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전쟁’에 우리사회 시선이 쏠린 이 시각에도 ‘사법농단 재판’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2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이 사건은 서울중앙지법에서 공판 중이다.

지난 1월 양 전 대법원장이 구속됐을 때 들끓던 공분은 시간이 흐르며 차츰 가라앉았고, 구속 수사라는 ‘검찰의 시간’을 지나 공판이라는 ‘법원의 시간’에 이르며 주목도가 조금씩 떨어졌다. 검찰 개혁 요구가 어느 때보다 높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공판 보도보다 ‘검찰 소스’에 익숙하고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럼에도 양승태 재판을 중계하고 기록하는 이들이 있다. 법조를 담당하고 있는 이혜리 경향신문 기자는 지난 3월부터 “‘존경하는 재판장님’ 사법농단, 법정의 기록”이라는 기획 제목으로 사법농단 재판을 중계 보도하고 있다.

첫 보도를 통해 재판정이 자기 집 안방인양 떳떳했던 양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당당함’을 고발했고, 지난 24일 12번째 기사를 출고했다. 2~3주에 한 번 꼴이다. 분량도 A4 용지 3장 정도로 호흡이 길다.

이혜리 기자는 24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기존 법조 기사는 검찰 중심으로 보도돼 왔고, 피고인이 기소되면 이후 공판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법원이 일으킨 ‘사법농단’을 법원이 판단해야 하는 특수한 경우”라며 “당연히 공정성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고 다른 재판보다 더 큰 관심과 분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단건으로 기사를 쓰기보다 (재판정에 출석하는) 판사들의 증언이 어떤 의미인지, 또 법관의 독립성을 해치는 행위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맥락과 분석을 담아 길게 쓰고 싶었다.”

양승태 재판은 보통 주 2회,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등 기소된 또 다른 판사들 사건까지 고려하면, 사법농단 재판은 매일 같이 기자들을 기다린다. 기자 고민은 빽빽한 재판 일정에만 있지 않다. 독자들이 사건을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법정 용어를 쉬운 언어로 풀어야 하고, 풍부한 맥락과 해설도 담아야 한다. 이 기자는 “법조인만 알아보는 기사가 아니라 일반 독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계속 기사를 고민하지만 뜻대로만 풀리진 않는다”고 했다.

▲ 경향신문 3월25일자 기획 10면. 이혜리 기자는 사법농단 재판 중계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디자인=이우림 기자.
▲ 경향신문 3월25일자 기획 10면. 이혜리 기자는 사법농단 재판 중계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디자인=이우림 기자.

비록 소수이지만 경향신문 외에도 KBS(‘판사와 두 개의 양심’), 서울신문(‘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 한겨레(‘법정에 선 양승태 사법부’) 등의 언론들이 재판 중계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이 어떻게 재판에 개입하고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사법행정권 남용에 대한 판사들의 ‘위법·도덕 불감증’이 어느 수준인지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보도들이다.

양승태·임종헌이 법정에서 당당했다면 증인이나 피고인석에 서는 또 다른 판사들은 책임을 회피한다. “관행이었다”거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법원행정처 판사들의 해명은 재판마다 반복돼 왔다. 이 기자는 “법조 기자로서도 판사들의 생각을 알 기회가 많진 않았다”면서도 “공판 취재를 통해 사법행정이란 이름으로 어떻게 재판에 개입하고 거래 대상으로 삼았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법관의 민낯과 이면에 자괴감과 실망감도 들지만 그게 현실이었다”고 꼬집었다.

재판 속도는 기대에 못 미친다. 이혜리 기자는 지난 7월 보도에서 “해박한 법 지식과 그 지식을 활용하는 능력을 가진 피고인들은 사법농단 재판을 좌지우지한다”며 “사법농단 진실을 발견하는 시간은 늦어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 관심은 줄어든다. 정치권력의 변화라도 생기면 피고인들은 반전을 노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기자는 통화에서 “피고인의 방어권은 당연히 보장해야 한다. 하지만 시민들이 피고인인 일반 사건과 비교하면 너무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며 “재판이 속도를 못 내고 있는데 결국 기자들의 감시가 중요한 국면”이라고 강조했다.

기소독점권을 갖고 있는 검찰이 막강한 권력이지만 법원이 최종 판단을 내린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언론의 재판 중계 보도가 계속돼야 하는 이유다.

이 기자는 “조국 장관을 둘러싼 논란과 이야기도 중요하다. 그러나 법원은 삼권분립의 한 축으로 한 사람 인생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곳이다. 사법농단 사건은 대법원장과 판사들이 범죄 혐의로 형사 재판을 받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라며 “시민들의 관심이 더 많아져야 한다. 그래야 법원 개혁에도 동력이 생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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