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에 한국 사회는 크게 주목하지 않는다. 

3000여년전 지중해 동쪽 팔레스타인 땅에 모세가 이끄는 유대인이 이스라엘 왕국을 세웠다. 기원전 63년 로마제국이 예루살렘을 정복했고 로마가 무너지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 땅을 차지했다. 2000년쯤 떠돌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되찾자는 운동을 벌였다. 나치 학살피해자라는 명분, 미국도 움직인다는 힘을 가진 유대인들은 1948년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스라엘 국가를 세웠다. 

유대교·기독교·이슬람 등 세 종교의 성지를 가진 이 지역에 불편한 동거가 시작됐다. 1948년부터 1973년까지 네 번의 중동전쟁은 미국을 등에 업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고, 1993년 이름뿐인 ‘평화협정’을 맺었다. 1999년 팔레스타인이 독립국가를 선포하기로 했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독립하지 못한 채 가자지구(Gaza Strip)와 서안지구(West Bank)에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꾸리고 산다. 

히브리어로 ‘평화의 마을’이란 뜻의 예루살렘의 역사를 이렇게 요약하고 나면 이 지역은 ‘못살 놈의 땅’이 된다. 해골에도 새싹이 돋듯 이곳에도 삶이 있다. 다만 누구나 멀고 낯선 존재를 고정된 하나의 이미지로 인식할 뿐이다. 

최근 팔레스타인을 다녀온 기자가 있어 미디어오늘이 만났다. 김양균 쿠키뉴스 기자는 미디어오늘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생각만큼 비참하게 사는 건 아니다”라며 “실업률이 높고 이스라엘 때문에 고통 받지만 일상에서 포탄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아랍 사람들은 집을 크게 짓는데 가보면 생각보다 좋다. 여성의 사회진출이나 대학진학률도 높다”고 말했다. 

▲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대도시 나블루스에 있는 전통시장 모습. 사진=김양균 제공
▲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대도시 나블루스에 있는 전통시장 모습. 사진=김양균 제공
▲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대도시 나블루스의 번화한 도심 모습. 사진=김양균 제공
▲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대도시 나블루스의 번화한 도심 모습. 사진=김양균 제공
▲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대도시 나블루스의 야경. 사진=김양균 제공
▲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대도시 나블루스의 야경. 사진=김양균 제공

“‘못살 놈의 땅’이 절반만 맞는 말”이라며 여행지로 봐도 무방할 사진들을 보여준 그는 “정말 멋있게 히잡을 쓴 여성과 수트 입은 남성이 손을 잡고 걷는 모습, 하얀색 아우디에 청년들이 탄 채 놀러가는 장면” 등을 언급했다. 그렇지만 기행문이 아닌 이상 기사에선 팔레스타인의 처절한 실상을 고발하게 되고 아쉽지만 ‘팔레스타인=분쟁’이라는 이미지마저 깨진 못한다. 

다만 팔레스타인 르포가 많아져야 그들의 일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데 동의했다. 김 기자는 팔레스타인에 이번 연재기사에 담지 못한 내용과 추가취재를 보태 팔레스타인 현실을 알릴 책과 다큐멘터리를 만들 계획이다. 

보통 저항세력이 많은 가자지구가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만 영토는 서안지구가 훨씬 넓다. 김 기자는 지난달 13일부터 23일까지 서안지구 곳곳을 취재해 연재기사를 내고 있다. 팔레스타인 평화여행을 기획한 NGO 사단법인 아디(Asian Dignity Initiative, ADI)에서 많은 부분을 도왔다고 전했다.

팔레스타인, 가기 힘든 땅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있는 벤구리온 국제공항에 내려 전화기를 켜면 이런 메시지가 온다. “서안지구는 특별여행주의보(철수권고) 발령…. 팔레스타인과 분쟁 지속, 위험지역 방문자제, 다중밀집지역 신변안전 유의.”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 가는 이들은 무시할 만한 메시지다. 서안지구에 들어가려면 ‘팔레스타인 사람 중 이스라엘 거주증이 있는 사람이 운전하는 택시’를 타야한다. 이스라엘 거주증이 없다면 팔레스타인에 갔다가 다시 올 수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기자인 걸 숨기고 들어갔다 나와야 한다. 김 기자는 “테러 때문이라면서 탑승 15분전까지 약 2시반동안 출국심사를 했다”며 “말이 꼬이는지 보려고 여러 사람이 계속 비슷한 질문을 했고 출국할 때 아랍어로 된 거 하나라도 발견되면 문제 삼는다”고 말했다. 직업과 알리바이까지 대답을 준비해야 무사히 오갈 수 있다.  

▲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1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예수의 탄생지로도 유명한 베들레헴에 있는 분리장벽. 사진=김양균 제공
▲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1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예수의 탄생지로도 유명한 베들레헴에 있는 분리장벽. 사진=김양균 제공

 

1993년 오슬로 협정에 따라 팔레스타인은 A·B·C 세 지역으로 나뉜다. A지역은 대도시들(헤브론, 나블루스, 라말라 등), B지역은 이스라엘이 치안을 맡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행정을 맡은 지역, C지역은 이스라엘이 지배하는 곳으로 가장 넓다. 

C지역에 이스라엘인 정착촌을 만드는데, 제네바협약에 따르면 피점령지(팔레스타인)에 점령국 주민(이스라엘인)을 이주하는 건 불법이다. 그전까지 주춤하던 정착촌 건립이 트럼프 정권 들어 늘어난다고 김 기자는 전했다. 정착촌에선 이스라엘 군이나 주민들이 팔레스타인 주민을 직접 공격하거나 주민들 이동을 막는다. 내쫓아 땅을 빼앗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팔레스타인, 들여다보기 힘든 곳 

C지역에는 자유가 없다. 나블루스란 대도시에서 남쪽으로 가다보면 4000여명쯤 사는 부린마을이 있다. 올리브나무를 키우며 사는 시골마을인데 이곳에 지난 7월 이스라엘 정착민이 올리브나무에 불을 질렀다. 약 3만 달러의 재산피해가 발생하는 동안 이스라엘군 때문에 팔레스타인 농부들은 불조차 끄지 못했다. 이런 식의 공격은 수시로 있었다. 현지 농부이자 활동가인 갓산 나자르는 이를 영상으로 기록했다. 

김 기자는 “이스라엘이 지배하는 역사가 70년이 돼 풀뿌리 인권운동이 잘 돼있고 인권의식이 매우 높다”며 “갓산은 청년농부인데 주변 산 정상마다 정착촌을 세우고 공격을 해오니 인권활동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기자는 “갓산은 과거 ‘정착민의 공격을 영상으로 기록한 죄’로 2년 감옥에 다녀왔다”며 “이스라엘군은 수시로 갓산을 수색했고 갓산은 벽을 뜯고 노트북을 숨기는 등 목숨 걸고 기록했다”고 전했다. 이번에 김 기자에게 영상을 담은 USB를 넘겼다. 

김 기자는 “30초~1분짜리 짧은 영상들이지만 얼굴을 식별할 수 있을 정도의 영상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입장에서 부담이 될 수 있는 자료”라고 말했다. 김 기자는 “팔레스타인에도 언론이 있지만 팔레스타인 언론인들이 쉽게 희생된다”며 “나블루스에서 14km가량 달려야 나오는 쿠파카둠 마을에선 금요집회가 열리는데 행진이 500m도 안되는데 최루탄을 터트리고 총을 쏘기도 한다”고 전했다. 일이 커지면 안 되니 상대적으로 외국 기자들을 조심하는 편이라고 전했다. 

▲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대도시 나블루스 인근에 있는 쿠파카둠마을의 금요집회 모습. 주민들은 이스라엘이 정착촌을 만들면서 길을 봉쇄해 이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김양균 제공
▲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대도시 나블루스 인근에 있는 쿠파카둠마을의 금요집회 모습. 주민들은 이스라엘이 정착촌을 만들면서 길을 봉쇄해 이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김양균 제공

쿠파카둠 마을은 실제 나블루스와 거리는 2km 정도 된다. 이스라엘에 정착촌을 만들고 길을 막아서 몇 배를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은 2002년부터 2005년까지 대부분의 분리장벽을 만들었다. 분리장벽에 항의하는 금요집회를 10년 넘게 이어가고 있지만 분위기는 달라지지 않았다. 김 기자는 “드론 등을 띄워 얼굴을 인식하기 때문에 (집회 참가자들은) 마스크로 얼굴을 다 가린다”며 “돌을 던지다 걸리면 어린애도 구속”이라고 전했다.  

추가취재는 팔레스타인의 보건의료

팔레스타인 같이 폭력이 일상화한 곳에서 인권을 지키기 위해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게 정당한지 따지거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비민주적인 문제를 논하는 문제도 중요하지만 당장 죽어가거나 아픈 이들을 치료하는 문제가 더 시급하다. 팔레스타인 부상자들이 이스라엘군이 지키는 검문소에 막혀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문제는 정치와 의료가 인권과 떨어져있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서 행정수도 역할을 맡은 대도시 라말라에서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가려면 이 같은 검문소를 거쳐야 한다. 사진=김양균 제공
▲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서 행정수도 역할을 맡은 대도시 라말라에서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가려면 이 같은 검문소를 거쳐야 한다. 사진=김양균 제공

 

보건복지부를 출입하고 국회 보건복지위·여성가족위를 담당하는 김 기자는 “보건의료로 인권의 많은 부분을 해결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으로 팔레스타인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남은 연재기사도 전쟁 중 특히 취약한 여성과 아동의 인권, 팔레스타인의 보건의료에 초점을 둘 예정이다. 

김 기자는 “이슬람 문화권이라서 여성이 몸에 대해 말할 수 없는 분위기가 여성 질환 해결에 문제가 되기도 한다”며 “특히 C지역은 병원 자체가 없고, 암에 걸리면 예루살렘으로 가야하는데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치료비 3배를 내야 하니 비싸서 갈 수 없는 현실”이라고 전했다. 김 기자는 “이번에 팔레스타인에 처음 가보느라 깊이 있게 못 봤지만 조만간 다시 가서 보건의료 쪽을 중점적으로 취재하고 싶다”고 말했다. 

[관련연재 : 팔레스타인 르포.. 분리된 삶, 부서진 꿈]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