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 A씨(67)가 지난달 9일 2공학관 지하 1층 휴게실에서 숨졌다. 계단 밑 공간을 터 만든 휴게실은 강의실을 마주했다. 폭염경보가 내려진 날이었고, 휴게실에 냉방기나 창은 없었다. A씨는 이곳에서 잠이 들었다 숨진채 동료에게 발견됐다. 비좁고 환기·냉난방시설 없는 대학 용역노동자들 휴게공간이 다시 주목 받았다.

학교 청소‧경비‧시설노동자의 열악한 환경이 알려진 지 오래지만 바뀌지 않고 있다. 현장 노동자에선 원청이 노동자 근무환경에 대한 책임회피 구조를 방치하는 한 정부 대책은 여론 달래기에 그친다고 지적한다.

정의당 여영국·이정미 의원실은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대학 청소·시설·경비노동자 노동환경 증언대회를 열었다. 이경자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부지부장은 이날 “정부가 거듭 대학 내 용역노동자들 노동조건을 개선하겠다지만 정작 저임금 위험노동에 시달리는 간접고용 구조이란 핵심은 외면한다”고 비판했다.

▲지난달 9일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가 숨진 2공학관 휴게실. 정의당 여영국 의원실
▲지난달 9일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가 숨진 2공학관 휴게실. 정의당 여영국 의원실

정부는 2011년 청소노동자 노동환경이 사회 이슈로 떠오른 뒤 수차례 대책을 발표했다. 월 75만원을 받던 홍익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이 휴게실과 식비를 요구하고 나서자 고용노동부는 실태조사를 거쳐 업체와 학교(원청)에 휴게실‧샤워실 마련을 권고했다. 2011년 당시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은 한끼 식비 300원을 받았다.

정부는 지난해 7월에는 사업장 휴게시설 설치‧운영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가이드라인엔 휴게시설의 최소면적, 환기, 냉난방 시설 기준이 담겼다. 노동부는 이후 각 현장 실태를 점검하고 용역업체에 권고 조치도 내렸다.

그러나 대다수 노동자들 노동·휴게환경은 그대로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가 지난해 8월 고려대‧광운대‧덕성여대‧동덕여대 등 서울 14개 대학을 실태조사한 결과, 청소노동자가 일하는 202개 건물 가운데 절반 가량인 108곳의 휴게실이 지하나 계단 밑에 있었다. 에어컨이나 냉방장치가 없는 경우가 69곳에 달했고, 17개 건물엔 휴게실이 아예 없었다. 

손승환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조직부장은 “청소노동자는 새벽에 노동강도가 가장 세, 대부분 수면을 취한 뒤 오전‧오후 노동을 이어간다. 그러나 휴게시설이 열악하고 좁아 이들은 누워서 쉴 수 없고, 목욕시설이 없는 곳도 154곳에 달한다”고 했다.

경비노동자가 일하는 87개 건물에서도 휴게실이 업무공간과 분리되지 않은 곳이 36곳이었다. 손 조직부장은 “경비노동자는 업무와 휴게 공간이 붙어 있으면 휴식이 업무의 연장선이 된다. 소등을 못하도록 하는 경우 더 심하다”고 했다.

▲이경자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부지부장. 사진=김예리 기자
▲이경자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부지부장. 사진=김예리 기자
▲정의당 여영국·이정미 의원실은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대학 청소·시설·경비노동자 노동환경 증언대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정의당 여영국·이정미 의원실은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대학 청소·시설·경비노동자 노동환경 증언대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참가자들은 정부의 각종 대책이 효과를 보지 못한 이유로 간접고용 구조를 꼽았다. 대학 청소‧시설‧경비‧주차 노동자들은 학교 내 같은 장소에서 같은 내용의 일을 하지만, 소속은 2~3년마다 바뀐다. 이들은 형식상 원청과 용역계약을 맺는 업체 소속인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다. 이경자 부지부장은 “학교와 계약이 불안정한 용역회사가 에어컨이나 샤워실 같은 시설에 투자할 리 없다. 사실 시설에 권한이 있는 원청이 들어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데 원청은 자기 직원이 아니란 이유로, 업체는 원청이 협조하지 않는다며 책임을 미룬다”고 했다.

이경자 부지부장은 “결국 정부가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원청은 사용자로서 책임을 피하고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해 간접고용 형태를 유지하는데, 정부는 이 구조는 외면하고 허울뿐인 권고조치만 반복해왔다”고 밝혔다. 정부 가이드라인 역시 권고사항일 뿐이다. 이 부지부장은 지난 11일 발의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통과돼 대학 내 용역노동자 등을 위한 휴게실·샤워실 설치를 의무화해야 한다고도 했다.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이시헌 집행부원은 “언론의 관심이 사그라들고 시간이 지나면 학교는 또다시 이번 일을 유야무야 넘기려 할 것이다. 학교가 단지 시늉에 그치지 않는 책임 인정과 실질 대책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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