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20년도 예산안을 올해보다 약 44조원 증가한 513조5000억원을 편성했다고 지난달 29일 발표하자 언론이 일제히 ‘슈퍼예산’, ‘초대형 예산’ 등으로 칭하며 소식을 전했다. 정부가 무리하게 확장정책을 편다는 뜻이 담긴 ‘슈퍼예산’은 이번에 처음 나온 말이 아니다. 

조선일보는 지난달 15일 사설 “3년 새 예산 100조원 증액, 포퓰리즘이 나라 살림 거덜 낼 것”에서 “세금 퍼붓기”, “총선용 선심 사업들” 등의 표현으로 예산안 규모를 비판했다. 올해 뿐 아니다. 연합인포맥스는 지난 2017년 8월29일 기사 “2018년 예산 429조 슈퍼예산…재정확대 ‘방점’”에서, 중앙일보는 지난 2016년 8월25일 사설 “400조 수퍼예산, 헛돈 쓰는 곳 없는지 꼼꼼히 살펴라” 등 다수 매체가 전부터 정부예산 긴축을 주장해왔다. 

▲ 최근 정부가 내년 예산안을 발표하자 언론이 일제히 '슈퍼예산'이라고 비판 논조로 보도했다.
▲ 최근 정부가 내년 예산안을 발표하자 언론이 일제히 '슈퍼예산'이라고 비판 논조로 보도했다.
▲ 2016년 8월25일 중앙일보 사설. 언론은 과거에도 확장재정을 우려하는 기획재정부 관점에서 정부 예산안을 '슈퍼예산'이라고 보도해왔다.
▲ 2016년 8월25일 중앙일보 사설. 언론은 과거에도 확장재정을 우려하는 기획재정부 관점에서 정부 예산안을 '슈퍼예산'이라고 보도해왔다.

 

이에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25일 서울 마포 나라살림연구소에서 “사실 2017·2018년 긴축재정으로 생긴 재정여력을 2020년에 쓴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예산안이 나왔을 때는 언론이 ‘슈퍼예산’이라고 보도했지만 총지출 증가율은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재정수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본예산이 아니라 추가경정예산 등을 다 포함한 결산 기준으로 살펴야 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내년 예산에 총지출 규모를 유난히 크게 잡은 게 아니라는 게 이 연구위원의 주장이다. 그는 “결산 기준으로 보면 정부총지출이 2015년 7%로 피크를 찍었지만 2016년 3.5%, 2017년 5.6%, 2018년 6.8%”이며 “이는 총수입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슈퍼예산’이란 단어는 무리한 확장정책을 펴고 있다는 느낌을 주지만 결산 기준으로 2016~2018년 재정수치를 보면 정반대의 결과였다고 비판했다. 

2016년의 경우 총수입은 약 401조원, 총지출은 385조원으로 통합재정수지(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값)는 약 17조원이다. 2017년의 경우 총수입 430조원, 총지출 406조원으로 통합재정수지 약 24조원이었고, 2018년 역시 총수입 465조원, 총지출 434조원으로 통합재정수지 약 31조원이었다. 즉 지난 3년간 정부의 수입이 지출보다 많았다는 뜻이다. 이 연구위원은 “초과세수가 발생했는데 이만큼 재정을 확대하지 못한 것”이라고 원인을 진단했다. 결국 2020년에 적자예산을 편성하더라도 재정건전성에 크게 무리가 가는 수준이 아니라는 게 이 연구위원의 평이다. 

▲ 결산 예산 기준으로 본 최근 8년 총수입과 총지출. 2015년 총수입과 총지출이 비슷했고 이후 3년간 초과세수로 총지출이 총수입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간 '슈퍼예산'이라고 표현했던 것과 정반대의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자료=나라살림연구소
▲ 결산 예산 기준으로 본 최근 8년 총수입과 총지출. 2015년 총수입과 총지출이 비슷했고 이후 3년간 초과세수로 총지출이 총수입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간 '슈퍼예산'이라고 표현했던 것과 정반대의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자료=나라살림연구소

 

이 연구위원은 예산안을 평가할 때 본예산과 추경예산 중 어디에 기준을 둘 때 실질에 부합하는지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총지출 증가율을 추이를 볼 때 본예산을 기준으로 보면 2018년은 전년 대비 7.1%, 올해는 전년대비 9.5%, 2020년은 올해대비 9.3% 증가한 걸로 나오지만 추경 포함한 예산을 기준으로 보면 각각 5.5%, 9.9%, 8.0% 증가한 걸로 나온다. 추경까지 포함하면 올해 예산은 475조원이고 내년 예산은 9.3%(44조원)가 아닌 8%(38조원) 증가했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는 의미다. 내년 예산안은 8% 증가해 올해 증가율 9.9%보다 증가율이 조금 둔화한 예산안이다.   

한국 기재부 발명품 ‘총지출 기준’

이 연구위원은 위 설명은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통계 프레임 안에서의 분석일 뿐 기재부처럼 국가재정을 ‘총지출’ 기준으로 보는 것 자체의 한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기재부의 총지출 기준에서는 융자(대출)총계를 사용하지만 IMF 기준(1986년도)에서는 융자순계를 사용한다. 예를 들어 10조원을 융자해주고 융자금을 9조원 회수했다고 할 때 기재부 기준으로는 10조를 계상하지만 IMF 기준으로는 1조원을 계상한다. 기재부는 이런 기준을 2005년에 도입했는데 목적을 그냥 ‘국민들이 이해하기 쉬운 개념’이라고만 밝히고 있다.” 

지금 구조에서는 융자사업을 늘리면 총지출이 늘어난다. 정부·여당이 확장재정정책을 요구할 때 균형재정을 유지하려는 기재부 입장에서 융자사업을 늘려 눈속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청와대에는 총지출을 늘렸다고 보고할 수 있지만 실제 재정이 늘었다고 볼 수 없다.  

이 연구위원은 다른 예시도 들었다. 

“마트에서 지난주에 10만원을 썼고, 오늘 1만원을 썼다. 어떤 소비가 더 타격일까. 이는 알 수 없다. 만약 지난주에 10만원으로 모두 쌀을 샀고, 오늘은 초밥을 샀다면? 쌀은 어차피 사야하는 건데 한번 사면 몇 개월 유지하지만 초밥은 오늘 욕망을 자제했다면 사지 않을 수도 있다.”

단순히 재정의 규모가 아니라 그 성격을 따져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 지난 8월15일 조선일보 사설
▲ 지난 8월15일 조선일보 사설

 

내년 예산에서 융자사업이 크게 늘었다. 올해 본예산 기준으로 32.7조원에서 내년 39.4조원으로 약 7조원 증가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주택구입·전세자금’ 융자사업이 1.8조원, 전세임대 융자사업 1조원, 지방채인수융자사업 0.9조원, 다가구 매입임대 0.5조원 증가했다. 

이 연구위원은 “국가가 7조원을 융자해주면 이 돈은 없어지는 게 아니라 지금 빌려줬다가 몇년뒤 융자금을 이자와 함께 회수한다”며 “이게 시장금리보다 낮을 수 있는데 이를 감안하면 실제로는 7조원을 손해 보는 게 아니라 7조원을 융자했을 때의 시장금리와 정책금리 차이만큼만 손해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융자사업이 불필요하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주택융자 수요가 20조원이 넘는 상황에서 기재부가 필요에 따라 융자사업을 얼마든지 늘릴 수 있고, 이를 이용해 정부지출을 과장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기업 주식을 사거나 펀드에 재정을 투입하는 ‘출자사업’ 역시 비슷한 성격이다. 이는 올해보다 2조원 가량 증가했는데 이런 부분을 구체적으로 살피지 않은 채 ‘슈퍼예산’이라고만 단정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 연구위원은 “현재 기재부 기준으로 ‘융자사업과 출자사업은 총지출 규모를 과장한다’는 말은 팩트(사실)”라고 강조했다. 

예산의 구체적인 항목을 살핀다고 문제가 다 해결되진 않는다. 예산이 늘거나 줄었을 때 그 이유도 함께 살펴야 한다. 

이 연구위원은 “재난관리 부문예산이 18%(2200억원) 감소했는데 이중 소하천관리 예산이 2500억원 줄었다. 중앙에서 하던 소하천관리를 지방정부가 하도록 이양한 결과인데 이를 만약 ‘정부가 재난관리 예산을 줄인다’고만 이해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예로 노인 관련 예산이 18% 늘었는데 이는 기초연금지급 14% 상승분이 반영된 수치다. 이 연구위원은 “정권과 무관하게 인구구조에 따라 매년 늘어날 예산”이라고 설명했다. 

이 연구위원은 “이처럼 기재부 발표를 그대로 옮기면 과장이나 거짓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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