤 이뤄진 프로그램 하차 통보 등. 공영방송 대전MBC에서 버젓이 벌어진 성차별 고용 논란에 관할 지역 노동청마저 미온적이란 지적이다. 4일 세종시에서 진행되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는 이상돈 바른미래당 의원이 관련 질의로 고용노동부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한다.

지난 2014년 대전MBC에 입사한 유지은 아나운서는 올해로 6년째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프리 선언’을 한 유명 아나운서들과는 다르다. 입사 당시 애초 정규직 아나운서 채용이 이뤄지지 않았고, 수년 동안 사측 지시를 받아 일하며 당직도 했다. 일한 시간은 쌓였지만 연차는 인정받을 수 없었다. 그러다 지난해 진행된 대전MBC 신입사원 채용공고. ‘성별제한 없음’이 명시됐음에도 유 아나운서는 선배 아나운서들로부터 ‘남자 자리임을 누설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실제로 그 자리엔 남성 아나운서가 신규 채용됐다.

비정규직 여성 아나운서들은 대전 MBC에서 기본급, 연차휴가, 임금 등 전반에 걸친 차별을 호소하고 있다. 프리랜서 신분으로 인해 프로그램 횟수에 따라 급여가 책정되고 주급으로 돈을 받는 3~6년차 여성 아나운서들은 지난해 신규 입사한 남성 정규직 아나운서보다 100만원 이상 적은 월급을 받고 있다는 것. 유 아나운서는 지난 6월 국가인권위원회에 남녀채용차별 진정을 제기했는데,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21시 라디오뉴스(프로그램 폐지) △뉴스데스크 △주말 당직 하차 통보를 받았다. 유 아나운서는 함께 진정을 제기한 김지원 아나운서와 지난해 9월부터 지금까지 1인시위를 이어가는 동안 분장실 사용시간이 제한되고, 홈페이지에서 아나운서 소개글이 삭제됐다고 전했다.

▲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은 1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본사 앞 광장에서 ‘MBC 아나운서 채용 성차별 실태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서울여성노동자회
▲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은 1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본사 앞 광장에서 ‘MBC 아나운서 채용 성차별 실태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서울여성노동자회

대전MBC는 2019년 대전광역시의 노사상생모델 ‘좋은 일터’에 참여해 대전광역시로부터 초기사업비 5000만원을 지급받았고, 이달 추가 평가를 통해 최고 5000만원까지 추가지원금을 차등 지급받게 된다. 정작 내부에서는 뉴스를 전하는 아나운서들조차 ‘명목상 프리랜서’ 신분을 요구받으며 고용 차별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이 사례는 지난 6월 이후 본지를 비롯한 언론 보도와 시민사회의 규탄·연대 활동 등으로 수면 위에 올랐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국정감사 때는 역시 대전지역 TJB 대전방송 전직 아나운서가 비정규직 아나운서들에 대한 방송사 갑질 관행을 폭로했다. 그러나 이상돈 의원실이 대전지방고용노동청에 ‘관할 지역 방송국 근로감독 및 성차별 고용행태 조사 계획’ 여부를 묻자 “해당사항 없음”(지난 1일)이라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이 의원실은 “많은 여성 아나운서들은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사를 해도 계약직 아니면 프리랜서 신분이다. 계약직 아나운서의 경우 2년을 성실하게 일해도 정규직 전환 논의조차 되지 않고 내보내는 것이 현실”이라며 “계약직으로 2년을 일한 뒤 정규직이 아닌 프리랜서로 다시 채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 회사는 ‘2년하고 바로 자를 수 있었지만 프리랜서라도 데리고 있어주는 것에 감사하라’고 여성 아나운서들을 압박한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여성 프리랜서 아나운서들이 정규직으로 채용되지 못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처럼 근무하고 있다. 방송국은 뉴스 보도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 하나로 여러 방송국을 전전하는 여성 아나운서들의 ‘꿈’을 인질 삼아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는 실정”이라 지적하며 “고용노동부가 정규직으로 고용되지 못하는 여성 프리랜서 아나운서 근로자성 인정 문제의 실태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또한 아나운서 고용 성차별 문제에 확실한 가이드라인을 세워야 여성 아나운서들이 보다 안정된 근로환경에서 뉴스 보도의 기능을 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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