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3일. 이른 아침부터 삼청동에서 청와대의 연락을 기다렸다. 그날은 국가정보원의 프락치를 이용한 민간인 사찰 공작 자료를 청와대에 넘겼다. 1주일 전 어렵게 전화를 걸어온 대학 동창의 프락치 고백이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며 4년간의 사찰 자료, 국정원 직원과의 대화 녹취파일, 국정원이 지급한 장비를 줬다.

문제는 제보자가 “나를 놔주지 않으면 언론에 공개하겠다”고 국정원에 미리 통보한 점이었다. 국정원은 제보자의 거주지와 생활 동선을 모두 알고 있었다. 결국 기사를 내기 전 제보자 신변보호와 국정원의 증거인멸 방지를 위해 청와대에 자료를 전달하기로 결정했다. 국정원 개혁을 외치던 이광철 변호사도 청와대에 있었고, 무엇보다 촛불로 만들었던 문재인 대통령을 믿었다. 국정원이 청와대 몰래 사찰 공작을 했다는 판단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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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2일 저녁, 제보자에게 다급한 연락이 왔다. 국정원이 23일에 경기지부 사무실로 자신을 소환했다고 말했다. 즉시 이광철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기자와 통화하지 않는다”며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 “내일 자료를 전달할 테니 꼭 봐달라”는 문자를 남겼다. 답은 없었다.

다음날 아침 청와대 앞에서 만난 출입기자에게 자료를 먼저 넘겼다. 춘추관장을 통해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에게, 이어서 민정수석실에 자료가 전달됐다. 이날 오전 중앙경찰학교에 다녀오는 문 대통령의 헬기 소리가 청와대 밖까지 울려퍼졌다. 곧 대통령에게 보고될 거라 생각하고 살짝 안심했다. 청와대에서 자료 설명을 요청할 수 있다는 생각에 청와대 앞에서 기다리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청와대의 반응은 없었다. 늦은 오후가 돼서야 “제보자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윤도한 수석의 메시지만 전해 들었다. 제보자의 신변보호에 대해서도 “우리가 당장 해줄 게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 국가정보원. ⓒ 연합뉴스
▲ 국가정보원. ⓒ 연합뉴스

 

당시 ‘조국 수호’에 매몰된 청와대였지만, 너무 안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들의 국정 철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사안인데 그 심각성을 모른다고도 생각했다. 이틀 뒤 출입기자를 통해 청와대 메시지를 받고는 아연실색했다. ‘제보자의 자진신고로 시작된 정상적인 공안수사’라는 국정원 입장을 처음 접했다. 청와대의 판단은 들을 수 없었다. 청와대가 ‘모르는 일’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이 휴대폰을 꺼놓고 잠적했던 제보자에게 연락이 왔다. 잠시 휴대폰을 켜보니, 위치추적 요청이 2건 들어왔다고 했다. 청와대에 자료를 넘긴 다음날이었다.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안된다는 판단에 8월27일 저녁 온라인 기사를 시작으로 연재를 이어갔다. ‘조국 정국’에 묻힐 수 있다는 내부 의견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제보자의 신변 보호가 가장 중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사건을 보도하는 게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 최우영 머니투데이 기자
▲ 최우영 머니투데이 기자

첫 보도 이후 한 달여가 지났다. 다른 여러 매체에서도 이 사건을 취재·보도했다. 사찰 대상자들과 참여연대, 민변은 기자회견을 열어 보도가 사실이었음을 밝혀줬다. 하지만 청와대에서는 여전히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고민정 대변인은 “드릴 말씀이 없다”로 일관했다. 문재인 정권 첫 민정수석을 맡았던 조국 법무부 장관은 “국정원 말로는 대공수사라는데, 프락치 작업 방식이 옳은지는 검토를 해봐야 한다”는 답변만 내놨다. 여전히 김조원 민정수석은 묵묵부답이다. 문 대통령도 조국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에는 격노하면서, 국정원 프락치 사찰은 일언반구도 없다.

정녕 청와대가 문 대통령 집권 이후에도 이어진 민간인 사찰 공작을 몰랐다면, 그 무능함에 대해 사과하고 국정원과 책임자들을 엄벌해야한다. 그런데 청와대와 민정수석실 전현직 수석 등 관계자들의 언행을 보면, 청와대가 몰랐을 것이라는 처음의 판단에 적지 않은 회의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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