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요금 수납을 담당하던 노동자들이 60여 일 동안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국도로공사가 자회사를 통해 직원들을 고용하려 하자 ‘직접고용’을 요구하고 나선 것입니다. 지난 8월29일, 대법원이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한국도로공사는 노동자들에게 또 다른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요금 수납 노동자들이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동안 언론은 이들을 어떻게 다뤘을까요?

요금 수납 노동자들이 농성에 나선 이유

한국도로공사 정규직 직원이던 요금 수납 노동자들은 2000년대 진행된 산업 구조 개편과 대대적인 민영화·외주화를 겪으면서 모두 용역업체 소속 비정규직으로 전환됐습니다. 정규직 직원이었던 노동자들이 최소 6개월에 한 번씩 계약을 갱신하게 된 것입니다. 요금 수납 노동자들은 한국도로공사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2013년 소송을 냈습니다. 1·2심을 거쳐 대법원 판결만을 앞둔 시점, 한국도로공사는 지난 7월 업무전담 서비스 업체인 자회사 ‘한국도로공사서비스’를 출범시켰습니다. 요금 수납 노동자들을 자회사로 강제 전환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자회사는 노동자들에게 또 다른 외주업체에 불과합니다. 자회사 전환을 거부한 노동자들은 6월1일부로 용역회사와의 계약이 종료돼 해고 상태가 됐습니다. 집단 해고사태에 반발한 요금 수납 노동자들은 고공농성에 들어갔습니다.

8월29일 대법원의 판결로 인해 요금 수납 노동자들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습니다. 대법원이 ‘한국도로공사는 요금수납원들은 직접 고용할 의무가 있다’는 확정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도로공사는 대법원 확정판결 대상의 노동자들이 아닌 1·2심 소송이 진행 중인 1047명에 대해서는 직접고용을 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대법원 확정판결의 대상이 된 노동자들에게도 요금 수납 업무를 주지 않고 시설 환경 정비 업무를 맡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파견법 제 6조의2에 따르면 불법파견이 인정되어 직접고용의무가 발생할 경우 기존 노동조건의 수준보다 노동조건이 낮아져서는 안 됩니다. 이에 따라 9일부터 요금 수납 노동자들은 대법원 판결 이행을 촉구하며 경북 김천시 공사 본사 점거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노동자의 목소리 외면한 중앙일보

본격적으로 고속도로 요금수납원들이 언론에 등장하게 된 시기는 6월입니다. 6월부터 한국도로공사 측이 시범적으로 31개 영업소 직원들을 자회사 소속으로 전환했고 그 결과 자회사 소속을 거부한 노동자들이 6월1일자로 해고 상태를 맞았기 때문입니다. 고속도로 요금수납원들은 6월부터 대대적인 농성을 진행하며 자회사를 반대하고 직접고용 쟁취를 요구했습니다. 7월 민주노총 총파업과 8월 대법원 판결 이후 사측과 노측의 충돌까지, 주요 사건별로 보도량을 따져봤습니다.

▲ 지난 6월1일부터 9월18일까지 고속도로 요금수납원 다룬 신문 보도량(사진기사 포함). 표=민주언론시민연합
▲ 지난 6월1일부터 9월18일까지 고속도로 요금수납원 다룬 신문 보도량(사진기사 포함). 표=민주언론시민연합

 

약 3개월간의 보도량을 살펴본 결과, 경향신문이 34건으로 가장 많은 기사를 지면에 게재했고 그 뒤를 이어 한겨레가 28건의 기사를 냈습니다. 조선일보는 19건, 서울경제와 한국경제는 각각 11건의 기사를 썼고, 동아일보는 8건에 그쳤습니다. 가장 적은 보도를 낸 언론사는 중앙일보입니다. 중앙일보는 3개월 동안 단 2건의 기사를 냈습니다. 2건의 기사마저도 민주노총 총파업을 다루는 기사에 요금 수납 노동자들을 끼워 넣은 정도입니다. 요금 수납 노동자들의 농성과 대법원의 판결과 같은 굵직한 사건에도 중앙일보는 침묵했습니다.

농성 이면에 깔린 ‘구조적 문제’ 짚어주는 언론 드물었다

언론이 노동과 관련한 기사를 자주 꾸준히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잘 다뤄주는가도 매우 중요합니다. 요금 수납 노동자들 농성의 핵심은 직접 고용에 대한 요구입니다. 현 시대를 아우르는 비정규직 철폐와 맥을 같이 합니다. 단순히 노동자들의 농성을 보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구조적인 문제를 짚어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은 파업과 농성에 초점을 두는 보도행태를 보였습니다. 지난 3개월간 보도된 기사들을 분류해 주로 다루어지는 이슈가 무엇인지 알아봤습니다.

▲ 지난 6월1일부터 9월18일까지 고속도로 요금 수납 노동자 기사 주제 분류(사진기사 제외). 표=민주언론시민연합
▲ 지난 6월1일부터 9월18일까지 고속도로 요금 수납 노동자 기사 주제 분류(사진기사 제외). 표=민주언론시민연합

 

3개월간 가장 기사화가 많이 된 주제는 요금 수납 노동자들의 농성으로, 25건의 기사가 게재됐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민주노총 총파업 이슈가 17건 보도됐고, 비정규직 문제 분석에는 16건이 할애됐습니다. 대법원 판결을 다룬 기사와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기사는 각각 9건이었고 한국도로공사 사장이 직접고용을 거부한 것에 대해서는 6건의 기사가 나왔습니다. 정치권 반응도 4건이 할애됐습니다. 가장 특이한 점은 정부 정책 비판 기사가 적었다는 점입니다. 이번 톨게이트 파업으로 대선공약이었던 ‘공공기관 정규직화’의 허점이 드러났고, 더군다나 이강래 도공 사장은 유력 여권 인사인데도 불구하고 정부 정책 비판이 주요 주제였던 기사는 한겨레 4건, 경향 2건, 한국경제 2건, 조선일보 1건을 빼면 전무했습니다.

한편, 비정규직 문제를 전체적으로 분석하는 기사가 16건이나 등장했지만 그 중의 절반 이상은 한겨레의 기사였습니다. 한겨레는 총 10건의 기사를 할애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와 권리 개선에 대한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동아일보, 중앙일보와 한국경제는 비정규직에 대한 이슈를 전혀 다루지 않았습니다. 올해 하반기는 민주노총 파업과 함께 노동권에 대한 이슈들이 많이 등장했습니다. 요금 수납 노동자들도 민주노총의 산하로 소속돼 파업을 함께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민언련 보고서 <무엇을 왜 반대하지는지는 알려주지 않는 민주노총 보도>(4월8일)에서도 다루었듯 대부분의 기사들이 시위에 대한 단편적인 모습을 스케치하는 것에 그쳤습니다.

시민 불편 부각·시위 폭력성 부각 

그와중에 시민들의 불편함을 부각해 노동자들 농성의 폭력성을 강조하는 기사가 등장했습니다. 바로 한국경제의 <“청(靑) 근처 사는 게 죄냐” 침묵시위 나선 주민들>(8월29일, 배태웅 기자)였습니다. 한국경제는 청와대 인근 지역 주민들이 집회를 자제하라며 집단행동에 나섰다면서 “이날도 청운효자동주민세터 바로 옆에서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산하 톨게이트노조가 한 달째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었다”라고 썼습니다. 

▲지난 9월11일 조선일보에 실린 본사 점거 ‘“몸에 손대지마” 톨게이트 수납원, 도공 본사서 속옷 시위’ 기사 갈무리.
▲지난 9월11일 조선일보에 실린 본사 점거 ‘“몸에 손대지마” 톨게이트 수납원, 도공 본사서 속옷 시위’ 기사 갈무리.

 

한국경제는 <사설-‘평온 누릴 권리’ 짓밟은 집회·시위까지 법의 보호 대상인가>(8월29일)에서 또 한번 “청운효자동주민센터 바로 옆에는 민노총 소속 ‘톨게이트 노조’가 한 달째 농성 중이다”라며 “집회 현장의 살벌한 풍경은 ‘민주주의를 누릴 자격’을 돌아보게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한국경제는 요금 수납 노동자들에 대한 기사를 단 2건만 냈는데, 시민 불편을 부각한 기사가 전부입니다. 한국경제는 요금 수납 노동자들이 무엇을 얻고자 농성을 하고 있는지, 어떤 부당함을 마주했는지 전혀 다뤄주지 않았습니다. 그저 소란스러운 시위가 시민들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고 주장할 뿐입니다.

언론이 노동 관련 이슈를 다룰 때마다 노조의 폭력성만을 부각한다는 건 이미 충분히 제기되어 온 문제점입니다. 하지만 언론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습니다. 불과 며칠 전 본사를 점거했던 요금 수납 노동자들에게도 같은 프레임이 적용됐습니다. 조선일보는 점거 농성을 언급하며 상의를 탈의한 노동자들의 모습을 사진 기사로 실었습니다.

본사 점거 농성을 사진기사로 실은 언론들은 많았지만 기사 제목에 ‘속옷’을 적은 언론은 조선일보뿐이었습니다. 조선일보는 노동자들의 농성을 ‘속옷 시위’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민주노총의 시위를 다룰 때는 폭력성을 부여하느라 정신이 없던 언론들이 여성 노동자가 상의를 탈의하자 속옷 시위를 벌인다며 이를 보도한 것입니다.

조선일보는 <“톨게이트 수납원 전원 직접 고용하라” 민노총 노조원들, 도로공사 본사 난입>(9월10일, 최원우 기자)에서도 “이 과정에서 노조원들은 1층 로비에서 화분을 깨고, 건물 안쪽으로 진입하기 위해 로비 프런트 책상 위를 밟고 지나가는 등 시설물을 파손했다”라고 쓰며 점거 농성의 폭력성을 극대화했습니다.

대법원 판결에 도공 입장만 나열

대법원이 한국도로공사가 직접고용을 해야 한다고 최종 판결하자, 중앙일보를 제외한 6개 언론이 모두 기사를 냈습니다. 모두 대법원의 판결을 적어주는 와중에 서울경제는 도로공사의 입장을 자세하게 설명해줬습니다. 서울경제는 <‘수납원 직접 고용’ 장고 들어간 도로공>(9월3일, 조양준 기자)에서 “한국도로공사가 톨게이트 요금수납원을 직접 고용하라는 대법원 판결에 따른 후속 조치를 놓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중략) 도로공사는 현재 톨게이트 요금 수납 업무를 자회사인 도공서비스로 모두 넘긴 상태여서 대법 판결을 앞세워 수납원들이 복귀하더라도 업무를 맡길 수 없다는 입장이다”라고 썼습니다. 서울경제가 대법원 판결의 내용을 아예 적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기사의 주체는 한국도로공사에서 시작해 한국도로공사로 끝납니다.

한국도로공사가 대법원 판결 대상에 대해서는 직접고용을 할 예정이지만 요금 수납 업무를 맡기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하자 노동자들의 본사 점거 농성이 이어졌습니다. 서울경제는 <요금수납원 노조 8일째 점거농성… 도공 “업무방해 단호 대응”>(9월17일, 박준호 기자)에서 “도공은 이날 요금수납원 노조가 불법점거하는 과정에서 현관 회전문 등 시설물을 파손해 약 5,000만원의 재산피해가 났다며 노조의 불법행위와 업무방해에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말했다”고 썼습니다. 점거 농성에 대한 한국도로공사의 입장을 따로 떼어 기사로 적어준 언론사는 서울경제가 유일했습니다.

같은 시점 경향신문은 <김민아 칼럼-아직도 여성이 ‘상의 탈의’로 저항해야 하는 나라>(9월16일, 김민아 토요판 선임기자)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에 시선이 쏠려 있던 지난 9일, 그는 승소가 확정된 노동자 등 499명을 직접고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직접고용을 원하는 노동자에겐 버스정류장·졸음쉼터 등의 환경정비(조경·청소) 업무를 맡길 것이라고 했다. 앉아서 일하는 노동자 가운데는 장애인이 상당수다. 이들에게 조경·청소 업무를 하라는 건 직접고용을 포기하란 말이나 매한가지다”라고 말했습니다. 서울경제가 한국도로공사의 입장을 실어줄 때 경향신문은 대법원의 판결에도 빠져나갈 구멍을 만드는 사측을 비판했습니다. 서울경제와 매우 상반되는 기사의 논조입니다.

조선일보는 <데스크에서-결국은 부메랑 될 극한투쟁>(7월19일, 이위재 산업1부 차장)에서 “톨게이트 징수원이나 도시가스 점검원 노조는 시장경제에선 공짜 점심이 없다는 교훈을 모르는 듯하다. (중략) 타협을 모르고 현실을 외면하는 극한투쟁은 모두를 패자로 만들고 만다”라고 쓰기도 했습니다. 노동자들의 요구가 이기적이고 비현실적이라는 프레임을 계속해서 덧씌우는 겁니다.

노조에 대한 언론의 혐오는 날이 갈수록 더해지고 있습니다. 언론은 노동 관련 이슈에서 외면하거나 프레임을 씌우는 데만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제 노동자들의 시위 이면에 깔린 구조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리해주는 기사들이 나와야 합니다. 노동자들의 시위만 부각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뺏긴 것이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언론의 설명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신문, 서울경제, 한국경제 (6월1일~9월18일, 별지섹션 제외)
※ 문의 : 공시형 활동가 (02) 392-0181 / 정리 : 주영은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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