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교수는 자신의 역작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 부자 나라가 어떻게 부자가 됐는지 소개한다. 장 교수는 ‘로빈슨 크루소’를 쓴 소설가 다니엘 디포의 이중 생활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다니엘 디포는 소설가 이전에 모직물과 양말, 포도주, 담배를 수입하는 사업가였다. 왕립복권회사와 집마다 창문 수에 따라 재산세를 징수하던 악명 높은 창호세 사무소 같은 정부기관에서도 일했다. 디포는 정부 스파이로 이중생활도 했다. 처음엔 보수당 토리당 하원의장 로버트 할리를 위해, 나중엔 할리의 정적 로버트 월폴의 휘그당 정부를 위해 스파이 활동을 했다. 

디포는 경제학자로도 활동했다. 그가 쓴 주요 경제 저작 ‘영국 상업발전 계획’(1728)은 튜더 왕조의 산업정책에 대한 심층적이고 통찰력 있는 설명으로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다.

▲ 다니엘 디포 (Daniel Defoe)
▲ 다니엘 디포 (Daniel Defoe)

이 책에는 당시 영국 정부가 유럽의 최첨단 산업이었던 모직물 제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보호주의와 국가보조금, 독점 강화, 산업 스파이 활동 지원 등 여러 형태로 개입하는 과정이 상세히 나온다. 헨리 7세가 보호무역 정책을 추진하지 않았더라면 영국은 모직물 원료 수출국에서 유럽 최첨단 산업국으로 변모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디포는 이 책에서 영국의 모직물 산업을 발전시킨 것은 자유시장이 아니라 정부의 보호와 보조금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디포는 로버트 월폴이 이끄는 휘그당 정부를 위해 스파이 노릇을 했다. 월폴은 부패했지만 유능한 경제 관료였다. 월폴의 보호무역 정책은 다음 세기에도 굳건하게 자리를 지켰고, 그 덕에 영국 제조업은 유럽 대륙의 제조업을 따라잡은 것을 넘어 오히려 앞서 나갔다. 당시 영국은 영국산 면직물보다 품질이 우수했던 인도산 면직물 수입을 금지했다. 1699년엔 식민지들이 다른 나라로 모직물을 수출하는 것을 금지시켜 아일랜드의 모직물 산업을 파괴하고 미국내 모직물 산업의 출현도 막았다.

디포와 월폴의 시대엔 보호무역주의가 옳았다. 그러나 시대가 발전하면서 보호무역주의는 낡은 틀이 됐다.

애덤 스미스는 월폴이 세웠던 ‘중상주의 체제’를 호되게 비판하면서 등장했다. 그의 역작 ‘국부론’은 영국의 중상주의 체제가 절정에 달했던 1776년 출간됐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보호관세, 보조금, 독점권 등의 중상주의 체제가 만들어 낸 경쟁제한이 영국 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애덤 스미스는 월폴의 정책이 낡은 유물이 돼 가는 것을 꿰뚫어 봤다. 스미스는 더 이상 보호할 필요가 없는 산업을 보호하면 그 산업은 안일해져 효율성을 잃는다며 자유무역주의를 채택하는 편이 훨씬 이롭다고 했다.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 덕분에 영국은 보호무역에서 자유무역으로 서서히 이동했다.

오늘날 부자 나라가 된 영국과 미국만큼 강력한 보호무역 정책을 실시했던 나라는 없다. 이렇게 역사는 늘 시대에 맞게 과거를 부정하면서 발전해왔다.

▲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9월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민부론’ 발간 국민보고대회를 갖고 당의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사진=자유한국당 홈페이지
▲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9월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민부론’ 발간 국민보고대회를 갖고 당의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사진=자유한국당 홈페이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민부론’을 보면서 지금은 한창 낡은 것이 돼 버린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 떠올랐다. 국가만 부유해지는 나라 대신 국민이 부유해지는 나라, 말은 좋다. 2030년까지 ‘국민소득 5만불’에 ‘가구당 연간 소득 1억원’을 내걸었지만 황 대표가 제시한 법인세 감세, 원전 확대, 영리병원 허용, 시장 중심의 노동법 전환으로 그게 가능할까. 사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정책을 그대로 옮겨 놨는데 이런 친기업 정책을 9년 반동안 펼친 결과는 국민들이 더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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