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소조항 논란이 컸던 방송심의 규정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 조항이 삭제됐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강상현)는 23일 오후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등 3개 규정과 ‘방송광고심의에 관한 규정’, ‘상품소개 및 판매방송 심의에 관한 규정’을 개정했다. 

▲ 지난해 12월 방영된 KBS 오늘밤 김제동 방송화면 갈무리.
▲ 지난해 12월 방영된 KBS 오늘밤 김제동 방송화면 갈무리.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 조항은 ‘방송은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를 해치는 내용을 방송해서는 아니 된다’ ‘방송은 남북한 간의 평화적 통일과 적법한 교류를 저해하는 내용을 방송해서는 아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조항은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4년 방통심의위에서 신설한 조항이다. 이 조항은 신설할 당시 내용 자체가 명확하지 않아 정권이 정해준 기본질서를 따르라는 것으로 확대 해석되거나 오용될 수 있다는 논란이 컸다. 

당시 민주언론시민연합·참여연대 등은 “방송심의 영역에서 해석이 모호해질 수 있는 국가보안법이 생겼다”며 “이번 개정은 비판적 방송을 길들이고 정권 홍보의 수단으로 삼는 장치로 활용하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이 조항은 신설 이후 KBS ‘오늘밤 김제동’에 단 한 번 적용해 심의해 논란이 있었다. 또한 방송심의 규정 ‘법령의 준수’도 함께 적용되면서 ‘오늘밤 김제동’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는지도 살폈다. ‘오늘밤 김제동’은 지난해 12월 방영분에서 김정은 위인맞이 환영단장을 인터뷰했다. 방통심의위는 심의 결과 문제가 없다고 결정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심의위원들은 삭제에 동의했으나, 자유한국당 추천 위원 중에서도 이상로 위원 혼자 이 안건에 반대했다.

이상로 위원은 “이 조항을 삭제해야 하는 심각한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조항이 삭제된다면 KBS 같은 데서 북한방송을 생중계해도 규제하기 힘들어진다”고 주장하자, 강상현 위원장은 “비슷한 조항이 이미 있다. 여러 과정을 거쳐 다수가 동의해 삭제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방송심의 규정 ‘방송의 공적책임’ 조항에 ‘방송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고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를 유지하는데 이바지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전광삼 상임위원도 “비슷한 조항인 ‘방송의 공적책임’을 적용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심영섭 위원 역시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 조항은 심의위원들이 임의로 판단해 재량권을 행사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동안 재량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조항을 너무 많이 갖고 있었던 게 문제였다”며 “국가보안법 위반 방송에는 ‘법령의 준수’ 조항을 적용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날 방통심의위는 ‘성폭력·성희롱 사건보도 등’ 조항을 신설했다. 이 조항은 ‘방송은 성폭력·성희롱 사건과 무관한 피해자의 취향, 직업, 주변의 평가 등 사적 정보를 자세히 묘사해서는 안 된다’ 등 사건을 선정적·자극적으로 방송하지 않도록 구체적인 심의 기준을 마련했다.

이밖에도 방송의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해 자살묘사와 관련된 심의 기준을 재정비하고, 어린이·청소년 출연 관련 규정, 기부금품 모집 관련 규정을 보완했다. 재판이 계속 중인 사건 심의 기준을 완화하기도 했다.

‘방송광고심의에 관한 규정’은 ‘인권보호’ 조항을 신설하고 장애인·노인·어린이·임산부 등 사회적 약자의 인권 보호에 신중을 기하도록 하고 정신적·신체적 차이를 조롱의 대상으로 삼거나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금지하는 근거를 마련했다.

또한 ‘차별금지’ 조항에 ‘방송광고는 성을 균형있고 평등하게 묘사해야 하며 특정 성을 부정적, 희화적, 혐오적으로 묘사하거나 고정관념을 조장하는 등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보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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