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활동을 재개할 수 있을까. 지난 6월 자유한국당 반발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개정안이 23일 안건조정위원회 표결을 통해 다시 행안위 전체회의로 넘겨졌다. 안건조정위 마지막날인 이날까지 법안을 반대하던 한국당 소속 안건조정위원들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고 퇴장했다.

홍익표 조정위원장(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소방관 국가직화 법안은 1차 회의 때 조정돼서 수정안이 통과됐다. 과거사법과 공무원 직장협의회 설치 법안은 협의처리가 안돼 표결로 처리됐다”며 “이 법안들은 30일 이내 상임위(행안위) 전체회의에서 통과돼야 하는데 그 전까지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 한국당과 논의를 충분히 해서 안건이 통과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관련 전체회의는 내달 22일 안에 개최돼야 한다.

한국당 소속 안건조정위원인 윤재옥, 이채익 의원은 한국당이 반대하는 법안 처리를 ‘날치기’라 규정하며 퇴장했다. 회의장에서 나와 기자와 만난 윤 의원은 “문제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결해버리면 지난번 통과된 안이 전체회의에 상정되기 때문에 표결을 하지 말고 여야 간 논의를 좀 하자는 입장인데 그걸 안 받아들였다. 자기네들끼리 표결 처리를 마음대로 했다”고 주장했다.

▲  23일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이 국회에서 행정안전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 개의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 23일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이 국회에서 행정안전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 개의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회의장 앞을 서성이던 민간학살 피해자 유족들과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은 과거사법을 표결 처리한 민주당·바른미래당 의원들에게 연신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각각 597일, 684일째 국회 정문 바깥에서 노숙 농성과 1인 시위 등을 벌이며 과거 사건들의 진상규명을 염원해온 이들이다. 감사 인사를 전해받은 일부 의원들은 “아직 갈 길이 멀다”며 이들과 악수를 나눴다.

곽정례 한국전쟁유족회 여성위원회 부위원장은 1950년 아버지가 총에 맞아 사망하던 날을 기록한 탄원서를 기자에게 건넸다. 그는 “그동안 거의 260만~270만원어치 탄원서를 출력해서 국회의원들에게 돌렸다. 오늘까지 597일째 매일 국회 앞에 나왔고 법원 등 안 찾아가본 곳이 없었다. 언론에서도 제발 이슈화를 시켜줬으면 좋겠다. 눈 앞에서 가족이 총 맞는 걸 본 사람들이다. 이 이야기하면 내가 또 우는데..”라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곽씨를 비롯해 10여명의 민간인 학살 피해자 유족들이 이날 국회를 찾았다.

이른바 ‘한국판 아우슈비츠’로 불린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의 생존 피해자들은 ‘형제복지원사건 진상규명하라’는 글귀가 새겨진 옷을 입고 회의장 앞을 지켰다. 한종선씨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서는 부산시장도 이미 직접 사과했다. 국가폭력이라고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사건이다. 이렇게 읍소하는 이유는 의원들이 본분을 되찾아 제대로 일 좀 해주시길 바라기 때문”이라며 “국회 앞에서 2년 가까이 노숙농성을 해왔다. 도대체 나를 왜 잡아갔었는지, 억울함이 있다면 치유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호소했다.

안경호 4·9통일평화재단 사무국장은 국회가 더 이상 과거사 진상규명을 미룰 명분이 없다고 강조했다. 안 사무국장은 “이미 2004년 원혜영 열린우리당 의원이 ‘진실규명과 화해를 위한 기본법’을, 유기준 한나라당이 ‘현대사 조사·연구를 위한 기본법’을 발의한 뒤, 명칭도 두 법안을 합쳐서 만들었고 조사범위와 관련해서도 한국당 전신인 한나라당의 주장을 다 반영해 관철시켜서 법을 만들었다. 새삼스러울 게 없다. 좌우 이념이 아니라 인권 문제로 접근해 억울하게 피해본 분들의 명예를 회복하자는 것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며 “특히 한국전쟁은 내년이면 발생한 지 70년, (피해 유족) ‘막내’가 약 70세다. 물리적으로도 더 오래 기다릴 수 없는 분들이다. 더 이상 지체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