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이후인 2015년과 2016년에 한 차례씩 대학교 심리학 교양과목에서 ‘직업으로서 기자’를 소개하는 특강에 간 적 있었다. 서로 다른 대학에서 진행된 두 번의 특강엔 모두 100명이 훌쩍 넘는 학생들이 참석했고, 그 학생들은 과제로 A4 용지 한 장 이상의 소감문을 제출했다. 놀랍게도 두 특강 소감문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발견된 문장은 ‘기자라면 그저 기레기인 줄 알았다’였다. 필자의 강연 주제가 언론을 향한 불신·혐오가 아니었는데도 정말 많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언론관을 밝혔다. 내 강연을 어떻게 들었을까 궁금해 하며 집어 들었던 문서에서 도저하고도 만연한 ‘언론 혐오’를 발견하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3년여가 지난 현재, 언론을 향한 혐오 정서는 더 심해졌고 가라앉을 것 같지도 않다. 특히 이른바 ‘조국 현상’을 겪은 뒤엔 언론 불신이 임계점을 넘었다는 진단도 나온다. 

필자는 언론의 보도 방향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현상이 지극히 바람직하고, 정파적인 한국의 언론 환경을 감안하면 뒤늦은 감도 있다고 보지만, 언론을 향한 혐오 정서에 대해 우려하는 편이다. 언론 혐오라는 현상은 분석과 대안이 필요한 사회 현상이고, 그냥 놔둘 경우의 해악도 적지 않다. 정치 혐오가 비슷한 사례다. 정치인은 거의 예외 없이 비리가 있고, 권력을 남용하거나 악용해 자기들만의 이익을 추구하고, 그 권력을 갖기 위해 그들끼리 의미 없는 싸움만 지긋지긋하게 반복할 것이란 심리가 정치 혐오다. 이런 심리가 지배적 사회에선 의미 있는 정치적 시도들조차 온당한 평가를 받기 어렵다. 정치 혐오의 영향력은 비극적 선택을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노회찬 전 의원이 마지막으로 남긴 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이제 더 이상 노무현은 여러분이 추구했던 가치의 상징이 될 수가 없다. 여러분은 이 수렁에 함께 빠져서는 안 된다. 저를 버리셔야 한다”(2009년 4월22일 ‘사람사는세상’ 홈페이지 게시글)는 글을 남겼고, 노회찬 전 의원은 유서에 “경제적공진화모임으로부터 모두 4000만원을 받았다. 어떤 청탁도 없었고 대가를 약속한 바도 없었다. 책임을 져야 한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적었다. 두 정치인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들은 분명 정치 혐오가 자신들이 추구한 가치마저 퇴색시킬까를 우려했다. 하지만 두 정치인의 지지자조차 ‘혐오의 영향력’을 심각하게 보지 않는 듯하다. 정치는 우리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원인 제도와 재정을 정하는 수단이다. 그저 혐오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작동하는지 면밀히 살펴야 할 대상이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언론은 공론장이 어떤 문제를 드러내는지, 어떤 해법이 모색되는지를 다룬다. 그 역할을 제대로 하는지, 정파적 목적으로 특정 어젠다를 제기하지는 않는지를 따지며 비판할 필요는 있지만 언론 자체를 혐오하면 의미 있는 논의가 시작조차 될 수 없다. 온당한 평가와 동기 부여의 선순환도 사라진다. 

▲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지난 6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지난 6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어떻게 언론 혐오를 해소할 수 있을까. 필자는 크게 4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하나는 언론이 단순 사실 보도를 넘어 사실이 어떤 ‘맥락’에 있는지를 충분히 전달하는 것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 지지자들에게 성토의 대상이었던 지난 9일 경향신문의 “[단독] 조국 부인, 가족펀드 투자사서 매달 고문료 받았다”는 기사를 예로 들면 투자사서 받은 돈이 어떤 점에서 문제가 있는 것인지, 문제가 없을 가능성이 있는지 등을 취재한 사실과 함께 제시하는 방안이다. 이 보도에는 “경향신문은 이날 조 후보자의 입장을 들으려고 연락했으나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적혔고 조국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는 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에 “고문료가 아닌 영문학자로 영어교육 자문료를 받았다”고 해명했다. 언론이 실제 해명을 요구했는데 해명이 없던 것인지, 고문료가 아닌 자문료일 가능성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는지 등 엇갈린 두 주장이 나온 이유를 다시 살펴보고 보도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 제안은 보도 출처를 보다 분명히 하거나 취재원 노출 때문에 어렵다면 제3자의 인증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언론은 그동안 관행적인 ‘익명 취재원’을 통한 보도로 불신을 자초했다. 검찰의 선택적 피의사실 공표에 악용된 측면도 있었다. 세 번째는 언론학계를 향한 제안이다. 언론 보도와 사회의 상호 작용에 깊이 천착하는 연구를 하고, 그 결과를 적극적으로 세상에 알렸으면 한다. 최근 1년 동안 한국기자협회가 선정한 ‘이달의 기자상’ 보도들만 살펴봐도 ‘지옥고 아래 쪽방’, ‘대한민국 요양보고서’, ‘간병살인’, ‘자영업의 약탈자들’ 등 평소 제기되지 않던 중요한 문제를 지적한 보도들이 적지 않다. 이들 문제 제기로 논의가 축적되고 해법이 모색되고 있다. 실제로 언론 보도로 만들어진 정책과 제도도 적지 않다. 이런 사례들이 제대로 연구되면 언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공감대가 더 커질 수 있다. 마지막 제안은 ‘조국 보도백서’를 만들자는 것이다. 조국 보도가 어땠는지 총체적으로 되돌아보는 백서를 만들면 분명 언론이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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