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직장 내 괴롭힘 1호 사건'으로 알려진 MBC 계약직 아나운서 사건을 직장 내 괴롭힘이라보기 어렵다며 종결 조치하자 아나운서 측이 지극히 형식적 행정처리에 불과하다며 정면 비판했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은 지난 26일 MBC 계약직 아나운서 7명이 신고한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회사 조치가 명백히 불합리하다 보여지지 않기에 이를 직장 내 괴롭힘이라 보기 어렵다고 판단돼 사건을 행정종결한다”고 밝혔다. MBC가 신고 이후 조사위를 구성해 조사를 실시했고, 조사위 권고안 발표 이후 개선을 꾸준히 시도했으며 이 조치들이 경영상 필요성, 인사 질서, 작업환경의 변화 등을 고려할 때 괴롭힘에 해당할 정도로 불합리하다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다.

아나운서들이 주장한 괴롭힘 쟁점은 △업무 미부여 △격리조치 △사내 인트라넷 차단 등 3가지다. MBC와 부당해고로 다투고 있는 16·17사번 아나운서 7명은 법원이 근로자지위보전가처분 신청을 인용한 후인 5월27일 복직했으나 회사는 이들에게 업무를 주지 않았고 아나운서실(9층)이 아닌 12층 별도 공간에 이들을 배치했으며 사내 인트라넷 접속도 차단했다. 상황이 변하지 않자 이들은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날인 지난 7월16일 노동청에 진정을 접수해 조사가 시작됐다.

▲이선영 아나운서 등 10명은 7월16일 오전 9시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MBC를 직장 내 괴롭힘 1호 사업장으로 신고했다. 사진=박서연 기자
▲이선영 아나운서 등 10명은 7월16일 오전 9시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MBC를 직장 내 괴롭힘 1호 사업장으로 신고했다. 사진=박서연 기자

아나운서들 법률 대리인 류하경 변호사(법무법인 휴먼)는 이번 결정을 “실질을 들여다보지 않은 지극히 형식적 행정처리”라 비판했다. 노동청은 조사 후 MBC가 시도한 조치를 개선 노력을 했단 취지로 반영했으나 “실제 그 조치는 피해자 입장에서 결코 납득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MBC는 7월31일 발표된 권고안에 따라 아나운서들에게 아나운서 고유 업무가 아닌 ‘2020 한글날 다큐멘터리 기획업무’를 부여했다. 통상 협력업체가 수행하던 업무였다. 아나운서들은 통상 아나운서 업무도 아닌데다 시의부적절하고 비고정MC 업무배치도 충분히 가능한 조건을 들며 거부했다.

근무 공간 배치 개선도 논란이었다. MBC는 권고안에 따라 아나운서들을 12층에서 9층으로 이동시키되 추가 자리 이동이 불가피해 어쩔 수 없이 선배 아나운서 일부를 12층으로 이동시키겠다 밝혔다. 아나운서들은 아나운서 전원을 9층에 배치할 수 있는 상황에서 자리를 서로 맞바꾸는 건 온당치 않다며 12층 공간 폐쇄를 요구하며 거부했다.

노동청은 이 과정에서 MBC 측이 경영상 필요성이나 인사 관리상 이유를 들며 아나운서들 반박에 해명한 점을 두고 “형식에 있어 회사 측이 진정인들 신고에 따라 일단 필요 조치를 하거나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진정인 의견을 묻는 행위도 있었다”고 평가했다.

▲MBC는 계약직 아나운서들에게 9층 아나운서국이 아닌 12층 아나운서실을 따로 만들어 자리를 배치했다. 사진=류하경 변호사
▲MBC는 계약직 아나운서들에게 9층 아나운서국이 아닌 12층 아나운서실을 따로 만들어 자리를 배치했다. 사진=류하경 변호사
▲MBC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지난해 5월22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MBC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지난해 5월22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MBC의 조치 내용도 불합리하지 않다 판단했다. 노동청은 아나운서들이 근로자지위보전가처분 인용을 전제로 복직한 점에 비춰 “법리 상 사용자가 근로자가 원하는 업무를 반드시 부여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사용자 경영상 필요, 작업환경 변화 등을 고려해 합당한 일을 시킨 경우 비록 전과 다르다해도 적정 범위를 벗어난 조치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노동청은 근무공간 재배치 관련해서도 “설사 진정인이 거부했다해도 회사 측이 경영질서, 작업환경, 여타 직원과의 관계를 고려해 직원 근무 공간을 배치할 수 있다”며 “명확히 불합리하다고 보여지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류 변호사는 “노동부는 노사 양측을 조사하더니 회사가 개선 시도를 했다며 현재는 괴롭힘 ‘상태’는 아니라는 정도로만 발표했다”며 “진정 후 회사에 내부적으로 접촉하며 개선기회를 부여하면서 기한 연장을 하여 두달 반 동안 2차 가해를 방조했고, 피해자 입장에서는 무척 불충분한 회사의 개선 시도를 이유로 눈에 보이는 사실관계에 대해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특히 신고 이전의 괴롭힘 행위와 관련해 노동청이 “법적으로 다툼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 밝힌 데 대해 류 변호사는 이를 “회피성 언급이고, 이미 존재한 사실을 명확히 규정하지 않으면서 차후 다른 사건들에 대한 예방효과를 스스로 포기했다”며 “오히려 미래의 가해자들에게 면죄부 얻는 '팁'을 알려줬다”고 평했다.

류 변호사는 “노동부가 다른 사건들도 이런 식으로 처리한다면 이 법은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아니라 괴롭힘 가중법이 될 우려가 있다”며 “노동부의 실무처리 매뉴얼 부재, 가해자관점에 선 안이한 무사안일 온정주의, 지나치게 늦은 행정처리가 문제 되는 사안”이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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